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는디. 암자로 들어가 지시는가?.」
 혼자 하는 소리로 수화기를 다시 집어든 주인  남자는 다른 암자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혜인스님이시오? 매표소 황씹니다. 주무시  는디 죄송헙니다만 거기에 혹시 그림 그리는  분이 지신가요?......없다구요.」
 둬 군데 암자로 전화를 더 걸어보고 난 주인  남자는 전화기를 밀어놓으며 바로앉았다.
「지실만헌 디는 다 전화를 걸어봤는디 그런분은 안 지시다는디요.」
 나는 전화 자동응답기에 목소리를 남겨놓은 그녀가 절 안 어딘가에 머물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어딘가 있을 겁니다.」
「글쎄요. 알어 볼만 헌디는 다 전화를 걸어본 셈인디 자살헌 중 때미 경황들이 없는 디다 깊어가는 밤인께 지대루 알어보구 대답을 히었겠소. 내일 일찍 들어가서 찾어보시는 도리밖에 없겠소.」
 주인 말대로 나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여관에서 유숙허자면 도로 나가야 허는디, 그럴 거 없이 우리 식당 방에 연탄불을 한 장 넣어디릴 틴께 그냥 주무시우.」
 고마운 생각에 나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밥값하고 숙박빕니다.」
「먹든 밥을 디린 건디 밥값은 무신 밥값이우. 이부자릴 갖다 디릴 겅께 씻을라먼 수돗가에 담아 논 물을 쓰시우.」
 숭굴숭굴한 부인은 자리를 일어나 장농의 이불 한 채를 꺼내들고 나갔다. 나는 내외의 후덕한 인심을 가슴 깊게 느끼며 부인을 뒤따라 식당 방으로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커다란 냉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으려니 사정을 모르고 성급하게 달려온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던 반가움에 그만 앞뒤를 가릴 정신이 없었던 것이고, 발이 묶인 것은 이제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극락조를 찾았을까?」
 문득 그녀가 동경하며 화폭에 담고 싶어하던 극락조가 머리속에 떠올라 막연히 그리어졌다.
「없어. 극락조는 신조일 뿐이야.」
 사람은 허상을 보고 산다던가. 그녀나 나 자신이나 소원하고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찾을수 없는 세상에서 한낱 환상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럴는지 모르지......」
 그러나 풍도, 그 미륵섬에서 그녀와 함께 보낸 사흘은 그야말로 순수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 속에서 티없이 서로의 갈망을 채우던 꿈같은 시간이었다. 육지로 돌아왔을 때 그녀와 나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카페에서 손님과 주인으로 만났다.
 며칠, 그리고 한 달이 다 지나도 그녀는 캔버스에 극락조를 그리지 못했다. 풍도에서 사흘을 보내는 동안 그 새는 어디로 둥지를 옮겨버렸는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그런대로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한 원고를 정리하면서 한 달쯤 더 여랑에 머물러 있다 서울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런저런 잡지사 원고에 쫓기면서 그녀를 거의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잡지사에서 우연히 카페에 자주 들리던 김 소암 선생을 만난 것이다.
「아이구우, 남정민 선생 아니시오?」
 몇 차례 자리를 같이했던 김선생은 먼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시집을 내시게 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나는 김 선생이 손에 들고 있는 시집의 표지를 보고 그가 서울에 올라온 연유를 알았다.
「어디 시집이랄 수 있다요. 참말로 부끄럽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시를 잘 모르지만 김 선생님 시 만큼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시는 아직껏 보지를 못했습니다. 해안의 풍물과 소외된 곳에서 불평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수하고 질박하고 평화로운 정경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향토의 소박한 정서와 심리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우러나온 여랑의 꿈같은 시 들이지요.」
 나는 김 선생의 시를 극찬했다.
「남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몸을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린이들과 평생을 살아온 탓인지 김 선생은 숫진 호안(好顔)이 붉게 물들었다.
「아마 좋은 찬사가 쏟아질 겁니다.」
「그만하시지요. 늙은 촌놈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기쁜 흥분을 가라앉히고 난 김 선생은 표정을 바로 들었다.
「오두막 윤 선생 소식은 못 들으셨소?」
 묻는 어감이 안 좋은 일이었다.
「여랑 말입니까?」
 나는 천연덕스럽게 반문했다. 김 선생은 내가 그녀와 다감하게 지내던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알고 계신 줄 알었더만 모르고 계셨는갑소잉.」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묘연해져 불덜 안했소.」
「어디로 갔다구요?」
 나는 농담이 아닌 것을 알고 당혹스럽게 물었다.
「남선생이 올라가고 나서 얼마 안되부렀지요잉. 어느날 오두막에 나가본 께 카페 문이 닫혀부렀등먼 그 뒤로 종적이 묘연해져부렀소. 말을 들어 본께 얹혀 있든 이 투사 선생은 집에서 찾아와 갖고 데려갔다고 그라고 피붙이같이 한 집에 데리고 살던 승범이 남매도 즈이들 갈 길로 갔다요. 소리허는 서 명창 말은 윤 선생이 부천(富川) 부모님들이 계신 집으로 갔다고 허드먼 또 한참 있다 허는 말이 거기서도 세 아이를 부모님께 맡겨놓고 어디론가 훌쩍 가부렀다요.」
 김 선생은 무척이나 아쉽고 걱정이 되는 어조로 말했다.
「여랑에서 아주 떠났다는 말인가요?」
 나는 전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잠시 몸이 굳어 있다가 맥이 풀리는 소리로 물었다. 파산인지, 기행(奇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이 있었을까?」
 그러니까 내게 그녀가 찾아온 것은 여랑을 떠나온 직후였던 것이다.
「극락조는 환상이오.」
나는 그녀가 바라는 용화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지 않았다.
「흐음......」
방이 추운 것보다 나는 행방이 묘연한 그녀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몸을 계속 뒤채이다 나는 부연하게 어둠이 씻긴 유리창문을 바라보았다. 날이 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잠자리를 일어나 창문을 열고 사찰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흰 눈이 덮힌 산 위로 창백한 달이 떠올라 있었다. 차갑게 언 달빛은 초저녁에 수묵빛을 띠고 있던 골짜기까지 골고루 비추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수계사에서 이미 떠나고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불안은 날이 샌 아침까지 이어졌다.

소설내용보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