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로군.」
 나는 정신없이 골짜기를 올라섰다. 가파른 비탈에 산제비 집처럼 올라앉은 암자는 감도는 한풍 속에 잠적했다. 돌계단을 기어오른 나는 암자 방문 앞으로 성큼 들어섰다.
「윤 선생님?」
「......?」
 아무런 대답이 없었었다. 나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텅 빈 방에선 써늘한 한기와 함께 유화의 오일 냄새가 풍겼다.
「떠났구나.」
 허탈감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전신을 휘감았다. 그랬다. 배가 고파 남의 가게에서 두부 한 덩이를훔쳐먹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이 자수한 뒤 응분의 형벌을 받고 부랑아들과 한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 충청도 <달맞이 집>에 취재를 다녀와 재생해 본 전화 자동응답기의 녹음된 그녀의 말소리가 며칠 전의 것이었음을 나는 비로소 생각해 냈다.
「내가 정신이 없었던 거야.」
나는 서둘러 골짜기를 내려왔다. 경내로 들어선 나는 그녀가 골짜기 잔암에서 거처를 다른 데로 옮겼을 것 같은 미련을 갖고 보덕스님을 찾았다.
「보덕스님을 좀 뵈려고 하는데요?」
나는 법당에서 나오는 스님을 붙잡고 물었다.
「보덕스님이 다비장에서 내려오셨는지 모르겠네요.」
극락전 딋골짜기를 얼핏 돌아보고 난 스님은 대웅전 마당을 걸어갔다. 다비장에선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었다.
「아, 저기 내려오시는군요.」
석탑을 돌아가던 스님은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극락전 모퉁이로 내려오던 스님은 극락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나는 잰걸음으로 쫓아갔다.
「보덕스님이시지요?」
「그러합니다만......」
「이 절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어디 있나 해서요?」
>나는 성급스레 물었다. 보덕스님은 작은 몸을 멈칫했다.
「윤 선생님 말이신가 보군요?」
고운 얼굴이 경직되는가 싶던 보덕스님은 은은한 표정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떠났어요.」
「역시 그랬군요.」
나는 전신의 힘이 쭉 빠졌다.
「골짜기 먼 암자까지 올라갔다 오셨군요.」
보덕스님은 지친 모습을 보고 알아차렸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었나요?」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남선생님이지요? 잠깐만 기다리시지요.」
보덕스님은 몸을 돌리고 극락전 마당을 걸어 나갔다. 나는 극락전의 벽화로 눈을 돌렸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는 새들은 금방이라도 프드득 날개를 치며 허공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보덕스님은 들고 온 그림을 내밀었다. 나는 잘 포장이 된 그림을 묵묵히 받아들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요.」
 보덕스님은 나부시 합장을하고 돌아섰다.

 


 가 수계사에서 돌아와 집에 막 도착해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림의 액자제작을 부탁해 놓은 화구상이었다.
「그림을 잘못 가져오신 것 같습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어리둥절했다.
「작업 몰딩을 꺼내놓고 선생님이 가져오신 그림 포장을 뜯어보니 아무 것도 없는 캔버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니요? 」
「발색과 내수성이 뛰어난 유화 캔버스인데 물감 한 점 묻어 있지 않은 캔버스입니다. 선생님께서 그림을 잘못 가져오신 게 틀림없습니다.」
 수화기에서 흘러드는 화구상의 말은 명료했다.
「그 그럴 리가...」
 나는 마치도 현란한 유령의 유혹에 빠져 미망의 세계를 헤매다 돌아온 사람처럼 한동안 헤어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찬바람이 스치는 창밖의 어둔 밤하늘엔 둥근 달이 새하얗게 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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