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디 그 섬엔 처녀가 죽어 환생한 극락조인제 아니먼 다른 희귀조인제 몰라도 소란시럽게 몰려든 갈매기떼가 바다로 날아가고 없는 날이먼 검은 새 한 마리가 물가 바위로 나와 앉고 허제.」
노인은 그 새를 눈앞에 그려보기라도 하듯 눈두덩이 가느랗게 주름진 눈길을 허공에 들었다.
「그렇군요.」
 나는 그 새를 더욱 보고 싶었다. 극락조이건 다른 어떤 종류의 새이던 지금까지 내가 내륙에서 보지 못한 희귀조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밤이 이슥해지는 바닷가에선 갯바위를 때리며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고단허실 것인디 나가 괜시레 씰데없는 이야글 많이 헌 거 같고먼이라. 불편허더라도 워칫크럼 하룻밤 주무셔 보시요.」
 노인이 피로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부자리가 마련된 방으로 건너왔다.

 

 

 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밤을 지새운 나는 날이 샌 아침 수련한 안주인이 후덕하게 차려 온 밥을 몇 술 뜨고 서둘러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날씨가 무척 좋았다. 맑은 아침 햇빛이 깔린 바다는 마치 자잘한 금강석을 무수히 뿌려놓은 듯이 난연하게 반짝거렸다. 선착장에 매어 있는 배 안에서 어제의 사내가 튼실한 몸을 드러냈다.
「잘 주무셨는게라?」
「덕분에요.」
 나는 배 앞으로 다가갔다.
「날씨가 좋구먼.」 뒤따라 선착장으로 내려온 노인이 말했다.
「들어가야지요.」
 나는 배에 올라탔다.
「바다가 잔잔허니 좋아갖고 별 일없이 들어갔다 나오겄네.」
 노인은 잔잔한 바다를 멀리 바라보았다. 배가 쿵쾅거리는 엔진소리를 터뜨리며 매어 있던 선착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첫배로 들어온 한 분을 아칙 일찍 실어다 드리고 왔고먼이라.」
 사내는 키를 잡고 앉았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군요.」
「별로 없고먼이라. 그 분은 오래전버텀 간혹 찾어온디, 한 번 섬에 들어가먼 며칠씩 있다 안 나오요. 어느 땐 한 달도 넘게 있고라.」
 배는 잔잔한 해면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얼마나 가야 합니까?」
「거리는 얼매 안 되고먼이라.」
 잔잔해 보이던 바다는 겉보기와 다르게 파도가 높게 너울거리고, 배는 앞,뒤질로 거친 물마루를 펄떡펄떡 오르내리며 빠르게 달려 나갔다.
「볼쎄 저그 보이덜 않소.」
배를 내몰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온 사내는 턱을 들며 하얗게 햇빛이 빛나는 해면 쪽을 가리켰다. 무수한 은조각 같이 눈부시게 반짝이며 반사하는 파광(波光)만 해면 가득하게 시야를 가릴 뿐, 나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어디 말인가요?」
「저그 햇빛이 하얀 디가 있덜 않소.」
「하얀 햇빛요?」
 나는 부신 눈을 들고 바다를 살펴보았다.
「파도가 햇빛을 받아 쏘는 사광(射光)이 모여서 그러지라.」
「저 하얗게 빛나는 휘광이 바로 그 섬이란 말인가요?」
눈을 바로 뜰 수 없이 빛나는 해면의 휘황한 광채를 바라보며 나는 신비로운 경이에 빠져들었다.
「파도가 높게 일렁인다는 증거지라. 이른 아칙엔 어렵잖게 들어갈 수 있었는디 시방은 워쩔랑가 모르겄소.」
 배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해면의 광휘는 점차 줄어들고 파도가 높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물이 들고날 때 조류의 유속이 빨러갖고 물질이 몹시 거칠지라.」
 빠르게 달려들어온 배는 선수가 펄쩍거리고 파도 위로 떠오르며 거친 뒤질로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어 있으씨쇼잉.」
 사내는 배의 키를 밀며 다급한 소리를 했다. 파도가 무섭게 춤을 추고 있었다. 세찬 격랑이었다.
 철썩, 쏴아 -
 물보라가 선상을 뒤덮고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배가 다시 파두를 타고 솟구쳐오르면서 선수가 하늘로 쳐들렸다 다시 굴러떨어지듯 파곡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에이쿠우......」
 나는 몸의 중심을 못잡고 선복에 떼구루루 나뒹굴었다.
「난간을 꽉 잡어요!」
 사내는 물보라를 뒤집어쓰며 외쳤다. 뱃전엔 물 회오리가 무섭게 휘돌고 있었다. 그쪽으로 조금만 다가가면 배가 송두리째 수중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키를 굳게 잡고 뱃길을 트던 사내는 마침내 거센 물살을 빠져나오며 흠뻑 뒤집어쓴 얼굴의 물을 훔쳐 뿌렸다.
「되었소.」
 지옥과 마주하는 듯하던 물회오리가 저만치 고물 뱃전에서 격랑으로 휘돌고 있었다. 나는 겨우 살아난 조난자의 공포에 휩싸여 물이 흥건한 선복에 털썩 주저앉았다. 균형을 잡은 배가 다시 높게 일렁이는 파도 위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저그가 풍도지라.」
 사내의 말소리에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높다란 벼랑 아래 하얀 백파가 철썩이는 섬의 해안을 바라보며 나는 경탄했다.
「놀랍군요.」
 과연 들은 대로였다. 잘룩한 해안을 돌아가며 해식애를 이룬 벼랑의 모양을 각기 달리하고 있는 기암들은 신기를 지닌 조각가가 필생의 역작으로 빚어낸 조형물의 전시장과도 같았다. 기괴한 바위들도 그렇지만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듯 천연의 요세를 이룬 해안의 절벽은 발을 붙일 데가 없었다. 섬 안은 원시의 생태를 고스란히 간직하듯 녹색의 울창한 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다.
「선녀가 내려와 비경에 빠져 다시 오르질 못한 곳이 있다더니.」
 낯선 불청객이 침범했음인지 벼랑에 둥지를 틀고 올라앉아 있는 바닷새들이 끼룩거리며 한바탕 소란을 떨었다.
「바람과 파도가 거셀 땐 성 절벽을 치때리며 솟아오르는 거대한 물덩이가 다시 바닷물로 굴러 떨어짐서 나는 소리가 얼매나 요란시러운제 본섬에까장 쿵쿵 울리지라잉. 그땐 절벽의 바위가 온통 부서져 날아가듯기 뿌연 비말이 뒤덮이고 섬이 흔적도 없을 거 같은디 파도가 잠잠해지고 나먼 섬이 다시 지 모습으로 의연히 나타나지라. 바람과 파도와 안개에 따라 없어져부렀다 나타났다 헝께 바람섬이라고 부르고 안개섬이라고도 허는 게 아니겄소.」
나는 우선 섬의 해안을 돌아보아야 했다.
「저쪽 바닷새들이 올라앉은 바위 쪽으로 좀 돌아가 주겠소.」
「그러지라.」
 사내는 흰 파도가 안벽으로 치솟으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해안과 거리를 두고 배를 천천히 몰아나갔다. 벼랑의 기괴한 바위 형상들은 비치는 햇빛에 따라 마치 조화를 부리듯 시시각각 다른 음영으로 바위의 빛깔을 바꾸고 괴석의 형태를 달리하면서 더욱 신기한 환상적 조형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럴 수가......」
 파도가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거북이가 머리를 쳐든 것같은 돌출 바위에 청록빛을 띤 깃털이 노릇한 햇빛과 섞이면서 펄럭 날았다.
「극락조다!」
 나는 배의 이물로 쫓아나가면서 소리쳤다. 햇빛이 쏟아지는 허공에 청록빛을 펄럭이던 새는 가뭇없이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말했다.
「아칙에 들어온 분이 저기 지신디라.」
 바위에 올라선 여자는 옷깃을 바람에 나부끼며 손을 흔들었다.
「저 여잔?......」
나는 바위에 올라선 여자를 놀랍게 바라보았다.
「그림을 그리는 분이시지라.」
 사내가 키를 밀며 말했다.
「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뒤로 돌아가먼 물 속으로 내려간 바위가 동굴처럼 깊숙이 갈라진 디가 있지라. 거그다 배를 대놓고 바위를 탐서 기어 올라가먼 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지라.」
「거기로 갑시다.」
  나는 성급한 소리로 재촉했다.
「저 손님을 실고 나갈라먼 어차피 그리로 돌아가야지라.」
 사내는 파도 위에 위험스레 기우뚱거리는 배의 키를 잡고 다시 내몰았다. 나는 그녀가 올라서 있던 바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배는 하얀 물거품을 안은 안벽을 끼고 돌았다. 해는 섬의 숲 머리가 올라온 서쪽으로 비끼고 있었다. 섬의 몽톡한 동쪽으로 돌아나가던 배는 준험한 바위벼랑 끼고 뒤편으로 들어갔다. 배가 차츰 섬 뒤로 돌아들어가면서 높게 일렁이던 파도가 남쪽과 비교도 안될만큼 낮게 찰싹거리고 있었다. 사내는 바위가 벼랑으로 갈라져 물속으로 내려간 곳에서 뱃머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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