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이 되면서 거리는 하얗게 타는 아크나이트와 원색의 네온사인이 불빛이 화려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나붙은 간판들은 낯선 이국 풍경을 연상케 하면서 선정적인 핑크 빛으로 요염하게 유혹하고 있었다.
 10대들이 휘청거리는 거리에 퇴근길 샐러리맨들이 몰리고 있었다. 유흥업소들에선 점점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알콜이 흐리게 젖어드는 거리는 젊음의 열기로 후끈거리기기 시작했다.
일행과 디스코클럽으로 들어서면서 봉우는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두리번거렸다. 어둑한 실내, 혼란의 늪이었다. 싸이키 조명이 쏟아지는 플로어엔 망아지떼처럼 어우러진 십대들이 귀청을 찢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라고 한번쯤 못 미처 볼 것도 없지.
메기와 현승일은 담배연기 자욱하게 명암이 교차하는 어둠 속의 빈자리를 찾아 더듬었다. 테이블마다 오물오물, 마치도 유충들처럼 깔려 있었다. 아니 어둠 속에 발정이라도 난 강아지 떼들 같았다. 뒤에 붙어온 종업원이 두어 자리를 몰아 합석시키고 테이블을 마련했다.
저것들 춤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하고 안혁이 자리에 앉으면서 저만큼 테이블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하룻밤 아랫도리 뻐근한 배설물받이지.
앳된 얼굴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딸기처럼 새빨간 입술을 하고 화장이 짙었다. 저마다 새파란 귀때기에 귀걸이가 달랑거렸고, 봉곳하게 부풀어 밀고 올라온 양쪽 젖가슴 아래로 풀어헤친 셔츠와 푹 파인 옷차림으로 굵은 넓적다리를 드러내며 사타구니로 바짝 올라붙은 치마가 사내들의 욕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집을 나온 애들이야. 이를테면 하루살이들. 화장품과 가발, 옷가지는 학교 앞 분식집 아니면 지하철 물품보관창고에 있구.

저녁 무렵이면 저것들 때문에 지하철 화장실이 만원이지.

안혁과 메기가 들은 바대로 얘기했다.

오늘만 있는 애들이지.

담배연기를 피워올리며 플로어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들에게 키 크고 퍼벌한 녀석들이 달라붙었다. 저마다 셔츠와 점퍼엔 영문자가 새겨져 헐렁하고, 긴 머리엔 헤어크림이 반들반들 뒤발려 있었다.

함께 춤을 추자.

올나이트?

여자애가 동그란 얼굴을 들어 올리고 물었다.

물론이지. 화끈하게 끝내줄게.

녀석은 팔목을 잡아끌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밀고 끌어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여자애들의 간드러진 교성이 터져 올라왔다.

아까 봤지. 백 그랜저와 볼보를 타고 온 놈들이야.

하고 붕어빵이 말했다.

투기꾼과 탐욕한 주구들의 귀공자들이야.

현승일은 눈길을 바로잡았다.

놈들에게선 속이 니글니글한 버터냄새가 나는군.

하고 안혁은 코를 벌름거렸다.

부모들이야 볼 것도 없이 푹 썩은 냄새가 날 테구.

그 썩은 분뇨로 되알지게 웃자란 얼간이들 아니야.

하고 박남숙은,

투기재벌들은 살찌고 농민은 쌀 뺏기고 노동자는 싼 임금에 물가는 싹 오르고…….

주절거렸다.

졸부 쓰레기들은 싹 쓸어버려야 해.

붕어빵은 발작적으로 뱉어냈다.

모든 건 돈으로 통해.

현승일은 차탄스럽게 말했다.

우리들에겐 가스냄새 뿐이구.

무슨 소리들을 줄곧 지지콜콜하게 늘어놓고 있는 거야. 우리도 한번 미쳐보자고 들어왔으면 술이나 마시고 흔들어 댈 일이지.

박남숙이 분위기를 일신시켰다.

그래, 그게 좋겠어.

암연하게 말없던 윤종하는 한마디 던졌다.

춤을 추고 뒤흔들다가 사지가 떨어지면 내일 쓰레기통에서 줍구.

하고 붕어빵은 전격 찬동했다.

인왕산 도적떼 준동하니 도처 골골이 신음소리 높고, 살인곤봉 망나니춤에 전철의 소매치기 한철이라. 피어난 광염의 바다에 부나방 날아들어 육신을 찢고, 까마귀 울어예니 버림받은 청춘이 애처롭구나.

조영재는 푸념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귀신 부르지 마라. 첫닭 울자면 멀었다.

현승일은 술잔을 채웠다. 일행은 가득 넘치는 술잔을 집어들었다.

우리들의 신념에 축복 있으라!

돌아가며 술잔을 소리 내어 부딪쳤다.

미래의 꿈은 성좌와 같이 빛나리라.

하고 봉우는 술잔을 기울였다. 술잔은 다시 채워지고 돌아갔다.

우리도 촌스럽게 구경들만 할 거 없잖아.

하고 메기는 플로어로 고개를 돌렸다. 쏟아지는 싸이키 조명은 더욱 요란스러워지고 괴성을 내지르며 춤을 추는 패들로 플로어는 미어져 나갈 듯했다.

나가자.

술잔을 비우고 난 붕어빵은 박남숙을 이끌고 나갔다. 조영재와 메기가 따라서 민경옥을 잡아 일으키었다.

즐겁게 해줘라. 오늘밤이 지나면 우리 곁을 떠날 놈이잖아.

하고 윤종하가 뒤따라 나가 플로어의 춤판으로 뒤섞이었다. 테이블엔 봉우와 현승일이 남아 있었다. 둘은 술잔을 비운 뒤 재차 교환하고 나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종하는 프락치다. 짭새(위장형사)들과도 내통하고 있어.

현승일은 무겁게 입을 떼었다.

심약한 친구니까.

봉우는 접어 넘기고 싶었다.

놈이 받아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을 이해못할 것도 아니지.

하고 현승일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어차피 징집영장을 받을 때가 아니야.

정말 조국이 부른다면…….

둘은 술잔을 거듭 기울이었다.

우리들의 주장을 힘으로 막자면 차라리 캠퍼스를 병영화해야 할 텐데.

그래도 신념은 남아.

더러운 도적들, 녹화사업, 이름도 그럴싸하지. 거긴 서서히 잠재워 죽이겠다는 도살장 아니야. 졸업학기나 마치도록 놔두면 배꼽에 덧나는가 그 말이야.

현승일은 분노했다.

저걸 봐. 입시지옥에서 벗어난 애들이 온통 싸이키 조명이 쏟아지는 플로어에서 발광하고 있어. 저렇게라도 잘못된 세상을 견디고 싶은 거야.

플로어의 춤판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누가 누구를 의식하고 돌아볼 것도 없었다. 충만한 젊음, 분별없는 청춘의 열정과 광란이라도 좋았다. 흔들고 부딪치고 행음 색정 같은 소리를 지르고……. 퍼렇게 전광처럼 번쩍이는 조명과 요동하는 음악자체가 이미 광적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그 폭발속에 모든 젊음이 있고 자유분방한 생장이 있었다. 안혁과 붕어빵은 부딪치고 밀치며 플로어 가운데로 파고 들어갔다.

늬들 뭐야?

붕어빵의 어깨를 비껴간 여자애 하나가 얼굴을 돌리고 쏘아부쳤다.

눈깔도 액세서리냐? 살껍떼기 모자라 삼신할미가 찢어놓은 줄 아느냐구?

느닷없이 붕어빵의 안면으로 세찬 주먹이 날아들었다.

거지같은 새끼들, 어서 들어와서 식은 죽 냄샐 피워!

무스를 뒤바르고 상판이 빤질한 놈과 헐렁한 이중 셔츠로 미추름하게 플로어를 독판치던 놈이 일변 가세하여 짓밟으려고 달려들었다.

개살구 지레 터진다더니…….

안혁은 솜씨 좋게 덤벼드는 놈의 명치급소를 지르고 귀뺨을 불이 나게 우리었다. 얼결에 선수를 얻어맞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을 놓던 붕어빵은 손마디를 꺾으면서 공격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놈들이 즈덜 위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아는군.

하고 덩치 좋은 놈의 사타구니를 번개처럼 올려 지르고 코쭝배기를 된통 받아버렸다. 눈알이 빠졌는지, 코뼈가 바스러졌는지 놈은 두 손을 가져다 얼굴을 감쌌다. 메기가 조영재에게 덤벼드는 놈의 뒷덜미를 잡아 돌리고 주먹을 날렸다. 테이블에서 지켜보던 놈들이 맥주병을 집어들고 들입다 뛰어들었다.

어마, 아아악!

기겁하는 여자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치솟고, 플로어의 춤판은 일시 피라미떼 달아나듯 쫙 흩어지는 수라장이 되었다. 테이블의 봉우와 현승일도 구경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리를 차고 솟구치며 플로어의 난전으로 가세했다.

저 새낄 찍어!

알량한 귀공자 패거리들 쪽에서 사납고 거침없는 소리가 솟았다.

머리통을 까라구! 박살내 버려!

맥주병을 거머쥐고 날뛰던 놈들 속에서 하나가 주춤하고 허연 칼을 뽑아들었다.

칼을 조심해라!

메기는 외쳤다. 안혁은 얼른 뒤돌아 방어태세를 취하면서 칼을 꼬나잡은 놈과 맞섰다.

도대체 보이는 게 없는 놈들이군.

하고 노리는 순간 위기를 느낀 봉우는 날쌔게 놈의 뒤로 붙으면서 목을 끌어안고 무릎으로 척추를 올려 질렀다. 숨통이 조여 하체의 힘이 쭉 빠진 놈은 핏발이 싯붉게 오른 상판으로 버둥거렸다.

느이 새끼들, 뭐야?

대싸리 밑의 개 팔자라더니, 바로 느이 놈들이…….

현승일의 휘돌리는 발길이 놈의 귀퉁이를 우렸다.

이 새끼들, 다 죽여 버릴거야!

두 놈이 동시에 맥주병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현승일은 잽싸게 키를 낮추고 상체를 돌리면서 한 팔로 놈의 맥주병을 걷어낸 다음 덜미를 그러잡아 업어치기로 메어쳤다. 암치뼈에 불개미 덤비듯 놈들은 싸다듬이로 덤벼들었다. 발길을 휘돌리고 나서 현승일은 다시 헌걸찬 육덕으로 덤벼드는 녀석의 턱주가리를 주먹으로 먹이었다.

크으윽!

놈의 길쭉한 주걱턱이 뒤로 벌컥 까졌다.

저 새낄 까!

고함이 갈라지면서 맥주병이 슉슉 날았다. 머리통을 아슬아슬하게 스쳐간 맥주병이 벽에서 박살이 나고 유리파편이 우수수 날았다. 잇따라 우지끈거리며 테이블이 뒤집히고 의자가 날았다. 유리컵과 맥주병이 와그르르 뒹굴어 나가면서 깨지고 비명과 아우성이 한데 어우러졌다. 한 녀석이 뜨물에 빠진 바퀴 눈깔로 널부러졌다 된맛을 알고 엉금썰썰 무릎걸음으로 기어 달아나고 희번주그레하게 날뛰던 놈이 번개 치는 주먹뺨에 냉큼 콧등이 물린 삽살개처럼 불줄기가 찢어지게 내달았다. 기세 좋게 줄통을 뽑고 나오던 놈이 어금니를 윽 물었다.

새끼들, 심장이 온전하게 발딱거리나 보자!

오냐, 요놈아.

안혁이 맞붙었다. 날카로운 고함이 연이어 갈라졌다.

저걸 잡아!

퉁탕거리며 계단을 뒤쫓아 내려가고,

이 새끼, 죽어봐라!

앞으로 고부드러져 짓밟히는 놈에 등덜미가 잡혀 뒤엉킨 채 서로 계단을 쿵쾅거리며 뒹굴고,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로 마구 굴러 떨어졌다. 난장판이 된 홀 안으로 이윽고 하얀 불이 들어왔다.

날라!

일순 튀는 소리가 장황했다. 홀은 다시 어둑스러운 유혹의 분위기를 이루고 번쩍거리는 명암이 교차하는 가운데 요란스러운 음악이 가득 채워졌다.

재수 옴 붙었지. 더럽게 개싸움으로 판때리고 말다니…….

디스코텍을 빠져나온 일행은 행인이 뜸하게 줄어든 거리를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재수 옴 붙었지. 더럽게 개싸움으로 송별회를 판때리고 말다니…….

메기는 뒷맛이 씁쓸하게 뇌이었다.

장소를 잘못 택했지.

붕어빵이 후회했다.

우리도 한번 실컷 마시고 흔들어 보자고 작정한 건데 장소를 탓할 건 없지.

박남숙은 아쉬운 소리를 했다.

우리가 유죄다.

조영재가 입을 떼었다.

군대 가는 느이들이 무슨 유죄냐.

붕어빵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골어귀에 올망졸망 서있는 여자애들이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오빠, 놀다가!

일 없다.

함께 놀자니까?

계속 유혹했다.

맥주 몇 병 값하고 여관비만 있으면 되지.

붕어빵은 은근히 군침을 흘렸다.

아서라. 불쿼 놓으면 등창나게 쏟을 때가 있겠지.

현승일은 앞선 걸음으로 나아갔다. 메기와 붕어빵은 미련을 가지고 뒤돌아보았다.

찢어지면 다 구멍인 줄 알아. 치하다, 가자.

조영재가 붕어빵의 팔을 잡아끌었다.

저것들은 뭐야?

어둠침침한 골목에 남녀가 허리를 끌어안은 채 밀착시킨 몸을 벽에 기대고 있었다. 짧은 치마가 밀려올라간 여자애는 허벅지가 드러나 보였고 사내녀석은 겉으로 빠진 셔츠 아래로 진 바지가 내려와 있었다.

XX이로군.

붕어빵과 메기는 잠시 눈독을 들이고 질감스럽게 바라보았다. 사내녀석은 누르고 있는 여자애의 입술을 질기게도 빨았고 엉덩이를 추썩이며 자꾸만 위로 치켜 올리던 녀석은 마침내 끄응 하는 소리로 진저리를 치며 바르르 떨던 하체를 정지시키었다.

흘레붙은 개새끼들을 못 봐서 그래. 어서 가자구.

박남숙은 붕어빵과 안혁의 등을 떠밀었다. 이번엔 매꼼하게 무전기를 손에 들고 어정거리던 애녀석이 다가왔다.

좋은 애들이 있어요. 한번 들어와 보세요.

삐끼들이 유혹했다.

오늘 새로 온 애들에요.

짜아식들아, 꺼져.

현승일은 따라붙은 삐끼를 걷어냈다. 일행은 차츰 열기에 찬 골목을 벗어났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겨울의 찬바람이 거리를 삭막하게 휩쓸고 지나갔다.

우리에겐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어.

봉우는 밤하늘을 우러렀다. 별은 없었다. 어둡고 황량했다. 허공으로 가랑눈이 흩날렸다.

함박눈이나 포슬포슬 내렸으면…….

곁으로 걷던 경옥은 봉우의 점퍼 호주머니로 손을 함께 찔러 넣었다.

종하가 안 보이는데?

메기와 안혁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애놈들에게 잡혀서 몰매를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박남숙은 두 눈이 동그랗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럴 리 없어. 놈들이 오히려 똥줄기가 빠지게 달아났는걸.

하고 안혁은 말했다.

무사하다면 두말할 것 없지.

잠시동안 일행은 묵묵히 걸었다.

프락치라는 건 우리가 이미 알고 있잖아.

현승일이 사실을 말했다.

끼어있다는 게 불행이지.

하고 박남숙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다보았다. 뒤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잖아……. 어디까지나 동지구. 괴로운 고통이 우리보다 클 거야.

경옥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서 스스로 사라졌는지도 모르지.

하고 안혁은 짧은 콧숨을 쉬었다.

아마 그랬을 거야. 틀림없이 그래.

박남숙은 가여운 동정을 했다.

우리들 대부분은 끌려갈 테지. 영락없이 다음 차례는 승일이, 혁일 테구.

원망하지 않아. 어차피 군대는 갈 몸이었으니까.

이따금씩 취객들이 비척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응얼거리고 스쳐지나갔다. 밤이 이슥해져가고 있었다. 폭주족들이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폭음이 밤공기를 세차게 가르고 들려왔다.

이렇게 시시풍덩 끝내고 말 거냐구? 너무 초라하잖아.

박남숙이 미진한 소리를 했다.

그럴 순 없지.

하고 안혁은 아크릴 입간판이 나와 있는 주점을 바라보았다.

이제 봉우와 안혁은 군인이 된다 이 말씀이야.

하고 현승일은 앞으로 나서 뒷걸음질을 했다.

열 권의 쇼펜하우어, 괴테, 공자보다도 반짝이는 단추, 군화가 중요하게 되었다 이 말이지.

빌빌거리다가는 앞정강이, 배때기가 걷어차이게 됐구.

일개 하사관 조교한테서 경례와 부동자세, 포복, 사격솜씨를 배우고 정신교육으로 개조된 인간의 성실한 임무를 다 하게 되었다 그거지.

안혁이 응수했다.

안 봐도 고난과 역경을 알만하지.

메기가 말했다.

이렇게 말순 없잖아. 우리의 용사를…….

하고 현승일은 뒷걸음질을 멈추어 섰다.

어서 와. 가마를 만들라구.

안혁이 붙고 붕어빵은 박남숙과 두 팔을 맞잡고 가마를 만들어 봉우와 조영재를 태웠다. 메기는 뒤로 붙고 경옥은 길라잡이 선소리꾼으로 앞나섰다.

우우- 우리의 용사, 정의의 용사 나가신다!

환호를 올리며 일행은 주점으로 몰려 들어갔다. 장난기 어린 젊은이들이 한 패거리 소란을 떨며 몰려들어오자 주모는 무슨 일들인가 싶게 헤벌쭉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아줌마, 우리 아줌마. 여기 푸짐하게 한 상 차려주세요.

두덕두덕 살집으로 미소를 짓고 바라보던 주모는 길게 놓여있는 한 켠의 주탁이 아니라 비어 있는 방을 내었다. 주탁에 앉아 있는 또래의 남녀 친구들과 방 안에서 막걸리판을 벌이고 박수치며 노래를 크게 합창하던 친구들이 한번씩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아줌마, 인심좋은 우리 아줌마. 두부김치에 빈대떡, 막걸리 한 동이요.

주모와 종업원애는 술잔을 나르고 하며 분주하게 술상을 보았다.

우리에겐 이게 어울리지.

조영재는 아주 편한 자세로 허심탄회해졌다. 모두 그랬다. 따뜻한 안주와 술동이가 들어왔다.

종하는 용서해라.

현승일이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더러운 권력이 변절자와 배신자, 한 동아리의 동지를 적으로 만들어 놓고 있지.

사람이고 역사고 뒤죽박죽을 만들어 놓고 있어. 도적들이 아무도 온전하게 놔두질 않는단 말이야. 친일 매국노들이 애국지사가 되는 둔갑술이 횡행하고 천문학적인 부정축재자가 널두께 같은 낯짝을 내두르고 나서질 않나, 지식인들을 회유와 협박으로 변절시키고 심지가 곧은 양심수들을 반국가사범으로 몰아가며 모두 누더기 개칠을 해놓고 있다 그거야.

취기가 오른 박남숙은 장사설로 분개했다.

똥벌레는 제 몸 더러운 줄을 모른다잖아.

놈의 고통과 우리들의 고난은 더덜이가 없지.

하고 봉우는 윤종하 얘기로 되돌아와 이해하는 마음으로 자위했다.

그건 맞아.

현승일도 동감했다.

아까 골목 애들이 부럽군. 자기들의 주장과 감정대로 행동하고 사는 거 말야.

그 자유로움을 존경해야지.

봉우는 술잔을 비웠다.

모두 자기가 태어난 시대를 살고 주어진 몫을 하며 역사를 이루어 가는 거다. 억압과 질곡 속에 피 흘리는 고난의 주역이 있다면 그 애들은 구차한 대학입시조차 팽개치고 나름대로 인생을 즐기는 것일 테지.

하고 안혁은 조롱박으로 동이의 술을 퍼올렸다.

, 받아라. 그래도 늬들은 곱살하게 끌려가는 거다.

돌아가며 비운 잔들이 채워지고,

우리의 용사를 위하여!

시끌쩍하게 송별회는 반복되었다. 똑같은 송별회가 옆방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노랫소리와 함께 모두 소주를 타서 마신 막걸리의 취기는 거나해지면서 만취로 치달았다.

너 혼자 서럼고 힘들고 외롭겠다. 이겨내라. 저쪽 방 놈들도 가는 모양이다. 군대 쫄병들 말이 좆나발은 불어도 세월은 간다고 하더라.

취한 현승일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이거 받아라. 우리들이 그립구 오늘밤이 그립구 어머니가 그립구 경옥이가 보고 싶거든 이걸 불어. 이미 노엽고 슬프고 외로운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될 거다.

하고 안혁은 조그만 하니 손 안에 드는 하모니카를 내밀었다.

네가 먼저 한번 불어봐라.

좋지.

현승일은 하모니카를 손 안에 넣고 후후 불어본 다음 입으로 가져다 불기 시작했다. 곡이 흘러나왔다. 비목이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곁에 비바람 긴 세월에 이름모를 비목이여…….

모두 따라서 노래를 부르고 여흥이 오른 메기와 붕어빵이 기타 뜯는 흉내로 반주를 넣고, 안혁이 섹소폰을, 박남숙은 엉덩이를 치고 흔들며 찰찰이를 봉우는 베이스를 넣었다.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밤을 지샐 것처럼 줄곧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합창을 하고 아카펠라를 부르던 친구들이 만취해서 하나씩 서로 새어 나가도, 옆방의 친구들로 서로 부축하고 비척거리며 주점을 나가고 있었다.

술을 그만해.

경옥은 봉우를 돌아보았다. 눈에 축축한 물기가 고여 있었다. 봉우는 팔을 돌려 경옥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깨와 머리를 기대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가가, 그만 가야지.

붕어빵은 메기와 몸을 가누며 일어났고,

야 일어나, 일어나라구.

술을 많이 못하는 조영재가 만취해서 축 늘어진 박남숙을 부축해서 비척비척 일어났다.

그래, 사랑해라. 사랑해. 이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너희들의 사랑에 영원한 축복이…….

주점은 조용해졌다.

흐음…….

봉우는 눈을 떴다. 술자리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고 주점은 고요했다. 경옥이가 품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사흘만 남았다면…….

경옥은 속삭였다.

「…….

봉우는 다시금 지그시 눈을 감았다. 고향이 떠올라왔다. 골짜기로 올망졸망 들어앉아 있던 집들은 사라지고 간이역의 오래된 목조역사와 띄엄띄엄 몇 채 안 되는 집들과 조그만 국민학교 분교, 교회, 주위의 풍경은 언제나 단조롭고 한적했다. 시냇가를 따라 논밭들이 펼쳐져 있고 산자락을 올라가며 과수원이 있었다. 굵은 손마디로 늙어가는 어머니와 부수수하게 흰 머리칼이 늘어난 아버지가 과수원을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경옥이를 동행하고 내려갔을 때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간 옛 주인의 아가씨를 보고 그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머니는 속으로 기쁨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닥 가난에 찌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신의 구접스런 모습을 애써 감추었고 면구스러워하면서 무슨 음식을 한 가지라도 맛깔스럽게 마련해주지 못해 몸이 달아 하였다.

어머니, 알려만 주세요. 제가 만들어 볼 께요.

경옥이는 부엌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반찬을 만들어가며 저녁을 지었다.

군대두 죽구 쥑이던 옛날 같지는 않은께.

그럼요.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와야 번듯해진다잖아요.

암만. 사내로 태어났으면 나라에 헐 일은 다 허구 살어야제.

그리고 경옥이는 어머니와 하룻밤을 지냈다.

새벽이군.

그들이 주점에서 나왔을 때는 신새벽의 써늘하게 얼어붙은 밤공기가 퍽이나 매웠다.

어디로 가지?

글세…….

추운데.

경옥이는 곁으로 바싹 다가붙었다. 저만치 골목길 모퉁이로 하얗게 타는 아크릴 간판이 보이었다. 여인숙이었다. 그들은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은 철대문으로 막혀 있었다. 여인숙 간판이 눈앞에 있었다.

너무 추워.

출입문은 빗장이 걸려 있었다. 선잠에서 깬 주인이 나와 곧 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방두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뒤로 깊숙히 돌아들어간 방은 온기가 차지 않아 썰렁했다. 막상 여인숙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경옥은 내키지 않는 것처럼 신발을 벗지 않고 서서 머뭇거렸다. 마치 먼 데서 온 듯했다.

들어와

봉우는 문간에 서 있는 경옥을 이끌어 들였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와락 품으로 안았다. 품속에서 그녀를 느끼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그녀는 몸을 바싹 밀착시켰다.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그녀는 팔을 뻗어 목을 휘감았다. 입술과 입술이 눌리고 혀가 휘감겼다. 다시 취기가 오르는 것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화끈거리는 볼을 부비고 이마를 맞대고 문질렀다. 입술의 교감은 다시 되풀이 되었다.

두 몸 사이에 틈이라고는 없었다. 그들은 이불 위로 쓰러졌다. 한 덩어리가 되었다. 사랑은 덮치는 격랑의 밀물처럼 범람하여 요란한 격정은 끝도 없을 듯싶었다. 그리고 망각 속으로 함몰시켰다.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옆방의 격정이 들려왔다. 쿵 하는 소리로 벽이 크게 울렸다. 요란한 행위의 격정은 반복해서 되풀이 되었다. 잠시만에 그들의 지치고 벅찬 감정의 숨소리, 교미를 마치고 뒤튼 또아리를 풀며 숲속으로 달아나는 뱀들처럼 한동안 쉭쉭 소리를 내었다.

잠들었어?

경옥은 눈을 뜨고 물었다.

아니.

이제 몇 시간 안 남았지?

떠날 시간?

.

역에까지 나갈게.

초라한 텐데.

나가고 싶어. 마지막 한순간까지 곁에서 보고 싶어.

경옥은 흐느끼듯 말했다. 그리고 파고들었다. 아주 깊이…….

날 안고 자.

봉우는 팔에 힘을 넣어 억세게 끌어안았다. 심장이 뛰었다.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되어 있었다. 경옥은 빌었다.

 

불꽃같은 삶의 열정에 희망을

하나뿐인 사랑과 우정에 축복을

고뇌와 마음 속 깊은 신념에 축복을

고난의 가시밭길에 불멸의 의지로 소생하라.

우리들 있으므로 조국은 하나되어 번영하리,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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