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기차를 기다리는 거야?」
  살진 여인네는 코웃음을 치고 나서 다시 물었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지 그럼 뭘 기다리는데요?」
  상냥스레 대꾸하던 순지는 아줌마를 향해 또렷이 되물었다. 소녀가 묻는 소리를 들은 뚱보아줌마는 일행 쪽을 돌아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보인 뒤 시름겨운 몰골로 앉아 있는 노인 쪽을 돌아다봤다. 노인은 따뜻이 쬐던 봄볕을 가리며 모여드는 사람들이 상념과 기차를 기다는 한마음을 방해하듯 번거롭고 귀찮았다.
「너는 어디 사니?」
 안경을 쓴 여인네는 약간 정색한 얼굴로 또다시 물었다.
「저 밖에 아랫마을 삼거리요.」
 v순지는 가벼운 고갯짓으로 민통선 바깥 마을을 가리킨 다음 입술에 조그맣게 오므리고 앉아 있었다. 여인네는 안경 너머로 이상한 눈동자를 굴리고 바라봤다.
「거기 살면 이 기차역엔 기차가 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 거 아니니?」
 여인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듯이 재우쳐 물었다.
「우리 할아버진 고향에 꼭 가야 해요.」
 순지는 다부진 소리로 말했다.
「그렇구나.」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여인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할아버지니?」
 뚱보아줌마가 물었고, 순지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여기는 기차가 안 오는 역이야.」
 v안경을 고쳐 쓴 여인네는 혀를 끌끌 차며 노인과 소녀를 가여운 눈길로 다시 바라보았다.
「기차는 기다리면 언젠가 온댔어요. 우리 학교 선생님도 그랬어요,」
 순지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줌마도 여기 정거장으로 기차가 좀 빨리 달려오게 해주세요. 매일 같이 기차역을 구경 오는 사람들도 기차가 오게 기다리면 기차가 빨리 달려온댔어요. 우리 선생님도, 엄마도 분명히 그랬어요.」
 순지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허허허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게 뭐 어드레 이상해서리 그럽네까.」
 여인네들 뒷전 승강장으로 늙수그레하게 지나가던 사람이 발길을 멈칫거리며 말을 던졌다.
「기차야 손님이 기대려야 오디요. 안 그렇습네까? 기차는 뎡거장에서 기대리는 사람이 있어야 달려오는 게구, 기대리는 손님이 없으믄 기차가 뭐하러 오갔습네까.」
다가와 벤치 한쪽에 걸터앉은 노신사는 중절모를 고쳐 쓰고 나서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틸랬디. 노상 말만 남북통일이 될 것 같이 앞세으구서리 저 살던 고향이다 핏줄이 그리운 사람들 애간장만 바싹바싹 태우구 있디들 안캇소.」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로 길게 내뿜는 담배연기가 허공에 원을 그리며 조금씩 흩어졌다. 여인네들은 벤치의 노인과 어린 소녀의 가련한 정상이 애처롭고 측은한 동정의 눈길을 주면서 앞서 승강장을 빠져나간 일행들 쪽으로 빠른 발길을 옮겼다. 아까부터 혼자 사진기를 이리저리 돌려대며 연방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어대던 젊은 사람이 수첩을 펴들고 다가왔다.
「저는 민족공론이란 잡지사 기잡니다. 어르신께 죄송하지만 몇 말씀 여쭤 봐도 되겠는지요?」
 기자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다가왔지만 노인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할아버지 고향이 이북이신가요?」
 기자는 좀더 다가앉으며 물었다. 노인은 고향이 이북 어디라는 대답보다 한숨을 먼저 푹 내쉬었다. 이따금씩 기차역 승강장 벤치의 헙수룩한 늙은이를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한 마디씩 물어보던 말이었다. 새롭게 단장된 기차역에서 이북 땅으로 가는 기차 얘기를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디 신문사나 방송국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는 사람들은 반거롭게 누구나 똑같은 것을 묻고 사진을 몇 장씩 찍어갔다. 그렇게 여러 장 많은 사진을 찍어가면서도 노인이 죽은 뒤에 영정으로 쓸 만한 사진 한 장 보내주는 사람이 없었다.
「월남하신 게 언제십니까?」
 기자는 끈질기게 성화를 바쳤다.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사지가 흩어져 공중으로 날아가고 가슴이 찢어진 생사람의 뜨거운 피로 붉게 젖은 나라 땅이 두 동강이 나는 바람에 이북 고향집으로 돌아가질 못했다우.」
 기자의 거듭되는 물음에 노인은 한마디 대답했다.
「이북에는 지금도 옛날 가족들이 살고 있으신가요?」
「생지옥 같던 전쟁 통에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과연 살아 있는지나 모르겠소. 요행히 마누라, 자식들이 살아 있다면 마누라는 시방 늙은 내 이 모양으로 폭삭 늙은 쪼그랑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구먼. 」
 기자는 노인이 말을 수첩에 낱낱이 적어 나갔다.
「언제부터 이 기차역에 나오셔서 기차를 기다리셨습니까?」
「내 평생이 다 지나갔다오. 왜정 때 물자를 수송하려고 부설한 이 기찻길 중간역
역은 육이오전쟁의 요란한 포화에 부서진 벽돌 몇 조각 나뒹구는 폐허가 되어버린 것을 지난 언젠가 남북간 통일이 되는 것인지 기차가 막힌 숨통이 터지듯 금방 우렁찬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릴 것처럼 역사를 복원해 놓고는 내내 낡아 허물어지도록 방치하더니만 또 무슨 요란법석인지 번듯한 기차역 건물로 말끔한 단장을 해 놓덜 않겠어. 그때는 정말 기차가 곧 달려올 것만 같드구먼. 」
 노인은 한 맺힌 말문이 터지듯 간간이 한숨을 섞인 말을 장황스레 풀어 놓았다. 노인에겐 좀체로 볼 수 없던 일이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께선 이 기차역에 나와 기차를 기다리셨군요.」
 중요한 대목처럼 기자는 물었다.
「그랬지. 다 늙어 북망산이나 바라보는 늙은이에게 여한이라면 고향에 가고 싶은 것밖에 더 있겠는가.」
「할아버진 이 역으로 참말로 기차가 온다고 생각하세요?」
 기자는 마지막 질문처럼 물어보며 노인을 애처로이 바라봤다.
「암, 오고 말구. 지난 세월 고향에 가려고 애써온 늙은이를 생각하면 기차도 무정할 수 만은 없질 않겠어.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하는 것이거늘 온 생애를 애달프게 다 바쳐온 것을 쇠바퀴가 굴러오는 철마인들 어찌 무정할 수 있겠나. 이제는 기차가 틀림없이 기적소리를 울리고 달려와 이 늙은이를 고향집에 데려다주지 않겠는가. 」
 노인은 노반이 묻힌 벌판을 멀리 바라보며 우묵한 두 눈을 몇 번 가볍게 씀벅거렸다. 젊은 기자는 기차역의 노인에게서 더 캐묻고 들을 말이 없는 것처럼 수첩을 덮었다.
「할아버지, 사진 한 장만 더 찍겠습니다.」
기자는 고향 가는 북행기차를 기다리는 기차역 승강장 노인의 애달프고 가련한 정경을 연거푸 카메라에 담았다.
「기차는 할아버지 생전에 꼭 기적을 울리며 달려올 것입니다.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돌아갈 시간이 늦은 듯 젊은 기자는 노인에게 굳센 용기를 불어넣어주며 서둘러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한동안 기차역을 에워싸듯 승강장을 가득 채우고 들어섰던 관광객들이 일시에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뒤에 남아 있던 기자가 사라진 승강장은 이제 황량한 분위기로 텅 비었다. 기차역은 아까보다 더한 적막이 찾아들고 있었다.
「할아버지, 우리도 가자.」
 아까보다 더한 적막 속에 잠겨 있던 순지는 힘없이 할아버지를 졸랐다.
「우리도 돌아가야지. 그동안 오래도 기차를 기다렸으니 내일은 기차가 틀림없이 오겠지.」
  노인은 또다시 내일을 기약하며 서편 산 너머로 붉게 기우는 해를 바라보았다.
「토요일인 데도 순지가 늦는다고 엄마가 걱정하겠구나.」
「이젠 내가 할아버지랑 동무하고 노는 거 엄마도 아니 「허허허, 그렇구나.」
  노인은 미처 몰랐던 듯이 기쁘게 웃었다. 봄볕 속에 고요하게 올라와 있던 벌판의 갈목들이 서서히 이는 벌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노인은 해가 지는 저녁겉무렵 겉살에 와 닿는 바람결이 아직은 차가웠다. 노인은 벌판의 철길에 눈길을 던지고 바라보았지만 육중한 쇠바퀴가 구르는 대지의 진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노인은 오늘도 아쉬운 마음이 가슴을 치며 밀고 올라와 목을 꽉 메었다.
「할아버지, 기차도 안 오는데 어디를 자꾸 쳐다봐?」
  순지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걸어가며 물었다.
「내가 어딜 쳐다보긴.」
  노인은 약간 무안스레 대꾸했다.
「어서 가지구나.」
  지칫거리는 발걸음으로 승강장을 빠져나오던 노인은 다시 또 한 번 뒷눈질로 승강장 저편 철길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기차역 미련을 눈치 챈 순지는 더 채근하는 말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우리 순지, 다리가 아픈 모양이로구나. 할아버지가 업어주렴?」
  노인은 볼이 통통해진 순지를 달래듯 물었다.
「할아버지가 나 업을 수 있어?」
「업을 수 있고 말구.」
「참말?」
「넌 이 할아버지가 기운 없는 꼬부랑 할아버지로 보이느냐?」
  노인은 어깨를 펴고 두 팔을 힘 있게 흔들어 보였다. 노인은 시간이 멈춰버린 옛날 기억 속의 딸아이에게 못다한 애정을 순지에게 퍼부어주고 싶었다.
「자, 그럼. 어디 할아버지 등에 업혀 보려무나.」
  노인은 구부슴한 등을 순지 앞으로 돌려대고 앉았다. 순지는 딴 짓을 하는 하듯 언뜻 고개를 돌리고 돌쳐서며 이른 봄맞이를 나와 하늘거리고 길섶에 날아가는 나비를 쫓아갔다.
「원, 녀석두.....,」
  노인은 나비를 쫓아가는 순지를 바라보았다. 작은 흰나비는 언덕진 풀밭으로 하늘하늘 날아갔다. 나비를 쫓아가던 순지는 서운하게 나비를 놓치고 되돌아왔다.

   

 한 주일이 더 지난 봄날은 아주 화창했다. 노인은 오늘도 변함없이 기차역 벌판길을 걸어갔다. 햇볕이 제법 뜨겁게 깔리는 벌판엔 실아지랑이가 조금씩 가물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철책선 아득한 이북 땅 하늘엔 흰 구름이 엷게 떠 있었다. 노인은 지금 흰 구름이 떠가는 하늘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고향이 얼마나 천리만리 머나먼 곳인지, 쓰라린 서글픔을 목구멍이 찢어지게 삼키며 붉게 피멍이 든 상처의 진한 아픔으로 새삼 깨닫고 있었다. 한세월 한이 맺힌 인생을 다 마치면서 북망산을 바라보는 노년에 고향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먼발치로나마 고향하늘을 먼눈으로 바라보고 있기라도 하면 한겨울 문풍지를 때리는 삭풍에 식어 내린 가슴에 따뜻한 훈기가 돌아 고단한 삶의 여정에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가 있었다.
「내 세월이 다 달아났을 터인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노인은 짧게 드리워지는 해 그림자를 지고 벌판길을 다 걸어온 기차역을 들어서면서 오늘은 공휴일이라는 걸 생각했다. 관광객들이 몇 떼거리 몰려올 터였다. 것이라는 들 삼거리의 어린 것이 일찍 나올 터였다.
「거기 살면 이 기차역엔 기차가 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 거 아니니?」
여인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듯이 재우쳐 물었다.
「우리 할아버진 고향에 꼭 가야 해요.」
순지는 다부진 소리로 말했다.
「그렇구나.」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여인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할아버지니?」
뚱보아줌마가 물었고, 순지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여기는 기차가 안 오는 역이야.」
안경을 고쳐 쓴 여인네는 혀를 끌끌 차며 노인과 소녀를 가여운 눈길로 다시 바라보았다.
「기차는 기다리면 언젠가 온댔어요. 우리 학교 선생님도 그랬어요,」
순지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줌마도 여기 정거장으로 기차가 좀 빨리 달려오게 해주세요. 매일 같이 기차역을 구경 오는 사람들도 기차가 오게 기다리면 기차가 빨리 달려온댔어요. 우리 선생님도, 엄마도 분명히 그랬어요.」
순지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허허허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게 뭐 어드레 이상해서리 그럽네까.」
여인네들 뒷전 승강장으로 늙수그레하게 지나가던 사람이 발길을 멈칫거리며 말을 던졌다.
「기차야 손님이 기대려야 오디요. 안 그렇습네까? 기차는 뎡거장에서 기대리는 사람이 있어야 달려오는 게구, 기대리는 손님이 없으믄 기차가 뭐하러 오갔습네까.」
다가와 벤치 한쪽에 걸터앉은 노신사는 중절모를 고쳐 쓰고 나서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틸랬디. 노상 말만 남북통일이 될 것 같이 앞세으구서리 저 살던 고향이다 핏줄이 그리운 사람들 애간장만 바싹바싹 태우구 있디들 안캇소.」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로 길게 내뿜는 담배연기가 허공에 원을 그리며 조금씩 흩어졌다. 여인네들은 벤치의 노인과 어린 소녀의 가련한 정상이 애처롭고 측은한 동정의 눈길을 주면서 앞서 승강장을 빠져나간 일행들 쪽으로 빠른 발길을 옮겼다. 아까부터 혼자 사진기를 이리저리 돌려대며 연방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어대던 젊은 사람이 수첩을 펴들고 다가왔다.
「저는 민족공론이란 잡지사 기잡니다. 어르신께 죄송하지만 몇 말씀 여쭤 봐도 되겠는지요?」
기자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다가왔지만 노인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할아버지 고향이 이북이신가요?」
기자는 좀더 다가앉으며 물었다. 노인은 고향이 이북 어디라는 대답보다 한숨을 먼저 푹 내쉬었다. 이따금씩 기차역 승강장 벤치의 헙수룩한 늙은이를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한 마디씩 물어보던 말이었다. 새롭게 단장된 기차역에서 이북 땅으로 가는 기차 얘기를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디 신문사나 방송국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는 사람들은 반거롭게 누구나 똑같은 것을 묻고 사진을 몇 장씩 찍어갔다. 그렇게 여러 장 많은 사진을 찍어가면서도 노인이 죽은 뒤에 영정으로 쓸 만한 사진 한 장 보내주는 사람이 없었다.
월남하신 게 언제십니까?」
  기자는 끈질기게 성화를 바쳤다.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사지가 흩어져 공중으로 날아가고 가슴이 찢어진 생사람의 뜨거운 피로 붉게 젖은 나라 땅이 두 동강이 나는 바람에 이북 고향집으로 돌아가질 못했다우.」
  기자의 거듭되는 물음에 노인은 한마디 대답했다.
「이북에는 지금도 옛날 가족들이 살고 있으신가요?」
「생지옥 같던 전쟁 통에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과연 살아 있는지나 모르겠소. 요행히 마누라, 자식들이 살아 있다면 마누라는 시방 늙은 내 이 모양으로 폭삭 늙은 쪼그랑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구먼. 」
  기자는 노인이 말을 수첩에 낱낱이 적어 나갔다.
「언제부터 이 기차역에 나오셔서 기차를 기다리셨습니까?」
「내 평생이 다 지나갔다오. 왜정 때 물자를 수송하려고 부설한 이 기찻길 중간역
역은 육이오전쟁의 요란한 포화에 부서진 벽돌 몇 조각 나뒹구는 폐허가 되어버린 것을 지난 언젠가 남북간 통일이 되는 것인지 기차가 막힌 숨통이 터지듯 금방 우렁찬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릴 것처럼 역사를 복원해 놓고는 내내 낡아 허물어지도록 방치하더니만 또 무슨 요란법석인지 번듯한 기차역 건물로 말끔한 단장을 해 놓덜 않겠어. 그때는 정말 기차가 곧 달려올 것만 같드구먼. 」
노인은 한 맺힌 말문이 터지듯 간간이 한숨을 섞인 말을 장황스레 풀어 놓았다. 노인에겐 좀체로 볼 수 없던 일이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께선 이 기차역에 나와 기차를 기다리셨군요.」
  중요한 대목처럼 기자는 물었다.
「그랬지. 다 늙어 북망산이나 바라보는 늙은이에게 여한이라면 고향에 가고 싶은 것밖에 더 있겠는가.」
「할아버진 이 역으로 참말로 기차가 온다고 생각하세요?」
  기자는 마지막 질문처럼 물어보며 노인을 애처로이 바라봤다.
「암, 오고 말구. 지난 세월 고향에 가려고 애써온 늙은이를 생각하면 기차도 무정할 수 만은 없질 않겠어.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하는 것이거늘 온 생애를 애달프게 다 바쳐온 것을 쇠바퀴가 굴러오는 철마인들 어찌 무정할 수 있겠나. 이제는 기차가 틀림없이 기적소리를 울리고 달려와 이 늙은이를 고향집에 데려다주지 않겠는가, 젊은이. 」
  노인은 노반이 묻힌 벌판을 멀리 바라보며 우묵한 두 눈을 몇 번 가볍게 씀벅거렸다. 젊은 기자는 기차역의 노인에게서 더 캐묻고 들을 말이 없는 것처럼 수첩을 덮었다.
「할아버지, 사진 한 장만 더 찍겠습니다.」
기자는 고향 가는 북행기차를 기다리는 기차역 승강장 노인의 애달프고 가련한 정경을 연거푸 카메라에 담았다.
「기차는 할아버지 생전에 꼭 기적을 울리며 달려올 것입니다.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돌아갈 시간이 늦은 듯 젊은 기자는 노인에게 굳센 용기를 불어넣어주며 서둘러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한동안 기차역을 에워싸듯 승강장을 가득 채우고 들어섰던 관광객들이 일시에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뒤에 남아 있던 기자가 사라진 승강장은 이제 황량한 분위기로 텅 비었다. 기차역은 아까보다 더한 적막이 찾아들고 있었다.
「할아버지, 우리도 가자.」
아까보다 더한 적막 속에 잠겨 있던 순지는 힘없이 할아버지를 졸랐다.
「우리도 돌아가야지. 그동안 오래도 기차를 기다렸으니 내일은 기차가 틀림없이 오겠지.」
  노인은 또다시 내일을 기약하며 서편 산 너머로 붉게 기우는 해를 바라보았다.
「토요일인 데도 순지가 늦는다고 엄마가 걱정하겠구나.」
「이젠 내가 할아버지랑 동무하고 노는 거 엄마도 아니까 괜찮아.」
「허허허, 그렇구나.」
  노인은 미처 몰랐던 듯이 기쁘게 웃었다. 봄볕 속에 고요하게 올라와 있던 벌판의 갈목들이 서서히 이는 벌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노인은 해가 지는 저녁겉무렵 겉살에 와 닿는 바람결이 아직은 차가웠다. 노인은 벌판의 철길에 눈길을 던지고 바라보았지만 육중한 쇠바퀴가 구르는 대지의 진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노인은 오늘도 아쉬운 마음이 가슴을 치며 밀고 올라와 목을 꽉 메었다.
「할아버지, 기차도 안 오는데 어디를 자꾸 쳐다봐?」
  순지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걸어가며 물었다.
「내가 어딜 쳐다보긴.」
  노인은 약간 무안스레 대꾸했다.
「어서 가지구나.」
  지칫거리는 발걸음으로 승강장을 빠져나오던 노인은 다시 또 한 번 뒷눈질로 승강장 저편 철길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기차역 미련을 눈치 챈 순지는 더 채근하는 말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우리 순지, 다리가 아픈 모양이로구나. 할아버지가 업어주렴?」
  노인은 볼이 통통해진 순지를 달래듯 물었다.
「할아버지가 나 업을 수 있어?」
「업을 수 있고 말구.」
「참말?」
「넌 이 할아버지가 기운 없는 꼬부랑 할아버지로 보이느냐?」
  노인은 어깨를 펴고 두 팔을 힘 있게 흔들어 보였다. 노인은 시간이 멈춰버린 옛날 기억 속의 딸아이에게 못다한 애정을 순지에게 퍼부어주고 싶었다.
「자, 그럼. 어디 할아버지 등에 업혀 보려무나.」
  노인은 구부슴한 등을 순지 앞으로 돌려대고 앉았다. 순지는 딴 짓을 하는 하듯 언뜻 고개를 돌리고 돌쳐서며 이른 봄맞이를 나와 하늘거리고 길섶에 날아가는 나비를 쫓아갔다.
「원, 녀석두.....,」
  노인은 나비를 쫓아가는 순지를 바라보았다. 작은 흰나비는 언덕진 풀밭으로 하늘하늘 날아갔다. 나비를 쫓아가던 순지는 서운하게 나비를 놓치고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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