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가 꽤 좋은가 보군요.」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한번 가볼 만한 곳이에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작가시로군요?」
 그녀는 뜻밖인 것 처럼 반가운 호감을 보였다.
「발로 쓰는 작가지요.」
「발로 쓰신다구요?」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써서 신문이나 잡지에 자유기고를 하는 사람이지요.」
「취재여행을 오셨군요?」
「사람 냄새를 찾아다니지요.」
 나는 피로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냄새요?」
「따뜻한 사람 냄새요. 오만가지 오물이 뒤섞여 쥐떼가 득실거리는 시궁창의 썩는 냄새가 아니라 신선하고 따뜻한 사람 냄새 말입니다.」
 나는 매일 코가 부르틀 것 처럼 도처 골골이 썩어 내리는 시궁창의 악취와 쥐떼들의 끽끽거리는 소란으로 머리가 지근거리는 구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혐오는 수시로 벌룩벌룩 관자노리를 충혈시키는 두통을 유발했다.
「화젯거리나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구요?」
「물씬한 사람의 냄새요.」
 나는 재차 강조했다.
「인정 말씀이군요.」
 그녀는 농담이 섞인 듯한 말뜻을 쉽게 알아들었다.
「흔치 않겠지요. 그래도 찾아보면 어딘가 있지 않겠어요.」
 나도 그걸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나선 길이었지만 산비탈에 손바닥만한 따비밭을 일구어 화전민이나 몇 집 살던 산간에도 돈벌이 속성 약초밭이 깔리고, 태백산 자락 오지마을에도 외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마을 주민들은 등산객, 여행객들의 길잡이가 되고 도시생활에 지치고 실패한 몇몇이 들어와 살면서 계곡에 쏟아지던 청수는 값비싼 생수로 팔려나가고 서로 도우며 살던 이웃 간의 정은 차츰 버성기어 사나운 타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걸 모르고 나선 것이 아니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길을 나선 것이었고, 그래도 어딘가 가난하지만 온화하고 질박한 삶의 원형이 남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절망스럽기만 하였다. 저녁이 되어서인지 카페엔 서너 사람의 손님이 들어와 앉았고 그들은 가스레인지의 원두커피나 주전자에 끓는 물을 가져다 자기들의 취향에 맞는 차를 직접 만들어 마셨다. 그녀는 중단한 섬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그 섬엔 풍조(風鳥)가 살아요. 바람새 말이에요. 우아한 청록색 깃털이 아주 아름답지요. 섬사람들은 그 새를 극락조라고 부르지요.」
「극락조요?」
 놀란 뒤에 나는 재우쳐 물었다.
「신조(神鳥)가 아니구요? 상상의 새 말입니다.」
「예.」
 그녀는 맑은 목소리로 명확하게 대답했다.
「하면 열대삼림에 사는 새 말이군요?」
「그럴 거에요. 극락조라고 부르는 새는 참새만한 것에서 비둘기만한 것까지 수십 종류가 있다고 저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 새는 산비둘기만 해요.」
「보셨습니까?」
 나는 눈을 고추뜨고 물었다.
「그 섬에 가셔서 한 번 보세요.」
「우리나라엔 그런 새가 없을 텐데요?」

 

 

 

 

 

 

 

「저도 모르죠. 열대삼림의 새인지 그 섬에만 사는 새인지요. 아니면 원양을 떠도는 선원들이 가져오던 배에서 날아들어 서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자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없이 불가사의한 것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믿을 수가 없는데요.」
 나는 극락조를 본 일이 없었다. 다만 세상살이에 지치고 고달픈 사람들이 삶의 괴로운 번뇌가 없는 극락을 동경하며 종교적 관념에서 극락에 노닌다는 상상의 새, 신조(神鳥)로 여기고 있었을 뿐, 현실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열대조가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아직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새가 우리나라 연안에서 산다는 말에 나는 그만 종교적 관념의 세계에서 현실로 날아든 극락조로 일순간 착각해 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 섬엔 가보셨습니까?」
「몇 번요. 그 섬은 구경해 보실 만할 거예요.」
그녀는 은근히 관심을 유도했다. 나는 기온이 높고 습윤한 해안 도서(島嶼)에서 열대조가 혹여 서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드시 극락조가 아니라고 해도 어차피 섬에 나가보려던 나는 아름다운 희귀조가 산다는 곳을 찾아가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 섬에 들어가실 땐 언제나 해안의 파도가 높으니까 조심하시구요.」
「좋은 곳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다녀와서 다시 들르지요.」
 나는 어느새 사이가 가까워진 말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던 자리를 일어나서 카페를 나왔다.
 낯선 소읍의 밤거리는 나와 무관한 곳처럼 여겨졌다. 그보다 한동안 그녀의 맑고 매혹적인 눈빛에 넋을 잃고 사로잡혔다 헤어 나온 기분이었다. 나는 어디로 발길을 옮기고 갈 데도 없었다. 곧장 여관을 잡고 들어왔다.
「아름다운 여자다.」
 나는 피곤한 몸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엉뚱하게 그녀의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다감한 말소리가 지닌 정감을 생각하며 밤새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녁에 겨우 잠이 들었고, 날이 밝게 샌 이튿날 부둣가로 나왔다.
조그만 고깃배들이 여러 척 모여 있는 선착장 방파제엔 그물을 깁는 노인과 아낙네들이 석화(石花:굴)밭에서 걷어온 굴을 따고 있었다. 물이 나간 갯가엔 폐선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흉물스럽게 썩고 있었다. 나는 방파제를 걸었다. 갈매기들이 눈앞을 스치며 낮게 날았다. 나는 수평선이 아득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여자다.」
 나는 또다시 그녀를 생각하며 입속으로 뇌었다. 여관방에서 백야의 허공에 타는 불꽃처럼 밤새껏 시달렸던 망상과 갈피 없던 혼몽을 나는 다시 떠올렸다. 그것은 결국 부질없는 욕망의 번뇌였고, 지옥같이 뜨겁게 몸이 타오르던 밤이었다. 그녀에겐 알 수 없는 비밀 같은 게 숨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자연스런 관능적 미모와 더불어 정감이 깃든 대화로 상대방을 사로잡는 마력같은 게 분명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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