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다른 게 없구나.」
  나는 실망스럽게 부둣가로 걸어 나오면서 한동안 버스 뒷좌석의 아낙네들이 시종여일하게 가진 놈들의 사나운 등살에 못살겠다고 볼멘소릴 하던 불만을 생각했다.
「물신주의는 어디나 다름없나 보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포구 밖으로 수평선이 아득한 바다는 6월의 햇볕이 뜨겁게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배들이 연돌에 고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부두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아무도 없구나.」
 고단한 여정의 몸이 한번은 사람 냄새 물씬한 인정에 푹 젖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나는 멀리 떠나온 어느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은 이방인처럼 고달픈 외로움에 떨었다.
「어디를 가나 똑같았지.」

 몸이 피곤했다. 발도 부어 있었다. 나는 무겁게 쳐지는 몸을 가누며 한동안 앉았던 자리를 일어났다. 나는 부두에서 방파제를 따라 시내 쪽으로 걸었다. 도로 연변에 해당화가 붉게 피어 있었다. 동백나무숲에 묻힌 건물엔 <오두막>이란 카페간판이 나붙어 있었다. 잠시라도 좀 편안 몸으로 쉬고 싶었다.
 카페로 걸어갔다. 카페는 손님들이 없이 조용했다. 나는 카페 출입문을 밀고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실내에 잡다한 물건들이 너절하게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카페가 아니라 마치도 극장의 소품실 같았다. 살이 부러진 꽃살문과 북, 장고, 물레, 베를 짜는 바디, 방패연, 얼레, 등속과 문간의 그물자락엔 낙서 쪽지가 나붙어 있었다. 모든 것은 낡은 잡동사니들이었지만 사람의 손때가 베어 아련한 정취를 풍겼다. 모과 바구니가 놓인 뒤주 윗벽엔 가난하고 버림받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기이하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빈센트 반 고호의 볼이 홀쭉하게 턱이 빨린 초상화가 걸려 있고, 도회의 많은 괴로움을 견디어낼 것 없이 조그만 행복을 누리며 고요한 삶을 바라던 전원에서 시골 풍경을 찬란하게 그린 ‘감자를 먹는 사람들’과 ‘두 마리의 청어’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리고 이젤과 빠레뜨, 나이프, 캔버스 같은 화구가 한쪽에 놓여 있었다. 주인이 화가인 것 같았다. 건물 옥탑에 살림방이 있는지, 목조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이 계셨군요.」
 수수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여자는 오디오로 다가가 카세트를 바꿔 넣었다. 고풍스런 실내 분위기에 걸맞게 잔잔한 클래식이 흐를 듯 했지만 판소리가 울렸다.
「제가 잘못 알고 들어온 것 같군요.」
 나는 화가의 작업실을 카페로 잘못 알고 들어온 것 같아서 벗어놓은 배낭을 집어
들어 한쪽 어깨에 걸멨다.
「소리가 시끄러우신가 봐요.」
 그녀는 미소를 짓고 물었다. 그녀의 깨끗한 민낯은 분홍빛이 나는 소라의 미색을 띠고 있었다. 아니 물기를 축축이 머금은 꽃잎을 연상시켰다. 나는 그녀의 타는 듯한 눈매와 시원하고 차분한 얼굴에 장미꽃처럼 피어나는 미소하며 관능적으로 볼륨을 지닌 몸매의 아름다움에 나는 놀랐다.
「저는 카펜 줄 알고 들어왔습니다.」
「맞아요.」
 그녀는 오지오의 볼륨을 줄여 놓았다.
「소릴 하는 친구가 올 때가 돼서요. 우리 카페에 처음 오신 분 같은데 제가 차 한잔 대접할 게요.」
 그녀는 곧 커피를 한 잔을 가져왔다.
「여행이신가 부죠?」
  그녀는 배낭을 돌아보고 물었다.
「여긴 아무 것도 볼 게 없어요. 경치가 좋은 곳도 아니고 고장의 무슨 특산물이 나는 것도 아니구요.」
 그녀는 소박한 어조로 말했다.
「개펄에 의지해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 곳이라는 말도 되겠군요.」
 나는 조용하고 빈약한 고장의 예스런 풍물을 상기하며 듣기 좋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빈센트 반 고호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과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반 고호를 보고 지상에 유배된 천사라고들 한다지요?」
「고요하게 살기를 바라던 그의 삶은 실패 했죠. 생애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고 할까요.」
 나는 그녀가 화가라는 걸 알아차렸다.
「작품을 하시나 보지요?」
「작품요?」
 그녀는 되묻는 소리로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구석에 놓인 이젤의 캔버스를 돌아봤다. 그녀는 다소곳한 자세로 말이 없었다. 중년 남자 하나가 들어와 벽 쪽의 의자에 앉았다. 연약한 어깨가 무기력하게 쳐져있었다. 카페를 자주 찾아오는 손님 같았다. 사내를 돌아보던 그녀는 발소리가 나는 출입문 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하얗게 소복을 입은 듯한 여인이 들어왔다. 단아한 몸으로 쪽찐 머리가 아주 고왔다.                         
 「김회장 어딜 갔나보지?」
「그 배불뚝인 날 미친년으로 아니까.」
 여인은 퉁진 대꾸를 하고 나서 나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봤다.
「처음 보는 손님이신데......」
「여행을 오셨나봐.」
「외진 벽지 개펄바닥에 뭐 볼게 있다구. 오늘은 나비 없는 꽃밭 청승이 싫으니까 얼른 북채나 잡아.」
「날 보구 나비가 되라구.」
 그녀가 대꾸했다. 판소리 마당에서 창자(唱者)가 꽃이라면 고수(鼓手)는 나비에 비유되던가. 그녀는 북채를 집어 들며 북을 안았다. 여인은 목청을 가다듬을 것도 없이 곧장 소리의 아니리 사설로 나왔다.
「남해 용왕이 우연 득병허여 백약이 무효라 혼자 앉아 탄식을 허시는디......
 소복 여인의 애원과 비조를 띤 소리는 진양조에 이어서 엇머리로 들어갔다.
 쿠웅 쿵따악 구웅탁 구웅
 소리를 밀고 당기며 맺고 푸는 강유(剛柔)와 고저의 기복으로 능숙하게 장단을 짚어주는 고수의 솜씨도 일품이었다. 잦은몰이가 이어지면서 소리꾼의 조그만 얼굴엔 은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히었고, 그녀는 어긋남이 없이 북채를 두드렸다. 갑작스런 소리마당에 나는 깊게 빠져들었다. 토끼를 잡아먹으려는 독수리가 나타나면서 죽게 된 토끼는 수로 천리 먼먼 길에 겨우겨우 얻어온 간을 무주공산(無主空山)에 던져두고 왔다는 애원 청승의 중중머리를 넘어서 다시 중머리로 치닫던 소리는 언중머리로 접혀 마지막 장단으로 끝을 맺었다.
「죄송해요, 시끄럽게 떠들어서......」
 북채를 내려놓고 다가온 그녀가 사과했다.
「아닙니다. 모처럼 듣는 소리라서 그런지 아주 좋은걸요.」
 취재여행에 아무런 새로움과 사람의 냄새를 훈훈하게 느낄 수 없던 나는 낭만적인 서민의 소리에 푹 빠져 피로에 지치고 실망에 차 있던 마음이라도 후련했다.
「나 갈게.」
판소리를 마치고 땀에 젖은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엽차로 목을 축이던 소리꾼은 내게도 가벼운 목례를 던지고 카페를 나갔다. 혼자 앉아 있던 중년도 어느 결에 자리에서 나가고 없었다.
「한이 많은 친구에요.」
 그녀는 소리꾼 친구 얘기를 꺼냈다.
「남편이 수산물 공장과 냉동공장, 제재소까지 가지고 있지요. 이 고장에서 제일 가는 사업갑니다. 제이시(JC) 회장도 맡고 있지요. 아까 보셨듯이 그 친구는 조그만 해가지고 예쁘지요. 김 회장한테 붙잡혀서 일찍 결혼을 했지요. 그런데 김 회장은 아내의 판소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아요. 거지와 광대노릇은 사흘만 하면 죽어도 그만두지 못한다지만 그 친구는 소리에 대한 열정이 유난하지요. 광주민중항쟁을 아시겠지만 그때 중학교에 다니던 외아들을 잃었어요. 어떻게 죽은 건지 알 수 없이 실종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 뒤로부터 그 친구는 한시라도 소리를 못하면 미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아요. 발작을 하는 거지요. 남편은 감시하는 사람까지 붙여서 집에 가둬놓고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집에서 혼자 소리를 하다 틈만 나면 훌쩍 뛰쳐나오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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