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그지라.」
 사내는 배의 엔진을 껐다. 동굴처럼 갈라진 안벽 사이로 뱃머리가 천천히 밀려 들어갔다. 물빛이 검푸른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이 아득하리만큼 머리 위로 올려가고 그 위에 조각난 하늘이 파랗게 올려다 보였다. 사내는 발을 붙일 수 있는 바위에 배를 들이대었다. 바닷물이 시퍼렇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어서, 올라오세요.」
 머리 저 위에서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가파르게 올라간 바위머리에서 굽어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요?」
 나는 놀랍게 소리쳐 물었다.
「보다시피 여기 있잖아요.」
 내가 소리친 목소리와 함께 그녀는 말소리가 바위 사이를 울렸다.
「안 나가실 건 게라?」
 배 안의 사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내일 들어오세요. 날씨가 안 좋으면 며칠 있다 들어오셔도 되구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바위로 올라붙었다.
「조심해서 올라가시지라.」
 사내는 불안스럽게 지켜보았다. 나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발끝을 비어진 바위너설에 단단히 박아디디며 겨우 기어 올라갔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나는 흐르는 땀방울 훔친 뒤 벼랑 아래 검푸른 바닷물을 내려다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물의 공포가 심장을 옥죄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정신이 아찔한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보시다시피 여기 있잖아요.」
 그녀는 웃으며 천연스럽게 대꾸했다.
「허먼 낼 모시러 들어 오겄고먼이라.」
불안하게 지켜보던 사내는 배를 돌렸다.
「어쩌려구요?」
 나는 당혹스레 물었다.
「경치가 좋지요?」
 그녀는 딴소릴 했다.
「여기만큼 자연이 주는 신비를 볼 수 있는 데가 없어요.」
 영접을 나온 섬의 주민이나 되는 것처럼 그녀는 앞에서 길잡이로 나무가 빽밀하게 우거진 숲 속을 헤쳐 들어갔다.
「처음 여기를 들어왔을 때 저는 이 아름다운 섬이 남태평양 어디에서 파도에 떠밀려오지 않았나 하는 착각을 했지요.」
 정말 그랬을까. 그녀를 따라 조금씩 섬 안으로 들어갈수록 열대우림 속에 들어온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울창한 나무와 덩굴식물이 사뭇 뒤감고 올라간 나무에 잎이 넓은 활엽수가 하늘을 가리었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있는가 하면 그 밑에 커다란 잎을 가진 식물이 자라고, 햇빛을 탐닉하며 곧게 뻗어 올라간 나무가 있는 반면 반쯤 기울어진 나무, 뿌리가 뽑혀 넘어지고 쓰러진 고목엔 푸른 이끼가 덮여서 더부살이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침침하게 어둠이 고인 숲 속을 헤쳐 들어가던 그녀는 크고 밋밋하게 내려간 바위를 조심스럽게 타고 내려갔다. 바위 아랜 물웅덩이가 있었다. 골짜기였다.
 졸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선한 공기와 더불어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가 아주 시원스런 청량감을 주었다.
「이런 데가 있는 줄은 몰랐죠?」
 골짜기를 흐르는 물은 마치도 은구슬이 구르는 듯했다. 갈증을 느끼고 있던 나는 성급히 바위를 타고 내려가 맑게 고인 웅덩이 물을 한 움쿰 움키어 마셨다.
「으흐흑!」 나는 이가 시린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들었다. 바위에 덮힌 부토와 쌓인 낙엽 위로 잡초와 키 작은 나무들이 덩굴식물 줄기에 뒤엉키고, 조금 비쳐드는 햇빛을 보고 자라다가 쓰러진 나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비탈진 언덕에 초록빛 지붕을 이루고 빼곡히 서 있는 나무들의 우듬지 사이로 노르스름해진 햇살이 습기찬 숲 속의 어둠을 가르며 깊게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장관인 것은 반원의 아파트 베란다처럼 널따란 바윗장 밖으로 바다의 파도가 기우는 저녁 무렵의 사양(斜陽)을 받아
안으며 곱게 반짝이는 놀빛이었다. 나는 숲 속에서 어린 소년처럼 뛰어나갔다.
「위험해요!」
 그녀가 기겁하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널따란 바윗장에 서서 수평선 저멀리 반짝이는 놀빛이 가득한 해면과 절벽 아래 시퍼렇게 출렁거리는 바닷물을 내려다보았다. 시퍼런 바닷물 곳곳엔 흰 파도가 거칠게 부서지며 물보라를 눈발처럼 날리고 있었다.
「이 섬 주위엔 암초가 많아요. 흰 파도가 부서지는 곳은 모두 암초지요. 그래서 배들이 더욱 접근을 못해요.」
 바다는 조그만 섬이나 물너울 속으로 외롭게 떠가는 배 한 척을 볼 수가 없이 망망하게 펼쳐져 있었다.
「썰물이 나가면 저쪽 울퉁불퉁한 바위 아래 손바닥만하게 자갈돌이 깔린 해안이 드러나죠. 바다 속은 군락을 이룬 연산호가 마치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 산 같구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바위들이 흰 물거품을 쓰고 검게 솟아오른 물가엔 손바닥만한 해안이 드러나고, 반들반들하게 물기에 젖은 자갈돌들이 마치 바다 속에서 물기를 함빡 머금고 막 기어 올라온 벌레들처럼 오밀조밀하게 깔려 있었다. 나는 신성한 자연의 정령 속에 빠져든 기분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기름진 녹색의 숲 속에서 한 처녀가 걸어 나와 비탈진 바위를 타고 내려가 바닷물에 뛰어들고 울긋불긋한 산호초 사이를 물고기 떼와 어울려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이제야 이 섬에서 한 달씩도 머물러 있다는 당신을 알겠어요.」
「머물러 있으면 뭘해요.」
 그녀는 갑자기 허탈하게 말했다. 그녀는 검은 생머리를 바람에 나부끼며 다시 중얼거렸다.
「없어요.」
「뭐가요?」
 절망스럽게 말하는 그녀를 나는 얼른 알수가 없었다.
「새가 나타나지 않아요.」
 그랬다. 그녀를 따라 섬 안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새들이 우짖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었다.
「극락조 말인가요?」
「......」
 대답 대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다에 물든 놀빛이 점점 짙어가면서 먹이를 찾아 온종일 바다를 고달프게 떠돌던 갈매기들이 섬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황금색 놀은 점점 더 짙어가고,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그녀의 옆얼굴에 진홍빛이 물들고 있었다.
「전설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닙니까.」
 환상을 쫓아온 것처럼 허망감이 들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들어온 것을 알고 멀리 날아가 버렸나봐요.」
「풍조 말씀이세요?」
「진주 빛이 감도는 청록색 깃털을 가진 새가 있었어요.」
 그녀는 앉았던 바위에서 일어났다.
「우듬지에서 뻗어 올라간 나뭇가지에 까맣게 앉아 있던 새는 물까마귀나 가마우지가 아니었어요.」
 그녀는 숲 속으로 돌아오면서 자기가 본 풍조를 말했다.
「머리엔 녹색의 털을 장식처럼 이고 있었어요. 부리는 길고 뾰족했구요. 입 안은 노랬지요. 목은 진주 빛이 감도는 청록색이었구요. 녀석은 검은 양쪽 날개를 쫙 펼치더니 발레리나가 두 팔을 벌려 머리위에 올리고 둥그런 동작을 만들 듯 타원을 만들어 올리고 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위로 쳐드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반달 모양의 은회색 깃털이 나 있는 가슴을 앞으로 한껏 내밀고 노란 입을 보이며 춤을 추지요. 나붓나붓 두 발을 번갈아 놓고 날개를 바르르 떨어가며 동작을 취하는데 난생 처음 보는 새의 기막힌 발레였어요. 그 춤은 점점 현란하고 화려한 절정에 달하는데 숲 속이 그만 어두워졌지요.」
 골짜기 숲 속에 돌아온 그녀는 컴컴한 동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 야외 취사도구를 꺼내왔다.
「한 살림을 섬에 두고 다니시는군요.」
「여기만한 데가 또 어디 있겠어요.」
「작품도 여기서 하시구요?」
나는 바위에 놓인 화구와 캔버스를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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