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얼음장 같은 방에서 추위에 떨고 난 나는 자동차 안에서 히터를 켜놓고 몸을 녹였다. 매표소에서 절로 들어가는 길은 몇 사람이 오르내린 발자국이 찍혀 있을 뿐, 눈이 조금도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었다. 「절간 어디에 있을까?」
 나는 승용차에서 내렸다. 산골짜기의 찬공기가 싸늘하게 몸을 휘감았다. 나는 외투를 단정히 하고 절을 향해 걸었다. 간밤에 눈발이 나부꼈는지 발자국이 찍힌 눈길엔 가랑눈이 덮혀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탐스런 눈꽃이 나붙고, 하얀 눈더미 위엔 설치류의 작은 발자국들이 이리저리 나 있었다. 길 양편에 앙상한 나목들이 하늘로 뻗어올라간 것을 보면 녹음이 우거진 여름엔 길이 어두컴컴한 동굴을 이루었을 것 같았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멀다하게 걸어 올라온 나는 석탑과 대웅전이 보이는 경내로 들어섰다.
고요했다. 어디로 먼저 가서 그녀를 찾아야 될까하고 망설이다 나는 절간의 살림살이를 맡아하는 원주실을 찾았지만 승려가 죽어 경황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미처 발길을 멈추고 경내를 오가는 승려에게 물어 볼 요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타나는 승려가 없었다. 승려가 죽은 탓인지 경내는 엄숙한 분위기로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요사체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
 나는 절 마당에 쌓인 눈 더미를 돌았다.
 프드드득!
 별안간 깃을 치는 소리가 허공을 스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환청이었다. 햇빛이 비쳐드는 나뭇가지에 반짝이는 눈꽃을 털며 박새가 한 마리 날고 있었다. 저만큼 높직이 올라간 석축 위에 우람한 극락전이 보였다.
「저 저건......」
 순간 나는 발걸음을 무춤하고 극락전을 다시 바라보았다.
「저 새들은......」
 극락조였다. 사찰의 외벽에 그려진 선(禪)의 십(尋)우도는 간혹 보았어도 화려한 깃털로 노니는 극락조를 그려놓은 벽화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흰색의 머리에 빨간 깃털이 우아하게 목을 덮고 내려오면서 밝은 주홍빛 배가 차츰 희노란 색으로 변하여 새하얀 꼬리를 해오라기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부리는 푸른색이고 눈 밑에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 날개를 펴고 나는 놈이 있는가 하면 머리를 위로 쳐들고 노래하는 놈이 있고, 살포시 깃을 접고 내려앉는 놈과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놈이 있고, 양 날개를 쫙 펴 올리고 춤을 추는 놈이 있는 반면 어떤 놈은 나뭇가지를 물어오고,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먹이를 찾는 놈도 있었다.
「여기로구나!」
 나는 극락전의 벽화에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탄성을 발했다. 화려한 새들의 즐거움과 평화, 극락은 한마디로 생을 옥죄는 온갖 속박에서 벗어난 대자유의 궁전, 즐거움과 평화의 세계였다.
「여기에 있다.」
 나는 추운 한 밤을 불안 속에 떨던 마음을 추스르며 그녀가 고요한 눈 속의 골짜기 어디에선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 여기에 있어.」
 무수한 새들의 화려한 벽화에서 나는 좀처럼 눈길을 떼지 못하고 뒷걸음질로 극락전을 이만큼 물러서는데 누가 옷깃을 스쳤다.
「죄송합니다.」
 스님이 합장으로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스님, 말씀 좀 묻겠습니다. 여기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아시는지요?」
「그림 그리는 분이시라면 보덕스님께서 잘 아실 텐데요.」
「보덕스님요?」
「지금은 다비식 준비 바쁘실 겁니다.」
 스님은 돌아서려고 했다.
「스님께선 그 화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십니까?」
 나는 지나치려는 스님을 붙잡고 물었다.
「어쩌다 한 번씩 공양하시는 걸 보긴 했습니다만 어디에 계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계시다면 아마 암자에 올라가 계실 겁니다.」
「암자라면?」
「어느 암잔지 모르지만 한참 올라가셔야지요. 저쪽 개울이 있는 골짜기로 올라가시다가 첫번째 암자가 나타나거든 거기 혜인스님께 한 번 물어보시지요.」
스님은 몸을 돌리고 요사채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개울의 바위들이 둥긋둥긋 눈에 덮여 있는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내 기슭을 따라 올라간 언덕에 발자국이 찍힌 길이 나 있었다. 나는 사천왕상이 큰 주먹과 퉁방울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있는 응징전(膺懲殿) 앞을 지나 바위덩이가 쌓인 골짜기로 걸어 올라갔다. 음지에 난 눈길은 미끄럽게 얼어붙어 있고 하얗게 쌓인 눈더미가 무릎 위로 올라왔다. 나는 바위 모퉁이를 돌아 눈길을 헤쳐 올라갔다, 허름한 암자 하나가 음습한 한풍 속에 삭막했다. 마루에 노승이 하나 목인처럼 앉아 있었다.
「스님, 말씀을 좀 여쭙겠습니다.」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노스님은 잔잔한 얼굴을 들었다.
「혹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어느 암자에 있는지 아시는지요?」
「글쎄요. 이 앞으로 오르내리는 걸 보긴 했습니다만 어느 암자에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이 골짜기에 암자가 몇 개나 있습니까?」
「여러 개가 있지요. 중들이 없는 덴 꼭대기 세진암 밖에 없을 것인데.」
「그 암자는 어디에 있는지요?」
「골짜기를 다 올라가서 오른 쪽으로 큰 바위를 보고 조금 들어가면 돼요. 거긴 누가 기거하질 않을 텐데.」
 노스님은 가늘게 주름진 눈을 다시 들어올렸다. 자름하게 내려온 산자락 너머 골짜기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비장의 연기였다. 그녀가 있는 곳을 안 이상 나는 다른 일에 관심없이 노스님의 암자를 나왔다.
 눈이 쌓인 골짜기를 헤쳐 올라갔다. 금세 숨이 턱에 차고 잔등에 땀이 배었다. 비탈진 굽이 길을 몇 번이나 미끄러지며 힘들게 기어 올라갔다. 바위 골짜기가 험했다. 어디가 길이고 골짜기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지친 한숨을 토했다.
바윗덩이들이 눈을 하얗게 덮어쓰고 올라온 골짜기는 아주 고요했다. 악취가 흐린 혹세를 완전히 떠나오듯 이런 골짜기가 없다 싶은데, 무겁게 눈을 쓰고 개울로 휘늘어진 소나무가 우수수 눈 더미를 쏟아 내렸다. 나는 허벅지가 빠지는 눈 속에 허우적거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크고 둥글넓적하게 하늘을 보고 올라간 바위가 있었다.
「그림도 좋고 예술도 좋지만 이런 데까지 들어와 있을 게 뭐람.」
  나는 그녀가 쌓인 눈 속에 오르내리지를 못하고 굶어죽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허덕지덕 골짜기를 헤쳐 올라갔다. 눈 속에 파묻힌 암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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