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해도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진 듯허구먼.」
 「큰바람이 한 번 쏴 불어와 탐학한 무리와 간악한 자들을 모조리 쓸어내야 우리네 백성들이 살제.」
  불그레 취기에 젖은 눈을 끄먹거리던 유승종씨가 우심한 걱정을 하고,
 「무지렁이 백성들이 노닥거린다고 뭐가 어찌 달라지겄소. 쎄(혀)를 두딜겨봐야 침만 바싹 마르제. 입 아프게 그런 소린 관두고 술이나 마시지라.」
  하고 장두식은 작부가 따라주는 술잔을 기울인 뒤 노래를 뽑았다. 연심이가 따라 부르고, 막바우가 노래를 이어받으면서 모두 젓가락장단 합창으로 술판은 질탕해졌다.
 「저는 좀…….」
  연거푸 받아마신 술에 속이 거북한 서옥이는 치마폭을 지르잡으며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술방을 나왔다. 그녀를 가엾게 바라보던 화장 점곤이는 우만을 돌아보았다.
 「저는 바람 조깨 쐬어야겄고만이라.」
  우만은 백 선장 곁에서 일어났다. 점곤이가 뒤따라 나왔다.
 「배로 돌아가려구?」
 「웬지 답답해서…….」
  우만은 점곤이와 선창으로 나왔다.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시원스레 들려왔다.
 「막바우란 친구 술도 무척 쎄든디.」
 「나가 보기엔 의협심도 있등먼.」
  우만은 점곤이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선창을 걸었다. 고깃배들이 정박한 선착장은 잔자누룩해져 몇 개의 백열등이 붉게 타고 있었다. 술집들은 이슥하게 깊은 밤인데도 뽑아내는 노랫소리가 시끌쩍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술하고 먼 웬수가 졌나, 밤새껏 죽자꾸나 퍼마시게…….」
  점곤이는 술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달픈 어부살이로 세상을 살아간께 억울한 포원이 많이 져서 그러제.」
  우만은 짧은 한숨을 지었다. 선창가로 내려서는데 어디선가 여자의 신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소리란가?」
  점곤이는 이상하게 사람 토악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술집의 불그레한 불빛이 내비치는 바닷가에 여자의 모습이 보이었다.
 「우, 우웨엑…….」
  여자의 토악질하는 모습이 여간만 고역스러워 보이지를 아니했다. 점곤이는 자리를 일어나서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고개를 박고 엎드려 토악질을 하는 여자의 모습이 처연했다
 「먹을 줄도 모르는 술을 왜 글코롬 많이 마셔부렀소.」
  점곤이는 여자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속이 뒤집히듯 우심하게 토악질을 하던 여자는 기진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마워요.」"
 여자는 힘없는 얼굴을 들고 한숨으로 말했다. 술방에서 빠져나온 작부였다.
 「아가씨 아니오?」

  점곤이는 서옥이란 작부를 다시 보았다. 그녀는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 있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워쩌다가 이런 디까장 들어왔소?」
  뱃사람들 누구나 술집 작부들의 가련한 신세를 잘 알고 있듯이, 점곤이도 뭍에서 팔려온 술집 여자들의 운명이 막다른 인생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가 이런 덴 줄 알었나요.」
 서옥은 다시 눈가에 배어나는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우만은 애잔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매끈한 매미 이마에 긴 속눈썹으로 거무스런 두 눈엔 깊고 어두운 우수가 담겨 있었다.
 「모다들 글치라.」
 「운명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서옥은 얼굴에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술집 논다니 신세에 대한 자조요, 헤어날 수 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실의와 비애에 가득찬 슬픔이었다.
 「술만 좀 안 마셔두…….」
  서옥은 다시 눈물을 흘렸다. 갯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의 물보라가 튀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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