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번지르르하게 놀러 다닌 거지요.」
 그녀는 돌화덕에 물 냄비를 올려놓고 마들가리를 꺽어 불을 지폈다. 어두운 숲 속에선 나뭇잎이 흔들리며 멧새 한 마리 깃을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저녁엔 불을 펴야 해요. 나무를 좀 하세요.」
 그녀는 배낭에서 라면을 꺼내었다.
「그 새의 현란한 춤은 구애지요. 암놈은 때까치만한 잡색인데 웬만해선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수놈은 한동안 춤을 추다 암놈이 끝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날개를 접고 침묵에 빠져버리지요.」
「그 새가 극락존가요?」
「그렇지요.」
「풍조나 극락조는 결국 같은 종류의 새로군요?」
「이름만 다르게 부를 뿐 풍조와 극락조는 같은 새지요. 참새목(目) 풍조 과의 여러 새들 가운데 다만 깃털이 아름답게 생긴 새를 극락조라고 부른 거지요. 시장하실 텐데 이리로 오세요.」
  그녀는 라면을 끓이고 난 돌화덕의 잉걸불을 꺼내어 모닥불을 놓았다. 불땀이 좋게 타오르는 불빛이 주위를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배는 언제 들어올지 몰라요. 솔직히 말하면 기약이 없죠. 바람이 불고 날씨가 안 좋으면 한 달, 아니 두 세 달이 걸릴 수도 있어요. 안 들어올지도 모르구요.」
 그녀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바람직한 뭘 써보겠다고 돈벌이도 못하고 얼간이같은 구박을 당하며 빌빌거리던 걸 생각하면 잘된 거지요.」
 나는 허심탄회한 소리로 말했다.
「가족들이 없으세요?」
「능력없는 남자와 살아줄 여자가 없지요. 어린이 학습지 판매를 하면서 애써 참고 살던 아내는 이혼한 뒤 아이까지 데리고 가버렸어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겠어요?」
「말처럼 쉽지 않지요.」
「하긴......」
「공해에 찌든 오물구덩이에서 악착같이 살겠노라고 더러운 공기와 물을 걸러 마시며 허우적거리는 것보다 이런 곳에서 거리낌없이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 않겠어요.」
 나는 넋두리를 했다.
「소설을 한 번 써보시지 그러세요. 잘 팔리면 돈도 많이 번다든데.」
「세상살이가 소설이 아닌지요.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면 황당무계한 것이나 억지로 얘기를 꾸며낸 것보다 날이면 날마다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더 끔찍한 공포와 스릴을 주고, 노골적인 애정행각과 교활한 사기수법, 상투적인 눈속임과 새빨간 거짓말에 온통 범벅이 되어 우스꽝스런 미스테리가 꼬리를 무는데 순수문학이니 예술이니 뭐니 하고 소설 따위를 써서 무얼 합니까.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세상이 훨씬 재미있는 걸요.」
「모든 문화가 혼란인지 타락인지 모르겠어요.」
「타락이지요. 객관성까지......잉크를 꺼멓게 바른 신문이나 공중파나 제 입맛에 맞는 소릴 골라 지껄이며 설사처럼 줄줄 쏟아내고, 아무런 값어치 없이 뒤죽박죽 버무려진 화면은 속없는 얼간이를 만들고, 화려하게 덧칠한 광고와 최고의 찬사를 부르짖는 소린 양심도 아무 것도 없이 떠벌이는 매명(賣名)들의 전용어가 되어버렸지요. 사람답게 살아 보자고 온몸을 던졌던 사람들은 뒷전으로 가난하게 소외되고, 이 세상은 지난한 고통과 배고픔을 해결 못하고 버림받는 비애가 엄존하면서 냉혹한 무관심이 무서리처럼 쌓여 얼어붙고 있지요.」
나는 세상에 배알이 뒤틀린 소릴 설사처럼 쏟아내었다.
「모두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더욱 슬프지요.」
「저도 학교를 다니던 중에 광주민중항쟁을 겪으면서 시국사범으로 쫓기기도 했고 여랑에 와 살기 전엔 보육원에서 보모 노릇을 한 적도 있지요. 생활이 어렵다고 자기 자식을 버리듯 맡겨놓고 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어차피 사람은 사는게 힘들고 어려운 건데 그걸 마다한다면 몸을 둘 데가 없는 거지요. 혼자시라니 암튼 홀가분하시겠어요.」
 그녀는 따분한 얘기를 걷었다.
「내일은 제가 해삼과 소라도 잡고 물고기도 잡아서 구워드릴 게요.」
「카페에 앉아계시던 분은......」
 나는 문득 부둣가의 아낙네들이 주고받던 말이 생각나서 물었다.
「며칠이고 바닷가에 앉아 있기에 오갈 데 없는 사람 같아서 함께 사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모닥불 빛이 어른거리는 얼굴을 들고 깊은 어깻숨을 내쉬었다.
「세상엔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녀의 한숨짓는 말엔 나도 동의했다. 밤이 깊어가면서 어두운 골짜기 숲 속은 고요하기만 했다. 불꽃을 펄럭이며 타오르던 모닥불도 잉걸불이 삭이는 재가 쌓여 사위어들고, 가까운 해안 바위틈에선 잠을 설치듯 간간이 갈매기들의 끼룩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안벽에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숲 속의 고요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극락조를 동경하며 어느 순간엔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캔버스에 물감만 찍어 바르면 화가인가요.」
하고 그녀는 돌아보았다.
「제가 괜히 부질없는 소리를 해서 엉뚱한 고생을 하시는군요.」
「사람은 늘 허상을 보고 사는 거 아니겠어요. 누구나 죽는 건데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매달려 안달하면서 좀더 갖겠다고 아우성을 치구.」
「주무세요, 고단하실 텐데......」
 그녀는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밤이 지나갔다. 극락조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의 캔버스에도 물론 물감 한 점 묻지 않았다.

 

 

  나는 수계사 들머리 길로 접어들면서 일단 여류화가에 대한 생각을 차분히 접고 매표소 앞에까지 달려 올라갔다.
 흰 눈이 쌓여 어둑해진 진입로엔 철제 바리케이드가 길게 가로놓여 있었다. 나는 절에 들어가는 진입로를 바리케이드로 가로막아 놓는 사찰도 다 있나 싶었다. 암튼 나는 승용차를 길섶에 세워놓고 걸어 나왔다. 기념품상회와 슈퍼마켓엔 불이 켜져 있고 식당들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다시 매표소 앞으로 걸어 올라오면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식당의 출입문을 열고 주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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