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인 데도 전조등을 빨갛게 켠 헌병차가 쏜살같이 기차역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엔 서너 대의 까만 승용차들과 대형버스가 기차역 들머리 길을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높은 분들이 오시나부다,」
  노인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역전마당으로 들어선 까만 승용차들과 대형버스에선 거의 모두 늙숙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차례로 내려오고 있었다. 보통 키에 희끔하고 길둥그런 안모에 두툼한 살집으로 우둥부둥한 사람들의 주위를 긴장한 장성과 영관장교들이 둘러싼 호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군인들 속에 살면서 영리하게 다른 분위기를 감지한 순지는 커다랗게 홉뜬 눈으로 할아버지를 돌아봤다.
「우리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지 않으냐.」
  예사롭지 않은 거동으로 드레지게 거드름을 피우는 무리를 시름없이 바라보던 노인은 고개를 바로잡으며 갈대밭 사이의 예전 노반을 따라 자름하게 뻗어 있는 철길로 한숨이 서린 눈길을 던졌다.
「국가안보시찰단이 지금 막 도착해서 여기로 들어오고 계십니다. 여기를 나가주세요.」
허리에 권총을 찬 소령이 뛰어 들어와 다급하게 서둘렀다. 이내 대위가 인솔하는 병사들이 총을 비껴들고 달려 들어와 승강장 주변으로 쫙 흩어지면서 곳곳에 긴장한 부동자세로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빨리 나가세요. 어서요.」
  기차역 주위를 삥 둘러 에워싸고 국가안보시찰단의 신변을 보호할 경계병들을 데리고 들어온  대위는 곤두선 도끼눈발을 세우고 급박하게 노인을 다그쳤다.
「애야, 어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가!」
「아저씨는 이게 안 보여요? 우릴 보고 어디로 나가라는 거냐구요?」
  순지의 야무지고 당돌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대위는 가소롭게 쳐다봤다. 「아저씨는 우리나라 한글도 몰라요? 내가 들고 있는 이 종이판때기가 안 보이느냐구요?」
 겁에 질린 표정 한 구석이 없이 다그쳐 몰아세우는 말소리에 당황한 대위는 졸연 혼이 천리만리 빠져 달아나듯 안개 낀 눈동자처럼 흐린 눈자위로 머쓱하게 바라보았다.
「용감하고 씩씩한 군인아저씨가 갑자기 꽁꽁 언 동태같은 눈으로 쳐다보지만 말고 내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종이판때기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한번 읽어보라니까요?」
순지는 재촉했다. 노인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읽을 줄 모르면 내가 읽어줄 게요. 잘 들어보세요, 군인아저씨. 할아버지는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한글은 몰라도 내 말은 똑똑히 알아들으셨죠?」
「이봐, 그 소녀아이와 노인을 빨리 내보내지 않고 뭘 하는 거야?」
 민첩하게 벤치로 다가온 소령이 대위의 어깨를 툭 쳤다. 대위는 그제야 되돌아온 제정신을 바로잡았다.
「네 할아버지 고향에 가셔야 하는 걸 몰라서 우리가 이러는 거 아니야. 알았어? 그러니까 어서 여기를 나가. 어서!」
  어안아 없이 코웃음을 짓던 대위는 말미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나가면 끌어내!」
  소령이 다시 돌아보며 긴박하게 소리쳤다.
「얼마나 높으신 분들이 기차역에 오시는지 몰라도 여기는 지체가 높고 낮은 사람을 가려 기차를 타는 기차역이 아니질 않소. 나라의 높으신 분들이 오셨다니 오히려 다행이구려. 우리가 댁들의 눈에 한 나라 한 민족 동포로 보이거든 이 기차역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하지 마시오. 지금은 비록 거리의 행려병자 같은 신세로 늙고 병들었으나 나는 소싯적에 이 기차역 대합실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다 기적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기차를 타고 오가던 사람이라오. 그러하니 여긴 내 기차역이 아니겠소. 전후 자초지종을 알았으면 이 늙은이를 내쫓지를 마시오. 총칼을 들고 싸워 이기는 것도 좋지만, 피를 흘리며 싸우지 않고 서로 만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니겠소. 」
노인은 차분한 어조였다.
「시간이 없어요, 할아버지. 어서 일어나세요.」
  승강장에서 내보내려던 어린 소녀에게 따끔한 무안을 당하며 난감해진 대위는 안보시찰단의 승강장 진입이 임박하자 사태가 다급해진 나머지 한쪽에 총을 비껴들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병사를 재빨리 불렀다.
「야, 너 할아버지 모시고 얼른 일어나지 못해?」
  한사코 승강장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소녀와 실랑이를 벌이던 대위의 난처한 낌새를 알아챈 병사는 다짜고짜 벤치로 달려들어 소녀의 여린 팔뚝과 구부슴한 노인의 뒷덜미를 악세게 낚아채어 끌고 나갔다.
 「군인아저씨, 이러지 말아요. 우린 여기서 기차를 기다려야 해요,」
  
 발버둥을 치며 군인의 팔에 매달리던 순지는 마침내 울음    을 터뜨렸다.
 「군인아저씨, 팔이 아파요. 빨리 놔주세요.  
  우리 할아버진 고향 가는 기차를 타야 해요.」
 「기차는 무슨 기차? 이 할아버지는 우리가
   알아.  제 정신이 아니야. 미친 영감이라구.
   이 바보야.  너 그거 알아?」
   병사는 크게 소리쳤다. 노인은 한 번도 뒷걸
   음을 놓거나 발버둥을 치지 젊은 군인이
   떠미는 팔뚝 힘에 맥없이 승강장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생벼락을  당했다.
  「군인아저씨, 우리 할아버지를 놓아주세요.
   할아버진 정말로 기차를 타고 고향에 가셔야
   해요. 군인아 저씨.」
  순지는 병사의 옷섶을 부여잡고 매달렸다.
「빨리 밖으로 나가지 못해!」
  병사는 부여받은 임무에 충살했다. 거의 모두 헐벗겨져 성긴 반백을 넘은 흰 머리들이었다. 하나같이 우둥부둥한 면상들은 혈색이 좋게 기름기가 흐르고 피부가 하얀 얼굴엔 거뭇거뭇한 반점들이 올라앉아 있기도 했고, 대머리는 훌렁 벗겨졌으나 직 검게 남은 뒷머리로 거상에 벗다하게 정력이 차고 넘치는 활력을 지닌 인사도 엿보였다. 별 두 개를 어깨에 단 관할부대의 장군이 수행을 겸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시찰단 속에서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던 한 인사의 얼굴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울지 말고 가만있어!」
  소녀와 노인을 승강장 밖으로 내쫓던 병사는 소녀가 울부짖는 소리에 기겁하면서 무섭게 부릅뜬 눈으로 어린 소녀를 겁박했다.
「알았지. 쉿!」
  병사는 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갖다 붙이며 강다짐을 준 뒤 재빠르게 제 경계임무 위치로 돌아가 총을 얼른 비껴든 부동자세를 취했다. 울음을 터뜨리며 한바탕 소란을 피울 것 같던 순지는 할아버지의 뻣뻣한 얼른 손을 잡아끌며 재빠른 발걸음으로 로 벤치에 돌아와 종잇장딱지의 글씨들이 잘 보이도록 쫙 펼쳐들었다.

        -할아버지는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국가안보시찰단 인사들의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화창한 봄날씨 속에 반들반들 한층 훤한 빛으로 면상들이 밝아 보이고, 투실투실 살진 얼굴들에서 흘러내리는 기름기가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앞으로 땅굴과 연계한 안보관광지로 확대 개발해서 국민들에게 현장감 있는 대북 안보교육장으로 삼을 계획입니다.」
  근엄하게 장군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인사는 흐무진 얼굴로 고개를 끄떡거렸다.
「예측할 수 없는 저들의 도발에 대비한 안전이 중요하다는 걸 잊으면 안 될 것이오.」
  앞에서 우둥부둥한 인사가 말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곤핍하게 설명을 덧붙이던 안내자는 두 손을 맞비비며 머리로 깊이 조아렸다. 시찰단은 다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순지는 종잇장딱지를 앞에 쫙 펴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길게 늘어서서 벤치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고개를 돌리거나 눈길을 주며 관심 깊게 쳐다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순지는 앞가슴께로 내려온 종잇장딱지를 높이 고쳐들었다. 간혹 뒷전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더러 눈길을 주곤 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무감각한 시선으로 먼 데를 바라보며 지나가곤 했다. 무엇인가 잔뜩 기대했던 순지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높이 쳐들었던 종잇장딱지를 힘없이 앞자락에 내려뜨린 채 실망의 빛이 떠오른 순지를 얼핏 돌아보고 난 노인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순지를 면바로 바라보는 것이 민망스러울 것 같은 생각에 먼데로 눈길을 외면했다. 한동안 놀랍게 지고의 위세를 떨어대던 국가안보시찰단 인사들은 싱겁게 발길을 돌리며 승강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승강장 곳곳에 말뚝 같은 부동자세로 국가안보시찰단 경계를 서던 병사들마저 빠져나가버리자 승강장은 또다시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순지는 벌겋게 익은 얼굴의 병아리 같은 입술을 꼭 오무리고 금방이라도 큰 소리로 난폭한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통통한 양쪽 볼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두 눈을 연해 끔적거리고 있었다.
  다른 날보다 유독 피곤해진 노인은 빈창자 속에 나리꽃이나 독버섯이 깊은 뿌리라도 내리고 있는 것처럼 기력이 쑥 빠져 축 늘어진 어깨와 얼룩덜룩 검버섯이 가득 피어난 얼굴에 황량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아무런 기력이 없는 것처럼 움직일 줄을 모르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돌아보던 순지는 눈치가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할아버지, 기차가 오나 보고 올게,」
  승강장을 뛰어나간 순지는 풀밭에 덮인 철길로 내려섰다.
「오늘은 기차가 안 오려나보다.」
  노인은 철길의 순지에게 말했다.
「정말인가 봐. 철길이 아무 소리 없이 잠을 자고 있어. 」
  납작 땅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순지는 철길에 한 번 더 귀를 갖다 붙였다. 따가워진 봄볕에 온종일 달아오른 철길에 귓바퀴가 따끔했던 순지는 이번에 귓바퀴를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철길이 울지 않는다. 항상 할아버지 말하는 것처럼 기차 쇠바퀴도 진짜 펑크가 나서 기차는 오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오늘도 기차가 또 빵구가 난 모양이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
  노인은 벤치에서 몸을 털고 일어나 아주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던 어깨를 추켜올리며 아직도 건강한 몸에 당찬 힘이 남아 있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으쓱 움직이며 두 팔을 크게 벌리기도 하고 앞뒤로 내흔들어가며 펄쩍펄쩍 뛰기도 하였다. 순지는 울지 않는 철길에서 시들하게 올라왔다.
「할아버지, 다 저녁에 누가 기차역으로 오고 있어.」
  누가 급하게 역전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순지는 말했다. 가방을 어깨에 걸멘 사람은 훤칠하게 큰 키로 바람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노인도 고개를 들고 기차역으로 들어서는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어디에서 한두 번 본 듯한 젊은이였다. 역전 마당에서 곧장 승강장으로 들어온 젊은이는 말끔하게 비어있는 승강장을 한번 휘 둘러본 뒤 벤치로 휘적휘적 다가왔다.
「할아버지, 오늘도 역시 기차역에 늦도록 계셨군요,」
  젊은이는 반가운 웃음을 짓고 다가왔다. 노인은 젊은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점ㄹ은이는 벤치의 노인 앞 바투 다가섰다.
「할아버지,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전번에 한 번 이 기차역에 찾아와서 할아버지 사진을 몇 장 찍어간 민족공론 잡지사 박 기자예요,」
어디 무슨 기자라면서 성가시게 이북 고향을 캐묻고 월남은 언제 어떻게 단행했느냐면서 사진을 여러 장 찍어가고 하던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노인은 가느스름한 눈길로 별 관심이 없이 잡지사 기자라는 젊은이를 쳐다봤다.
「할아버지, 저를 기억 못하시겠어요,」
「가만 있자. 그럼 언젠가 한번 머지않아 이 기차역으로 기차가 댕길 거라면서 큰소릴 치고 장담하던 바로 그 기자란 말인가?」
  노인은 어렴풋이 젊은이를 기억해 냈다.
「그래, 다 저녁에 뭔 일로 또 이 기차역엘 오셨소.」
「땅굴 쪽 취재를 들어왔다가 할아버지에게 저번에 찍은 사진을 한 장 전해 드리려고 찾아왔어요.」
  기자는 한쪽 어깨에 걸메고 있던 서류가방을 벗어 지퍼를 갈랐다. 기자는 서류가방에 손을 넣고 서류봉투 하나를 꺼냈다.
「바로 할아버지 사진입니다. 이쪽 사진은 벤치에서 순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구요,」
「까짓 사진 한 장이 뭐라고 서울에서 예까지 먼 길을 또 찾아왔더란 말이우.」
  노인은 젊은 기자의 성의가 고마웠다.
「그런데 할아버지 사진 한 장을 다시 찍어야겠어요.」
「이 사진만도 먼 길에 갖다줘서 고마운데, 뭔 사진을 또 찍나?」
「보시는 것처럼 이 사진은 할아버지가 눈을 감으셨잖아요.」
  사진의 노인은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우묵히 들어간 눈자위에 눈까지 지그시 감고 있어서 노인은 이제 힘들었던 생을 모두 다 마치고 평온한 저승길 떠날 차비를 하듯 잔잔한 모습이었다.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은 게 할아버지야?」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순지는 소스라쳤다.
「참마로 죽은 사람 같구나.」
  노인은 꼭 죽은 사람처럼 고향을 그리며 가슴이 벅찬 꿈을 꾸고 있었고, 그가 기다리던 끝에 올라탄 북행기차는 우렁찬 기적을 울리며 달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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