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없는 시간을 메우듯 그녀는 소리꾼 친구의 사연을 계속 풀어놓았다.
「한 번은 남편이 소리에 대한 소원을 풀어주겠다면서 이 고장 유지며 사업가들을 극장에 모두 불러 모아 크게 한마당을 벌여줬지요.」
 그녀는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머금었다.
「고장 유지들이라는 게 시내 건물임대나 수산물가게, 고깃배 한 두 척에 무슨 대리점을 하면서 관변단체 지부장 직함을 하나씩 갖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김 회장은 아내에게 대단한 일을 해준 것처럼 생색을 내었지만 그건 결국 김 회장 자신의 거창한 광내기 행사에 불과한 것이었지요. 그런 행사에 만족하고 잠잠해질 소리꾼은 물론 아니었구요.」
「조용하고 좋은 곳인데요.」
 나는 해안의 퇴락한 소도회가 주는 소박한 인상을 말했다.
「시골이잖아요.」
「시골 촌닭이 관청 닭 눈알을 다 빼먹고, 서울 놈 못 속이면 보름씩 배를 앓는다고, 요즘은 어디를 가나 한수를 더 하지요.」
「그런가요.」
 나는 그녀와 함께 웃었다.
「그런데 여긴 사람들이 퍽 온화하고 유순해 보입니다.」
「가난한 고장이에요. 고기잡이도 시원치 않고 자연경관이 좋다거나 특별히 나는 것도 없이 척박한 곳이지요.」
   나도 한적한 부두에서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잔잔한 얼굴로 잠시 말이 없었다. 무덤덤한 분위기로 대화가 끊기면서 나는 이젤의 캔버스로 눈길을 던졌다.
「화가신가 보군요?」
「화가는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약간 쑥스런 낯을 붉혔다.
「이런 촌구석에서 그림을 그리면 무얼 하겠어요. 학생들이나 몇 명 지도하고 있어요.」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고 난 그녀는 힘없이 꺼낸 말에 토를 달았다.
「꿈이나 먹고 사는 거지요.」
 그녀는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가난하고 외진 고장에서 그녀가 어렵사리 작품을 하고 있다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친구 얘길 좀 더 할까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시 얘길 꺼내었다.
「얼마 전의 일이었어요. 그 친구가 갑자기 부산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실려 갔어요.」
 어이없는 실소를 짓고 나서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 친구가 흰 소복을 입은 버선발로 한밤중에 장삼을 휘저으며 거리로 나온 거예요. 그 광경이 어땠겠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과바구니에 놓인 담배를 가져왔다.
「저 담배 좀 피울 게요.」
 그녀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밤중의 아스팔트 찻길에 웬 소복을 입은 여자가 긴 치맛자락을 끌며 장삼을 펄럭거리고 춤을 춘다고 생각해 보세요. 영락없는 미친 여자지요. 까딱하면 야간택시에 치일 뻔 했지요. 그걸 본 방범대원이 차도로 뛰어들어 파출소로 끌고 간 겁니다.」
 그녀는 생각해도 우스운 광경처럼 말했다.
「파출소 당직순경은 방범대원이 미친 여자라고 끌고 온 여자를 자세히 보니까 김 회장의 부인인 거예요. 순경은 깜짝 놀라서 김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그래서...」
「정신병원으로 데려간 거지요. 그런데 의사가 정신감정을 하고 나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랍니다. 김 회장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며칠 더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다시 한 번 더 감정을 한 뒤에 집으로 데리고 왔지요.」
 소리꾼의 기이한 행동을 들으면서 나는 그녀의 얼굴에 잠긴 우수를 보았다. 그것은 생활의 어두운 일면에서 은연중 깃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친구는 그런 미친 행동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집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져버린 알몸으로 소릴 하는가 하면 한밤에 춤을 추며 공동묘지를 헤매곤 했지요. 보다 못한 남편은 섬에 있는 별장에 데려다 가두어 놓았고, 그 친구는 그 별장에서 나온 지가 얼마 안 돼요.」
그녀는 이야기를 끝냈다. 표정에 힘이 없었다. 미색의 선한 얼굴에 피어나던 미소와 매혹의 눈빛은 카페의 손님에게 던지는 일종의 예의였는지, 그때까지 아름답게 빛나던 삶의 열정이 한순간에 사라지듯 미소가 가신 그녀의 얼굴엔 어둔 들녘 같은 우수가 서리고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동안 카페엔 손님 두엇이 들어와 앉고, 열 서너 살 쯤 되는 아이들 셋이 나타났다. 큰 사내아이는 뇌성마비로 한쪽 다리가 가늘게 휘고 입이 돌아간 지체장애아였다.
「어서 집으로 올라가. 누나가 저녁밥을 지어놓았을 거야.」
 그녀는 애정이 깊게 배인 말소리로 세 아이의 더러워진 얼굴과 단추가 풀린 옷을 매만져주고 배고프겠다 싶게 등을 밀어 내보냈다. 그때 흰 새치머리에 이마가 넓게 벗겨진 중년이 들어와 파이프 담배를 물고 창가에 앉았다.
「김 선생님 오셨어요?」
 그녀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최 선생은 안 왔어요?」
 머리가 희끗한 쉰살 쯤의 중년은 초등학교 아동같이 순박한 말소리로 동료인 듯한 사람을 찾았다.
「김 선생님이 오셨으니 이제 오시겠죠.」
「아마 국전 출품작을 쓰느라고 먹물에 빠졌을 거예요.」
  김 선생이란 사람은 고적하게 어둠이 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다엔 고깃배들의 불빛이 몇 점 떠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신데 시인이에요.」
 그녀는 무덤덤하게 앉아있는 내를 향해 말했다.
「시에 매달려 학교고 뭐고 종적을 감추고 사라질 때가 많으시죠. 그냥 어디를 무작정 돌아다니시는 거예요. 그럴 때면 집에서 농사를 짓는 부인이 찾아다니느라고 난리죠. 시를 쓰신다고 절의 대웅전 같은 집이 비가 새고 굵은 서까래가 썩는 줄도 모르는 분이시니까 알만 하지요.」
 그녀는 시골에 묻힌 한 무명시인의 광기어린 시벽(詩癖)을 이해 못할 거라는 듯이 말했다. 창가에 앉은 김 선생은 깊은 시상(詩想)에 잠기듯 어둔 바다에 눈길을 고정하고 적막하게 앉아 있었다.
「아무 것도 볼 게 없는 곳이지만 여기까지 먼 여행을 오셨으니 섬엘 한 번 들어가 보시지요.」
 나는 연안의 가까운 섬 몇 군데를 더 돌아볼 예정이었다.
「연화도에 가시면 거기서 좀 떨어진 새끼 섬이 하나 있어요. 밖으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섬이지요. 이 고장 사람들은 풍도(風島) 혹은 끝섬이라고도 하고 섬에 사는 주민들은 바람섬, 미륵섬이라고 부르구요. 먼 바다의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잘 없어진다고 해서 더러는 안개섬이라고 부르기도 하구요. 작은 무인도지만 나무숲이 우거지고 깎아지른 벼랑에 오랜 자연 풍화가 빚어낸 기암괴석들이 아주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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