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극락조(極樂鳥)

                                                                            김 중 태

  

 적이 드문 산간 도로로 접어들면서 나는 그녀가 머물고 있는 수계사(修戒寺)를 거의 다 와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얗게 눈이 덮여 깊이 흘러들어간 골짜기는 마냥 고요했다. 나는 한겨울 눈 덮인 깊은 산속 절간에 들어와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도 전설에 묻힌 백설의 골짜기로 고요히 빨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토록 깊은 산 속 절간까지 찾아 들어오다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여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녀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고, 돌연히 찾아왔다가 어디론가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진 것만도 그러했다. 나는 전화 자동응답기에 녹음이 되었던 그녀의 생생한 목소리를 상기했다.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여전히 혼자시로군요. 여기는 만불산수계사에요. 남선생님의 고향과 멀지 않은 곳이니까 잘 아실 거예요. 산사의 겨울 겨울산사(山寺) 풍경을 스케치하며 한동안 머물 예정입니다.」
 다시 찾지 않으리라 여겼던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흥분했다. 무엇을 생각하고 말 것이 없었다.
「그땐 내가 참으로 잘못했어.」
 바람에 구르는 허공의 낙엽처럼 떠돌며 어디론가 자취없이 사라지던 그녀를 돌이켜보면 환상을 쫓는 화가라고 할까. 아무튼 그녀는 그런 화가였다. 지난 가을 뜻밖에 전화를 걸어와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여자로서 참으로 꺼내기 힘든 말을 꺼냈고 가슴을 열고깊은 마음으로 갈망하던 것을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척 화제(話題)를 바꾸며 거절했던 것은 신문사 마감에 쫓기던 원고 때문이 물론 아니었다. 우선 그녀는 생활에 무척 피곤하게 지처 보이는 것이 마치도 질퍽거리는 개펄에서 고단한 갯일을 막 거두고 힘들게 돌아온 아낙네 흡사했다. 그때까지, 아니 이미 벌써 자신의 삶을 이루고 있던 것을 한꺼번에 모두 잃어버리듯 우수에 찬 실의와 절망으로 무겁게 어둡게 피로에 젖어 있던 그녀의 모습이 젊은 한 사내의 욕망을 무참히 잠재워 버렸던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후회했다. 분명히 나는 분위기 없이 오만하고 매마마른 권위에 가득 차있었으며 사람이 덜된 위선을 떨고 있었다. 가슴이 뜨겁게 열린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는 분홍빛 감정이 물씬 젖어 있었고, 한순간이라도 뜨거운 욕망을 받아들여 정념의 폭죽으로 피어나지 못하고 본능마저 저버린 채 냉담한 이성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그 감당하기 힘든 모욕적 감정으로 철쭉꽃 같이 진홍빛으로 물들던 얼굴을 생각하면 나는 혼자서도 낯이 뜨거워지고 했다. 축축한 눈으로 비밀스럽고 바라보던 여자의 타는 갈망, 내속을 주저없이 열어보이던 대범과 절실한 감정의 소용돌이, 예기치 않은 의외의 반응에 한순간 허망하게 텅 비어 적막하던 얼굴, 수모를 동반한 절대의 좌절과 쓸쓸하고 어두운 슬픔, 여심의 핏빛 상처는 아마도 쉽게 잊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이제라도 나는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도사린 감정의 상처를 위로하며 치유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정중한 사과와 열정, 그 영혼의 입김으로 꿈결 같은 사랑을 퍼부어야 했다. 한순간 허공의 불꽃같은 격정일지라도 좋았다. 허공에 펄럭거리는 불꽃이 다 타버린 죽음의 잿더미에서 부활하는 불사조의 영혼으로 사랑을 노래할 수 있다면, 나는 그걸 소망하면서 세속의 일상을 홀연히 벗어던진 산사를 생각했다. 아무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원시의 시간들, 한겨울 적막한 산사를 홀로 지키듯 쓸쓸히 스치는 바람에 울리는 풍경소리의 여운, 그런 분위기를 상상만 해도 나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나는 차창을 조금 연 뒤 차가 달리는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어느 새 해가 노란빛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둥근 얼굴에 피어나는 안온한 미소와 관능적인 모습을 떠올렸다.
「그땐 미안했어요. 내가 진심으로 사과할 게요.」
 그런 사과 따위를 할 필요도 없었다. 자기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던 만큼 그녀는 이제 티 없는 마음으로 조용히 자리 잡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녀는 과연 극락조는 찾았을까?」
 나는 그녀가 버림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영원한 평화의 세계, 극락조가 노니는 낙유(樂有), 도솔천의 대승보살이 이룰 용화세상을 꿈꾸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환상이었다.
「당신이 찾는 새는 없어요. 그 새는 실체가 없는 가상의 신조(神鳥)인 것이지요.」
 그녀를 처음 만나 건 인사동 화랑이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나이프로 그린 것이었다. 그림이란 물론 보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 다른 의미를 띠고 다가온다고 하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채색이 강렬하고 빛과 함께 신선한 생동감을 주었다. 질박한 녹색의 나뭇잎에선 빛이 흐르고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퇴색한 황갈색의 낙엽에선 어둠이 내리는 창가에 은은한 불빛과 함께 차이코프스키가 흘러드는 느낌이었다.
 그 후 나는 취재한 것들을 정리해서 한 권의 책을 내고 다시 취재에 나섰다. 땅굴 속의 콩나물시루 같은 전동차에 짐짝처럼 실려 다니는 개미의 생활, 시시각각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각박한 필사의 생존이 꿈틀거리는 살판에 사람이 사람을 먹고 살듯 자연이 없는 거대한 시멘트 공학의 도시, 희죽 같은 매연 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시간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듯 오지에 소외된 사람들이 어디엔가 자기들의 생활을 억세게 고집하며 풍요로운 자연 속에 살아가는 한구석쯤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궁벽한 오지 탐험을 하면서 남해안 끝자락 여랑(汝浪)이라는 벽지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다.
활인판매 현수막이 크게 내걸린 전자상가와 가구점, 유명 브랜드 옷가게, 식당과 카페, 커피솝, 술집들의 크고 작은 간판, 네온사인들이 나붙어 해안 소도회의 화려한 중심가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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