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기적

  김 중 태

   

  해가 바뀌어 따뜻해진 봄날 노인은 춥고 음산한 겨울의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듯 언덕 위의 작은 움막집에서 봄볕이 부신 눈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쪽 어깨에 망태기를 걸멘 노인은 이마에 손을 얹고 햇볕이 하얗게 쌓이는 북녘 땅 아득한 골짜기를 길게 바라보고 난 뒤 조심스런 발길로 언덕길을 내려섰다. 산자락 비탈진 언덕길은 금년에도 어김없이 무성한 쑥대와 엉겅퀴, 억새가 기세 좋게 자라 메마른 가시덤불로 언덕길을 메우고 거칠게 뒤덮여 겨우 생쥐나 한 마리 오갈만한 자귀를 남겨 놓고 있었다.
노인은 지난해보다 왜소한 노구(老驅)로 부쩍이나 더 늙어보였다. 홀쭉한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파이고 얽힌 얼굴은 더욱 야위어 앙상스런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우묵한 눈자위에 피부암 같은 얼룩점들이 새똥처럼 쫙 깔려 있었다. 그동안 생애의 온갖 험로와 모진 풍상의 세월을  헤치고 허위넘어 이제는 저만큼 북망산을 바라보는 널감이 다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노인은 아직은 더 버티며 살 것 같은 여력을 느끼고 있었다.
「꿈속같은 마음이야.항상 그랬어. 어느 새 다 늙어버렸는 걸.」
은사(銀絲)처럼 하얗게 성긴 머리칼이 설렁거리는 언덕 머리길에서 노인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세월을 이길 장사가 없는 게지.」
견디기 힘든 것은 지척에 둔 고향을 갈 수 없는 서글픈 신세, 홀로 사는 외로움이었다. 인생의 모든 것이 먼 옛날이야기로 되어버린 세월, 그날 그때로 멈춰버린 인생의 가족들의 선명한 환영은 언제 어느 때나 바로 눈앞에 선명한 정경으로 떠오르고, 그런 세월이 갈수록 자꾸만 더 사무쳐 가슴 깊이 아로새겨지는 그리움은 고단하고 지친 삶을 한층 더 옥죄며 찾아들고만 있었다.
「내가 산 세월은 왜 그리도 모진 것인지.」
노인은 군인들의 민통선초소가 있는 마을 모퉁이 자름한 언덕에 우두커니 발길을 멈추고 하얀 갈목이 설렁설렁 나부끼는 갈대밭 벌판을 멀리까지 바라보았다.
기차역사는 벌판의 묵은 잡초와 갈대숲이 우거진 한가운데 고요하게 전설에 묻힌 망각 속에서 소리없이 태어나듯이 새로워진 건물로 하얗게 솟아 있었다. 역전은 오르내리는 사람 하나 없이 마냥 적막했다.
봄볕이 안온하게 퍼진 벌판 갈대밭엔 해를 넘긴 갈꽃이 훈풍에 나부끼며 잔잔한 은빛물결을 이루고,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오른 갈대밭 하늘엔 종달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지저귀고 있었다. 노인은 내친 발걸음으로 갈대밭 길을 걸어갔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갈꽃들이 적막한 벌판길의 외로운 길손에게 하얀 손을 흔들어주듯 미끄러지는 명지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고 있었다.
갈대밭 한가운데 올라와 있는 기차역은 손님 한 사람 보이지 않았다. 멀리 북녘을 거슬러오는 벌바람은 아직 차가운 냉기를 품고 기차역을 휘감으면서 황량하게 휩쓸고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기차역이 아니라 갈대밭 벌판 한가운데 우뚝 솟아 적막 에 잠긴 목조건물은 언젠가 홀연히 깃든 유령이 잔인하게 숨을 쉬고 있는 흉가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나 유령의 집은 결코 아니었다. 역전 앞마당 뜰에 잘 다듬어진 회양목과 시멘트 인조목(人造木) 벤치, 화단에는 누군가 벌써 성급하게 심어놓은 화초가 보이고, 잔디밭 언덕엔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막 터뜨리고 있었다. 노인은 화단가에 나뒹구는 빈 음료수깡통 하나를 주워 휴지통에 밀어 넣고 허리를 폈다.
  자물통이 커다랗게 걸려 내내 굳게 잠겨 있던 기차역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암울한 수심이 무겁던 노인의 얼굴에 전에 볼 수 없던 화기가 번지며 흐린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은 기차역에 손님들이 많이 오는 모양이구먼.」
하고 노인은 어떤 손님들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출입문이 활짝 기차역으로 들어갔다.
텅 빈 대합실의 회벽엔 혀를 한 자나 길게 빼물고 총검에 등창이 나버린 괴뢰군과 김일성부자의 몰골스런 낙서로 가득했다. 아무도 없는 대합실에 혼자 들어선 노인은 긴 목조의자에 보얗게 올라앉은 먼지를 한 손으로 죽 쓸어내었다. 쌓인 먼지가 아니라 노인은 서리를 쓸어낸 것처럼 손이 시리다. 써늘하게 설렁거리는 냉기, 냉습한 대합실 구석에선 유령이라도 뛰어나올 듯한 대합실에 노구(老軀)를 이끌고 걸어온 다리쉼을 하고 난 노인은 몸이 으스스한 대합실을 걸어 나왔다.
이제 막 기차가 손님들을 실고 떠나버린 듯 텅 비어 있는 승강장은 더할 나위없는 적막감을 불러일으키며 멀쑥한 얼굴을 하고 홀로 서 있는 이정표가 더욱이나 외롭다. 승강장 저만큼 철조망이 쳐진 갈대밭엔 지뢰표지판이 보였다. 노인은 갈대밭 벌판으로 뻗어 있는 철길을 멀리 바라보았다. 기름진 땅에 무성하게 파도치던 갈대숲이 여년묵은 잿빛 벌판을 가르며 뻗은 철길은 저만큼 앞당겨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힘차게 대지를 누비며 달려오는 기차의 육중한 진동, 우렁찬 기적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한동안 조금치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차는 오지 않았다.
노인은 저린 발을 천천히 움직이며 걸어온 승강장 벤치에 편안한 몸으로 차분히 등을 기대앉았다. 개천을 끼고 있는 철책선 길목에 뗏장을 두텁게 쌓아올린 군인들 방벽초소에 총을 비껴든 병사 하나가 보이었다. 산모퉁이 자름한 기슭에 나지막하게 들어앉은 파견지의 오두막 막사는 더욱 잠적하다. 개천을 낀 기슭도리에 흰 띠를 두르듯 나있는 전방 도로엔 군부대의 보급차량이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고 있었다. 논밭들이 펼쳐진 벌판 가운데 몇 채 안 되는 집들이 올막졸막 모여 있는 작은 마을엔 교회의 십자가 탑이 평화스럽게 올라와 있고, 좁다란 운동장과 함께 학교 건물이 보였다.
노인의 흐린 시야에 귀여운 소녀가 하나 나타났다. 노란 책가방을 등에 멘 소녀는 개천 언덕을 올라와 한 손에 든 신발주머니를 장난스럽게 빙글빙글 돌리며 뛰어왔다. 민통선마을 국민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소녀의 등에 멘 노란 비닐 책가방이 부신 봄볕은 받아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아랫마을 한길이 지나가는 삼거리의 소녀였다.
소녀가 혼자 뛰어오던 길에 우람한 군용트럭이 질주하면서 가랑잎이 날리듯 깊섶으로 떠밀린 소녀를 폭풍 같은 흙먼지로 삽시에 집어삼켜 버렸다.
「저 저런!」
노인은 놀란 비명을 토하면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군용트럭이 멀찍이 달려 나간 뒤 소녀는 뽀얀 흙먼지 속에서 차츰 모습을 드러내었다. 노인은 비소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엔 무장한 군인들이 길게 꼬리를 달려 달려가고 있었다. 조용한 벌판길에서 흙먼지를 담뿍 뒤집어쓰고 난 소녀는 혼자 심심한 장난질을 하지 않고 달려왔다.
「오서, 오너라.」
노인은 소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할아버지, 날 많이 기다렸지?」
턱에 차오른 숨을 씨근거리며 승강장으로 들어온 소녀는 철길로 먼저 쫓아 내려갔다. 책가방을 등에 짊어진 채 철길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소녀는 철길 위에 귀를 갖다 붙였다. 철길이 울지 않는다.
「기차가 안 와, 할아버지.」
소녀는 따뜻한 봄볕에 달아오른 철길에 따끈했던 귓바퀴를 한 손으로 비비며 승강장 언덕을 올라왔다.
「오늘은 학교에서 일찍 오는구나.」
노인은 소녀가 귀여웠다.
「토요일이야, 할아버지. 」
소녀는 3학년이었다. 짧은 다리로 강종강종 다가온 소녀는 벤치의 할아버지 곁에 다가앉았다.
「또 어느새 그렇게 되었구나.」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학교에서 친구애들이 놀다 가라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맨 날 나를 기다리자나. 그래서 안 놀고 막 달려왔어.」
벤치에 올라앉은 소녀는 짧은 두 다리를 가동거렸다.
「이 할아버지가 기다릴까 봐 빨리 달려왔어. 그럼 이따 돌아갈 때 이 할아버지가 너를 업고 가야 하겠구나. 」
노인은 까만 눈망울이 반들반들한 소녀를 보며 약속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기차는 왜 안 와. 할아버지가 말했잖아. 철길에 귀를 갖다 대면 바람이 불 때 전봇대에 귀를 대보면 전깃줄이 씨잉 씨잉 하고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처럼 철기도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면 씨잉 하고 운다고 그랬는데, 난 한 번도 우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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