「그 계집앨 생각하면 며칠씩 기분이 잡친다구. 술맛 떨어지게 뒈진 년 찾을 것 없어요. 어서, 술이나 마시라구. 저 애들두 예쁘잖아. 새로 온 생둥들이라구. 다른 손님방에서 특별히 빼온 거니까 그리 알.구.
  목소리가 슬픔으로 메이었다. 그녀는 눈물이 비치던 서글픔을 삼키고 비운 술잔을 옆사람에게 돌리었다. 술잔을 채워주고 난 그녀는 젓가락장단을 두들기며 노래 한 곡조를 뽑았다.
「헤~어지머언 그리웁고오 만나보오먼 시들하고 몹쓸 것 이내 심사…….」
  장두식은 술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천하에 못난 년……, 뒈질 놈의 몸뚱아릴 뭐 그리 앙탈을 부리고 소중히 애꼈을까.」
  중얼거리며 그는 술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옷이 다 벗겨진 아랫도리로 벌겋게 누워서도 혀를 깨물어버리겠다고 포달을 부리는 바람에 끝내  품어보지를 못하고 미련만 고스란히 남겨두었던 그것이 험난한 세상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제풀에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죽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두 눈을 위로 뜨고 멀뚱거리며 헛바람 새는 한숨을 짓다가 술잔을 집어들어 입에 붓고 좌중에 돌아가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믿는다 믿어라~, 변치 말자 누가 먼자 말했던 가아…….’
  술판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뱃간에서 밥이나 짓고 하는 화장 점곤이도 술잔을 받아마시며 그런대로 어울렸으나 고기잡이 뱃길이 썩 익지 않은 우만은 풋내기의 미추룸한 얼굴로 쑥스럽게 앉아 있었다. 맞은편의 백선장이 비운 술잔을 우만에게 건네었다.
  「자네는 뱃놈이시. 어려워헐 것 없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계집도 품어보라구. 그게 뱃놈인    걸세.」
  백 선장은 취한 게 아니었다.
 「야 이것들아, 뭣허는 것이여? 이 멋진 미남
  총각한   테 어서, 잔이 철철 넘치게 따라주덜
   않구.」
  그는 눈길을 작부들 쪽으로 돌렸다.
 「그래, 바루 너다. 이름이 뭣이냐?」
  노랑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로 맨드리 곱게 무릎을
세운 모습으로 시종 다소곳한 작부는 어렵사리 수줍은 고개를 들었다.
 「서옥이에요.」
 「니 옆자리 총각 어떠냐? 맘에 안 든다먼 이나라 땅엔 니 사내가 없니라. 어서, 한 잔 꾹꾹 눌러 부어주어라.」
 「마구 그러지 말아요. 며칠 전에 새로 온 애라구요.」
  연심이는 두남두는 역성으로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었다. 서옥은 곱살한 손을 내밀어 우만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연심이는 백선장에게 취한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팔을 끼고 콧소리를 흘렸다.
 「정말 총각 멋지게 생겼어.」
  그녀는 우만의 깨끗한 볼에 쪽, 소리가 나는 입맞춤을 하고나서 질감스런 귀엣말을 하였다.
 「이따 우리 멋진 연애 한 번 해.」
  우만은 여자를 밀어내며 술잔을 쭈욱 비웠다. 작부의 한 가지 행실을 배운 것처럼 서옥은 가녀린 손으로 정성스레 안주를 집어다 우만의 입 속으로 밀어넣어 주었다. 바로 그때 난데없이 일진광풍, 성난 우뢰에 미어지듯 술방문이 벌컥 내열리며 방 안으론 한무더기 폭풍이 몰아쳐 들어왔다.
 「워디서 개뼈다구 같이 굴러들어온  시러베자석들이여?」  
  거쿨진 호통을 치며 뛰어들어온 친구는 장승 같은 몸집에 날카롭게 찢어진 범 눈을 까고 방 안 사람들을 냉큼 집어삼킬 듯이 휘둘러 보았다.
 「이 싸가지없는 자석들아, 어디서 썩은 문절이 새끼들처럼 기어와갖고 남의 계집을 빼다 끼고 술잔을 홀짝려?」
  사납게 내뱉는 말마디나 거침없는 행동거지가 막되어먹은 왈짜의 범절을 모르는 소행이지만 생긴 몸집 역시 강단을 지닌 거구(巨軀)에 칼도마같이 툭 불거진 이마 하며 눈 아래가 움푹 패여 들어간 면상이 험상하기 이를데 없었다.
 「?…….」
  졸연히 방문을 차고 뛰어들어와 호통을 놓는 날벼락에 놀란 방 안의 대성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게 뜨물에 빠진 바퀴눈을 하고 바라보았다.
 「웬 버릇없는 놈이 이렇코롬 천둥에 개 뛰어들 듯기 허나?」
 장두식이 두 눈이 훌렁 뒤까여 어리둥절한 정신을 바로잡고 말했다.  

 「니눔이 이 술방의 윗대가리냐?」
  아직 젊은 더벅머리 친구는 서릿발 같은 눈매가 쌍그렇게 치켜 올라갔다.
 「이놈이,무식하긴, 못된 강아지새끼가 눙깔에 명태껍질까지 붙였네. 이놈아, 눙깔은 삼신할미가 살따구 모자라 찢어논 중 아느냐. 위아래 어른도 몰라보게?」
 「니눔이 주뎅일 까는 게 내 주먹에 넙치가 되고 싶은 게로구나.」
 「주뎅이만 아구같이 찢어진 중 알었등먼 애놈이 말버릇도 우라지게 싸가지 없네잉.」
  장두식은 앉은 자리에서 여유있는 자세로 상대방의 거풍스런 위세를 잡도리하였다.
 「이놈이 쎄(혀) 빼물고 뒈지덜 못혀 안달이잖어.」
  왈짜는 눈썹 한 올이 풀려 꺾이지 아니하고 장승같이 훌쩍 큰 키에 사천왕의 튀어나올 듯이 부라린 두 퉁방울눈을 뒤룩거리는데, 부르걷은 팔뚝은 단단한 알심이 불거져 거먼 털이 숭숭 솟아 있고 눈빛은 수리 부엉이의 예리한 그것과 흡사히 방 안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리 나왓!」
  성큼 한 발을 내딛고 안으로 들어온 그는 조그맣게 몸을 움츠리고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서옥이의 손목을 거머잡았다.
 「이봐, 친구?」
  장두식이 그의 우악스런 손길을 제지했다.
 「이새끼!」
  왈짜의 바윗돌 같은 주먹이 장두식의 안면으로 휙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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