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대가 우거진 벌판으로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녹색의 대지는 고요하고, 아직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종달새가 하늘 높이 외롭게 날고 있었다.

짙어가는 황혼의 정적 속에 드넓은 벌판을 가르며 능선과 골짜기를 아득히 돌아나가는 가시철조망 철책선, 두터운 콘크리트 장벽이 어둠에 묻히고 있다.

막사와 지오피(G.O.P)전선은 벌써 짙은 어둠이 깃들고 이제 철책선의 참호 초병들은 신경이 날카롭게 긴장한다. 그러나 싸늘한 것은 강청의 냉기가 빨아들이는 총검의 손가락이며 으슬으슬한 마음뿐, 초여름의 밤은 그래도 상큼한 밤공기로 푸근하였다.

일몰이 지는 철책선 안에서 더 꾸물거릴 시간이 없이 비무장지대를 철수, 숙영지 막사로 돌아온 소대장 이하 병사들은 은밀한 자리를 마련한 채 말이 없었다. 소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꾹 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과 초조에 싸인 긴장은 막사를 숨 막히게 지배하고 있었다.

놈은 월북했어.

고개를 든 오 하사가 이윽고 말했다. 좌중의 분위기는 더욱 참담하게 가라앉았다. 아까부터 차광막이 씌워진 희미한 호롱불 아래 이름 모를 날벌레 한 마리가 달라붙어 열심히 어지러운 맴돌이를 하고 있었다.

미친 놈…….

오하사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놈은 낙오하질 않았어. 월북한 거야.

그는 초조한 몸짓으로 서성거리며 거듭 주장했다.

내 육감은 철저히 전방근무 경험에 의존하고 있어. 비무장지대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지.

내무반장 오하사의 판단을 인정이라도 하듯, 모두는 눈만 끄먹거리며 어떤 대꾸를 하려는 반응이 없었다. 하나같이 메마른 입술을 꾹 누르고 앉아서 소대장의 심란하고 불안해하는 얼굴을 보았고, 장소위는 고뇌에 찬 잿빛 몰골을 하고 한숨을 깊게 몰아쉬면서 마른 건침만 줄곧 삼켰다. 선임하사는 비교적 침착했다.

햇비둘기 재 넘을 생각이지, 어느 놈도 쉽사리 월북은 못해.

월북이 쉽지 않다니요? 군사분계 이 코앞에 있었습니다. 그놈이 경계를 나갔던 위치에선 불과 몇 미터가 되지 안았다구요. 몇 발짝만 걸어가도 되는 곳이었어요.

오하사는 거친 음성으로 흥분했다. 목소리가 커지는 듯이 선임하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았다.

우리가 인솔하고 들어간 작업병력들이 모두 그렇지만, 그 친구 역시 불과 몇 개월 되지 않은 신병이라는 걸 알아야지.

선임하사는 계속 말했다.

곁에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고개를 땅에 쳐박구 숨는 놈들이 무슨 담력으로 비무장지댈 헤치구 이북으로 넘어가나.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사병도 아니구…….

선임하사는 작업장에서 오리무중 사라진 행방불명자가 겁 많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이라는 데 일단 안심하고 있었다.

바로 놈이 신병이라는 데 정작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번에 교육시키다가 작업에 몰고 들어온 신병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놈과 함께 교육을 받던 놈들이 어떤 놈들이라는 걸 몰라서 그러십니까? 대학에서 반체제 과격시위나 일삼던 놈들이 아녔냐구요?

오 하사는 노골적인 말로 거칠어졌다.

우리는 그 동안 교육대에서 충분한 재교육을 시켰어.

대꾸를 하고 나서 선임하사는 깊은 콧숨을 내쉬었다. <빈대마스크>라는 별명처럼 넙데데하고 강직한 그의 철색 얼굴에도 부담스럽고 심란한 짜증기가 묻어 올라왔다. 오 하사가 다시 입을 떼었다.

물론 그거야 압니다.

알면 됐지.

허지만 그 놈은 우리가 지금까지 대해오던 놈들과는 다르다는 것도 염두에 두셔야만 할 겁니다.

오하사는 그 친구의 똑똑한 점을 잘못 오해를 하고 있어.

두고 보면 알지요.

오 하사는 말소리를 죽이며 수그러들다가 구석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문 병장은 숨을 죽인 채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로 앉아 있었다.

썩은코, 저게 죽일 새끼지.

오하사는 모질게 씹어뱉었다.

, 신병을 달고 경계를 나갔으면 알아서 했어야지, 어디서 낮잠을 실컷 퍼질러 자다 혼자 어슬렁거리구 기어 나와. 늬 새끼가 빨랑 가서 잡아와!

오하사는 난폭하게 잡도리했다.

한 놈이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죄 없는 지휘관들이 줄줄이 모가지야. 그거 알아?

오하사는 거친 성질을 누그러뜨리질 못하고 두 눈을 허옇게 홉뜨고 쏴붙였다. 너무나 엄청난 결과 앞에 문병장은 두 손을 사타구니에 깊숙이 찔러 넣은 채 처분을 기다리는 중죄인으로 앉아 있었다.

썩은코 너 이 새끼, 제대명령을 받아놓구 어디 영창 신세 한번 져봐.

이미 몇 차례 가혹한 추궁을 받으며 얻어터질 대로 얻어터지고 난 문 병장은 양쪽 볼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코피가 터져서 붉게 얼룩진 얼굴로 두 눈만 힘없이 끄먹거리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과 긴장된 분위기에 눌려 입술을 꼭 오무려 물고 앉아 있는 신병들은 고참과 상관들의 눈치나 살피며 간간이 문병장 쪽으로 안쓰러운 동정의 눈길을 돌리곤 했다.

갈대가 뒤덮인 막사 밖의 벌판은 어둠이 짙게 쌓여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그 오랜 세월의 정적 속에 벌판은 제멋대로 갈대와 잡초가 우거져 더욱 더 깊고 고요한 정적이 감돌고, 어둠 속으로 공지선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능선과 고지들이 시꺼멓게 드리워져 있었다. 따라서 골짜기와 골짜기로는 까만 어둠들이 쌓여 저마다 무서운 비밀이라도 간직하고 있는 구석들처럼 보였다. 그 어둠의 저 끝에서 간혹 불빛들이 잠깐씩 반짝이며 내비치곤 했다. 몇 호 안 되는 민통선 작은 마을의 따뜻하고 정겨운 불빛들이었다. 심각한 분위기에 눌려 눈치나 보고 있던 신병들 중의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들도 허봉우가 월북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말을 해놓고 소대장과 고참병들의 눈치를 보고난 길쭉한 얼굴의 말상(馬上) 강시철이 말을 이었다.

저도 들었습니다만 과거에 있었던 일처럼 사고나 저지르고 막다른 현샐도피 수단으로 월북해야만 할 이유가 그 친구에겐 없다고 봅니다.

새 바지에 똥 싸는 소리 하네. 월북이 아니라면 하늘로 승천했어? 땅으로 꺼졌어?

대뜸 오 하사는 반박했다.

아무리 수목이 밀림처럼 우거진 산 속이라고 해도 뻔한 비무장지대 안에서 아군 본대를 못 찾아 낙오를 해! 그 새낀 넘어갔어.

오 하사는 단정적으로 잘라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 새낀 매사에 지극히 비판적이고 불만이 많았어.

덩달아 신병 중에서 가세했다.

그 새낀 평소에도 자주 뭐랬는줄 알아? 끝없이 고달픈 도시의 등산객이라고 했지. 매일매일 산동네 굴속같이 허물어져가는 움막집을 오르내린다고 말야. 한 번씩 세간을 챙겨 이사를 다닐 때마다 더 높은 고지대 빈촌으로 향해 올라가구, 변두리로 도시의 볼썽사나운 쓰레기같이 버려진다고 했어. 이런 말은 뭘 의미하는 거야? 누구든지 나서서 말해봐.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아니고 무엇이야? 그렇게 놈은 우리와 분명히 달랐지. 난 지난번 교육대에서 한참 훈련을 받고난 뒤에야 그 친구를 알았고, 우리들이 왜 터무니없이 고되고 가혹한 훈련을 받아야 하는질 알았단 말이야. 모두가 그놈과 너희들 잘난 몇 놈들 때문이었어. 자살한 놈이 생기구나서부턴 뭔가 좀 달라질까 했는데 내내 매일반이었지. 혼자 우리들의 궂은 뒷일을 다하는 척하면서 그때마다 그 새낀 얼마나 은근히 불만을 유포하면서 우리들을 선동했느냐구. 끝내 개피를 본 건 우리들뿐이었다 이거야, 알겠어?

푸마는 말에 힘을 주어가면서 떠벌렸다. 메기와 다른 친구들은 그를 보는 눈빛이 달랐다.

푸마,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

잠자코 주눅이 들린 모습으로 앉아 있던 안경잡이 조영재가 발끈했다.

허봉우는 누구보다도 의리와 줏대가 있는 친구였다. 뭘 탓하구 나무랄만한 흠이라곤 없는 친구였단 말이야. 이상하게 보지 말아. 우리들 중에선 봉우 그 친구만이 누구 어렵고 불쌍한 것을 못 보았고 힘든 일을 거들며 애써 도와줄 줄을 알았어. 특성훈련을 받을 때 보지 못했느냔 말이야. 그 친군 아주 헌신적이었잖아.

그게 어떻다는 거야? 놈의 월북과 무슨 상관이 있어? 놈은 사실 그렇게 된 듯 하면서 음흉한 뭔가를 나름대로 지니고 있었지. 이제 놈의 모든 것이 확연해졌단 말이야. 안 그래?

얘기가 엉뚱하게 터지고 있었다.

너 점점 말이 이상하잖아. 지나치게 비약하고 있어. 용서할 수 없도록 말이야. 허봉우를 완전히 월북한 공산주의자로 보구 있잖아?

그렇잖음 뭐야?

하고 메기는 버르르 분노했다.

푸마는 노골적으로 반박 자세를 취했다.

당치도 않아. 정치선전에 의식이 마비된 병든 상식이지. 바로 너를 두고 극우 파시스트라는 거야, 알겠어?

말상은 선수를 치면서 통렬하게 질타를 가했다. 드러내놓고 하는 말들이 반갑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허봉우 그 친군 지금 비무장지대 안에서 꼼짝 못하고 무서운 공포에 떨고 있을 거야. 난 그렇게 알아.

하고 말상은 선임하사 쪽을 돌아보았다. 어두운 창가에 서성거리며 붙어 있던 오 하사가 돌아섰다.

그놈의 신상명세서에도 의문점이 많았어. 그런 거야 뭐 보안대에서 알아서 했겠지만…….

신념이 강한 친구였어요. 대학에 다니면서도 그 친군 거의 노점이나 공사판 노동으로 어렵게 고학을 했구요.

조영재는 어떤 화풀이를 하듯이 말했다.

신념?

오 하사는 눈을 치떴다.

어떤 신념? 문제성이 있는 놈들은 끝까지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거야. 그놈은 역시 월북할 만큼 때론 행동이 미묘하고 체제를 보는 견해가 우리완 달랐어. 생각해보면 무서운 놈이었지…….

눈길을 몇 번 돌리며 바라보던 장 소위는 방충망이 쳐진 창가에 붙어 앉아서 사태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닌 만큼 앞으로 신변에 닥쳐올 불길한 문책을 예감하듯 초조한 표정으로 어두운 벌판을 내다보고 있었다.

엉뚱하게 속을 태우며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 새낀 월북했어요.

오 하사는 갑자기 뭔가 결정적으로 생각난 것처럼 눈알을 동그랗게 띄울거리며 소대장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지난번 비무장지대 깊숙히 작전을 들어갔을 때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그 새끼가 사격 지휘반에서 산출한 제원은 엉터리였다구요. 그 새끼에 대한 모든 것은 이제 의문의 여지가 없어요.

그렇잖아도 장 소위는 허봉우 일등병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었다. 오 하사가 말하는 당시의 그긋은 끔찍한 작전명령이었다.

그때 소대장님도 포구 방향이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제게 확인지시를 한 일이 있질 않습니까?

오 하사는 계속 기억을 도와주었다. 생각해보니 장 소위는 거런 것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 적진의 목표를 향해서 거치된 박격포의 포구방향이 분명히 옆으로 비끼고 있었다. 장 소위는 이제까지와 달리 허봉우 일병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월북이냐, 낙오냐에 대한 결정적인 사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절망적으로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머리를 저으며 다시 그때의 일을 상기해보았다.

 

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절대적으로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단 한마디도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밤늦게 상급부대 지휘관회의에서 돌아온 중대장은 긴장된 표정으로 작전명령의 서두를 이렇게 꺼내었다. 골격이 드러나 기름하게 하관이 빨려 차고 날카로운 중대장의 얼굴이 지니고 있는 긴장감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어떤 사태의 긴박성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퇴근해서 막 주점에 둘러앉아 술잔은 돌리기도 전에 헐떡이며 뛰어나온 전령의 전달을 받고 부대로 들어온 소대장들은 여느 때의 훈련 상황과 전혀 다른 실제의 작전상황을 직감하면서 중대장의 작전명령을 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정식으로 작전명령을 하달한다. 금일 23시 정각 테프콘 하나 발령, 적색경보 상황하에서 긴급 출동한다. 박격포소대 장 소위는 포 2문과 탄약 6백 발을 차량에 적재하고 완벽한 출동에 임할 것이며, 신 중위는 106밀리 2문과 각각 탄약 20발씩을 적재하고 출동에 이상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 소대에 딸린 부수기재와 대공화기, 다른 장비는 일체 필요없다. 개인화기의 탄약은 1기수씩이며 비상식량은 휴대할 것 없다.

작전명령을 들으면서 소대장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의아스러운 눈빛까지 보였다. 테프콘-1 칵크스 피스를 단계의 적색경보 상황이라면 바로 전쟁 직전, 실제 작전사황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균 편성부대의 기존 전투진지로 투입되는 작전상황이 아닌 중대 전투력의 절반, 소대의 절반 화력이라는데 이것은 뭔가 비정상적이고 기습적인 포격작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중대장의 눈매가 더욱 팽팽하게 긴장을 띠고 불티를 날렸다.

박격포소대의 목표는 적의 ○○○지피(G.P)○○○지피 둘이다. 목표 하나에 고폭탄 각각 3백 발씩 명에 의거 타격한다. 최대 발사 속도로 효력사를 할 것이며, 사격제한 시간은 30분이다. 신 중위는 아군 ○○○지피의 진지에 위치하여 박격포탄의 명중률이 희박할 경우에 106밀리 직사포로 타격한다. 확실한 제원을 산출하여 검토를 반복하도록. 부대 출동시간은 010분이다.

살집이 없이 깡마른 중대장의 양쪽 입술이 파들파들 경련하고 있었다. 장 소위는 가슴이 벌렁거리다가 마침내 전쟁이라는 생각과 함께 입 안의 침이 바싹 마르면서 심정이 착잡해지고 있었다.

명령을 받고 나왔다. 어둠 속으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골짜기의 구릉지에 들어앉은 부대막사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어둠 속으로 잠기어 고요했다. 그런 가운데 부대의 곳곳에서는 소리없이 움직이는 병사들의 민활한 행동과 불빛들이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눈발이 사선으로 엇갈리고 있었다.

작전명령을 받는대로 출동준비를 갖추었다. 차량은 스몰라이트로 엔진의 소음을 죽이고 전방 진지로 이동했다. 밤은 어둡고 추위는 혹독했다. 깊숙히 들어간 비무장지대의 골짜기에서 박격포의 야간 방렬을 감행했다.

하나 포 방위각, 넷둘삼하나.

방향틀을 잡고 있는 선임하사가 받았다.

사각 아홉오공.

오하사는 사격지휘반의 산출된 제원을 받아서 불러댔다.

둘 포 방위각, 넷아홉팔삼. 사각 아홉오공.

제원을 전포대로 불러주고 있는데,

장약은 편류차와 표고차를 제대로 적용했지?

장 소위가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렇습니다. 제원은 정확하다고 봅니다.

봉우는 대답했다. 오피(O.P와 교신을 하고 있던 무전병이 올라섰던 둔덕을 내려서면서 소대장 앞으로 송수화기를 내밀었다.

오피의 중대장님께서 받으시랍니다.

장 소위는 무전기의 송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중대장은 오피 사격관측요원과 함께 아군 지피로 올라가 있었다.

예 예. 포는 완전히 방렬했습니다……. , 제원은 정확합니다. , 이상없도록 하겠습니다.

장 소위는 교신을 끝내고 송수화기를 무전병에게 건네주었다.

매서운 추위가 포효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작고 푸른 발씨처럼 가늠대의 등들이 이쪽을 향해 내비치고 있었다. 오로지 불빛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남은 것은 머지않아 떨어질 사격명령뿐이었다. 다시 제원을 산출할 다른 목표는 없었다. 단일 고정목표였다. 장 소위는 한숨을 깊이 몰아쉬었다.

이런 임무가 떨어질 수 있다니요?

선임하사는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소대장을 쳐다보았다.

군인인데 임무를 가릴 수 없지 않소.

추위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정말 사격명령이 떨어질까요?

선임하사가 물었다.

글쌔요…….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장 소위는 단안을 할 수가 없었다.

전엔 놈들이 120밀리 박격포탄을 40여 발씩이나 쏘아댄 적도 있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아주 정확하더라군요. 지피 시찰을 나왔던 부사단장이 위험했다고 들었습니다.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선임하사가 말했다.

「…….

장 소위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한번은 우리도 몇 발 응시를 해본 적이 있는데, 모두 목표를 비끼면서 골짜기로 떨어지더랍니다.

선임하사는 말을 계속했다.

아마 그런 노파심 때문에 고지로 직사포를 올려다놓은 거 아니겠소.

헛일이지요. 놈들은 지피가 모두 튀어나오지 않고 후사면으로 잠기거나 유개호처럼 밋밋히게 들어가 있잖습니까. 전면으로 튀어나온 건 확성기탑뿐이지요. 천상 사각이 높은 박격포로 때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밋밋하게 뒤로 넘어간 후사면까지 타격할 수 있어요. 포탄도 파고 들어가서 작렬하는 지연신관을 써야 하구요.

선임하사는 적극성을 띠었다.

이번엔 그전처럼 체면이 말 아니게 개망신당하는 꼴을 해선 안됩니다. 따끔한 본때를 보여줘야지요. 어차피 법은 멀지않습니까.

쌍방이 너무나 민감해. 생각해보면 적대감정도 아닌 것 같은데 말야.

장 소위는 말을 돌렸다.

그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를테면 서로 지나친 의심을 품고 있는 공포감 같은 거지, 서로 먼저 당할 것 같은 공포감 말이오. 고두리에 놀란 새처럼. 너무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민감해져 있는 거요. 자라를 보고 놀라면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잖소. 바로 그런 상황이오.

무전병이 다가왔다.

중대장님이십니다.

장 소위는 무전병이 내미는 송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선임하사는 똑바로 고개를 들고 소대장을 바라보았다.

장 소위는 중대장과 잠시 교신했다. 중대장의 지시는 간단했다. 장소위는 무전기의 송수화기를 무전병에게 건네주고 일어섰다.

포탄을 모두 까서 제원대로 장약을 맞춰놓으라는 지시요.

멍한 태도를 보이다가 선임하사는 소대장을 따라 일어났다.

상황은 예정대로 돌아가는군요.

선임하사가 중얼거렸다. 그는 어둠 속을 둘러보았다.

오 하사, 전달하지. 포에는 사수와 조수만 붙어 있고 모두 탄약상자를 포 뒤로 운반하도록.

장 소위는 선임하사 쪽으로 돌아섰다.

그래도 설마 하고 탄약을 차에 적재된 채로 놔둬보았더니 그 설마가 먹혀버리고 말았소.

병력들이 다시 어둠 속에서 꾸물꾸물 모여들었다.

탄약상자를 모두 이쪽으로 운반해 놓도록.

선임하사는 다가오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오 하사는 문 병장과 이 병장을 불러서 함께 포탄을 까고 장약을 맞춰 놓도록 하지.

오 하사는 긴장하고 있었다. 병력들도 다른 때와 달랐다. 어둠 속에서도 신속하고 민첩하게 무거운 줄도 모르고 탄약상자를 들어 날랐다. 경우에 따라선 사람의 능력이 평소보다 훨씬 높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봉우는 깨닫고 있었다. 그는 상자에서 뜯어내는 포탄에 장약을 맞춰 끼는 일에 붙었다. 오 하사가 중얼거렸다.

움막 같은 집 한 채의 목표에 3백 발 효력사라니. 모두 먼지로 날아가 버리겠군.

봉우는 포탄의 신관에 장약을 맞추느라고 장갑을 벗은 손의 감각이 금방 둔하게 얼어들어왔다. 곁에서 이 병장은 포탄상자를 뜯고, 문 병장과 오 하사는 한 발씩 꺼내어 들고 밀봉된 접착띠를 뜯어내며 깍지 속에서 조심스럽게 포탄을 꺼내주었다. 봉우는 포탄에 장약을 맞춰 나갔다. 곱은 손데서 한 발이라도 언 땅으로 떨어지게 되면 골짜기가 날아가버릴 터이었다. 그러나 누가 조심하라는 말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더듬는 손길로 해내는 동작들이 노무 완벽하고 익숙해서 귀신같은 솜씨를 부린다고 해도 될 것 같았다.

포탄은 쌓여졌다. 점차 봉우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쌓여가는 포탄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소대장이 다가왔다.

몇 발이나 까놨나?

백 발쯤 될 겁니다.

오 하사는 얼어붙은 입으로 대답했다.

잠깐 내 말을 들어봐.

장소위는 포탄을 더 꺼내서 장약을 맞추어 놓는 일을 일단 중단시켰다. 그리고 물었다.

만약 사격이 개시되면 남은 포탄을 이상 없도록 까댈 수 있겠나?

고정목표니까 충분합니다.?

오 하사는 대답했다.

좋아. 그럼, 이것으로 상황에 대비한다. 모두 위치로 돌아가도록.

제 위치로 병력을 돌려보낸 뒤 장 소위는 돌아섰다.

옳게 판단하셨습니다. 만약 사격명령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되레 작업할 뒷일이 벅차게 되지 않습니까?

선임하사 말대로 장 소위는 그런 생각이 언뜻 뇌리를 스쳤던 것이다. 어떤 상황이건 부하들의 무리한 헛고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 소위는 골짜기의 우묵한 바위 밑에 자리잡은 사격지휘소로 돌아왔다.

사격명령을 기다렸다. 입 안의 침이 메말라들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의 동계가 귓속으로 연신 울려왔다. 순간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무전기는 잠잠했다.

추위가 엄습했다. 뼛속까지 저리게 파고들었다. 살을 에는 무슨 독기 같았다. 구석으로 들어앉으면서 선임하사가 몸을 움츠리고 방한 외투 깃을 올렸다. 오하사도 힘들게 추위를 견디며 끙끙거리고 있었다. 임하사가 외투 깃 속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빈 포탄상자로 집을 지읍시다.

선임하사가 말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난 오하사도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라도 해야겠습니다. 제 솜씨를 보여드리죠.

오 하사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허 이병, 빈 포탄상자 좀 날라.

봉우는 몸이 얼어서 얼른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조금 있다 소총을 대각선으로 멘 다음 그는 빈 탄약상자 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걸어갔다.

저는 페치카를 만들어보겠습니다.

탄약상자가 쌓여 올라가고 있는 가운데로 오 하사는 넓적한 돌들을 주워 구들장을 놓듯이 바닥으로 깔아나갔다.

봉우는 포탄상자를 날라대었다. 포탄상자는 착착 쌓여 올라갔다. 빈 포탄상자로 움막을 급조하고 있는 선임하사는 건축공사장의 벽돌공 같았다. 솜씨가 무척 좋았다. ()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군인이라던 그의 말이 봉우는 새삼 생각났다. 말이나 행동이 그는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장기하사로 복무하고 있는 오 하사도 다를 바 없었다.

금세 사각의 움막집이 되었다. 그 위로 선임하사는 판초우의를 덮어씌웠다. 선임하사는 소대장과 함께 그 상자집 안으로 들어갔다. 봉우는 소총을 앞으로 걷어잡으면서 포탄이 쌓인 경계위치로 돌아섰다.

어둠은 고요했다. 정적만 감돌았다. 어둠 속으로 서 있는 친구들은 기침 소리 하나 없었다.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적에 대한 공포와 생명에 대한 애착, 독기처럼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뿐이었다.

오 하사는 어둠 속을 더듬어 마른 나뭇가지를 걷어들고 움막집 안으로 들어앉았다.

사격을 하게 되면 우린 살아나가기 틀렸죠?

깊은 콧숨을 쉬며 오하사가 말했다.

틀렸지. 몇 발만 날아가면 반격 포탄이 우박 두드리듯 빗발칠 테구, 전쟁일 텐데…….

선임하사의 목소리도 심각했다.

자그마치 포탄이 6백 발이야.

천상 전쟁일 수밖에 없다는 듯이 선임하사는 말했다.

여긴 쌍방의 화력으로 불바다가 되겠지요?

오 하사의 말소리엔 절망과 체념이 서려 있었다.

그렇겠지. 중장거리 포에다 항공기 화력, 경우에 따라서 핵지뢰까지 폭발한다면 완전히 불바다로 초토화되겠지.

저는 어리석게도 사격이 끝나고 철수할 땐 적의 관측사격이 불가능하게 연막차장이라도 해주리라는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습니다.

페치카라고 만들어놓고, 마른 싸리나무에다 삭정이 몇 도막을 꺾어 넣은 넓적 돌 밑에선 가벼운 연기를 피워 올리며 그런대로 나무가 잘 타고 있었다. 몹시 얼었던 장 소위는 몸이 약간 부드러웠다. 선임하사도 다소 혹독한 추위가 풀리는 몸으로 앉아 있었다. 망연해 보였다.

이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작전입니다.

오 하사는 입을 떼었다.

모든 건 위에서 더 잘 알아. 우리가 미주알고주알 떠들 일이 아니지.

선임하사는 말을 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무전기로만 온 신경을 모으고 있었다. 사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 소위는 팔목의 시계를 불빛에 비춰 보았다. 335분이었다.

이북에서 도발을 할까요?

무전기를 등에서 내려놓고 앉아 있던 무전병이 물었다.

「……모르지.

얼버무리듯 선임하사가 대답했다.

육이오 때도 서부전선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이 먼저 38선을 넘어 들어가 전쟁 유도를 위한 도발적 행동을 자행했다고도 말을 하잖습니까?

무전병은 한마디 더 했다.

북측에서 주장하고 있는 소리지. 그런 따위로 엄청난 전쟁의 빌미가 될 순 없어. 38선 접경에서 소규모의 충돌이 잦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육이오는 어디까지나 김일성의 남침 도발이었어.

서방의 몇몇 학자들도 그렇게 의도적인 도발로 북침 가능성을 내세우고 있는 것 같던데요. 당시 미국의 여러 가지 국내 사정과 전략적 국익을 위해서 말입니다.

김일성으로부터 돈 먹은 사이비 학자들의 주둥아리지.

오 하사가 뱉듯이 말했다.

무심코 방심했다가 또 한 번 당하는 꼴이 될 수는 없지. 이번엔 그따위 싹수가 보이면 초기에 따끔한 반격으로 놈들의 전쟁의지를 다잡아 묵사발을 만들어놔야 한다구.

선임하사는 술에 취해 월남전에서의 무용담을 자랑할 때와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소대장 쪽을 바라보았다.

장 소위는 거듭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격제원은 완벽하겠지?

그렇습니다.

오 하사가 대답했다.

허 일병은 신병이지만 민첩하고 두뇌가 비상한 놈입니다.

믿어도 될까?

장 소위는 적진 사격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박격포 쪽도 이상없겠죠?

선임하사의 능력을 믿고 있으면서도 장 소위는 재차 물었다.

첫 발에 명중을 시켜서 눈알을 뽑아버려야 할 텐데…….

사실 지피는 적정상황에 대한 조기경보 임무를 띤 사단의 일반전초였다.

정확한 명중은 어렵다고 해도 첫 발이 근사치로만 떨어져 준다면 둬 서너 발의 고정제원으로 효력사를 퍼부을 수가 있습니다. 사단 사격대회에서도 목표 전이사격으로 우승을 했던 것 아닙니까.

무전기는 호출이 없었다. 장 소위는 다시 시계를 보았다. 그사이 25분이 지나고 있었다. 4시였다.

사격할 시간이 촉박한 것 같은데요?

선임하사가 말했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소.

장 소위는 남은 밤 시간을 계산해보고 있었다. 앞으로 한 시간 이내에 사격명령이 떨어진다고 보면 3,40분간에 소나기처럼 퍼부어대고 남은 새벽의 어둠 속에 비무장지대의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철수는 예정대로 가능할 것이었다. 문제는 어두운 혹한 속에 떨고 있는 병사들이었다. 장소위는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괜찮은가?

, 괜찮습니다.

지체없이 대답하는 병사들의 목소리는 입이 얼어서 그런지 아주 명료하게 들려왔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혹한 속에 부하들이 이처럼 임무에 충실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장 소위는 가슴이 뭉클거렸다.

사간은 지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 번 시계를 보았다.

아직도 사격명령이 없는데, 시간은 얼마나 지났습니까?

선임하사가 물었다.

45분이 지났소. 내 계산대로라면 앞으로 10여 분 남았소.

고비로군요.

그렇소.

장소위는 침을 삼켰다.

애들이 잘도 버텨주는군.

선임하사도 혹한 속의 부하들을 안쓰럽게 걱정하고 있었다.

꾸벅거리며 조는 놈 하나 없이 목소리가 짱짱하던데요, .

하고 오 하사는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며 중얼거렸다.

애들이 무두 동상에 걸려버리겠어요.

무전기는 호출이 없었다. 침묵이 흘러갔다. 다들 눈길을 고정한 채 무전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장 소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위어들던 모닥불도 꺼지고 써늘한 한기만 포효하듯 감돌고 있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재깍재깍 시계의 초침만 돌아가는데, 갑자기 장 소위는 팔을 앞으로 내밀며 라이터 불을 켰다.

5시가 넘어가고 있소!

정말입니까?

선임하사는 다그치듯 물었다.

55분이오.

장 소위는 긴장이 한풀 꺾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격이 없을까요?

하고 오 하사는 물었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구.

장 소위는 안도감에 젖어들며 한숨을 쉬었다. 선임하사가 말했다.

상황은 끝난 것 같습니다. 이제 사격하다가는 철수하면서 뒤통수가 묵사발이 되지 않겠느냐구요. 이미 여명 공격시간은 지났구요.

선임하사는 몸을 폈다.

우리가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오 하사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느 쪽도 쉽사리 모험은 못합니다. 잘못했다간 우리만 끝장나는 거죠.

선임하사의 말소리 끝에 장 소위는 한 번 더 시계를 보았다. 무전기는 호출이 없었다.

끝났소. 상황은 없소.

장소위는 선언하듯 말했다. 얼굴에는 희색이 서렸다.

사병들이 모두 얼어죽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소. 밖에 불을 피우기는 이르니까 이 안에서라도 모닥불을 피우고 우선 반합에 물이라도 좀 끓여 먹였으면 좋겠소.

아예 불을 피워버리도록 합시다.

선임하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를 않았잖소.

애들을 살리고 봐야지요.

그거야 나도 알지만…….

지피에서 중대장이 불빛을 내려다보게 되면 불벼락이 떨어질 텐데요.

오 하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때 뒤로 밀어놓았던 무전기가 호출을 했다. 지켜 앉았던 무전병이 재빨리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장 소위는 송수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모두 다시 입술을 물며 바싹 긴장했다.

올빼미 감 잡았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금방 교신을 끝내고 장 소위는 무전기의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진지를 파라는군.

기름난로가 벌겋게 달아오른 벙커 안에 있으니까 바깥세상이 한여름인 줄 아나부죠.

오 하사는 차돌덩이처럼 언 땅을 생각하고 있었다. 선임하사는 판초우의를 걷어 젖혔다. 선임하사와 함께 장 소위는 밖으로 나왔다.

검게 드리워진 능선 너머로 동녘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며 푸른빛을 띠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골짜기는 어둠에 싸여 있었다. 장 소위는 골짜기 언덕의 바윗등으로 올라갔다.

괜찮은가?

장소위는 탄약더미 앞에 서 있는 허 일병에게 말을 건넸다.

, 괜찮습니다.

봉우는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오로지 상관에 대한 외경의 발로였다. 몸은 움직일 수 없이 굳어 있었다.

몸을 움직여라.

장소위는 진지의 사병들을 향해 말했다. 능선 너머로 어둠의 껍질이 벗겨지듯 점점 잿빛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주위에서 나무를 모아 불을 피워라.

장소위는 크게 외쳐댔다. 진지를 파더라도 얼어 있는 사병들의 몸이나 풀린 다음에 파야 할 일이었다.

병사들의 몸이 무겁게 뒤룩거렸다. 얼어붙은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 모양이었다.

불을 피우라니까!

장소위는 되풀이하여 외쳤다. 그 사이에 오 하사는 야전곡괭이를 뽑아들고 나와 언 땅을 찍어보았다. 땅은 차돌을 찍듯이 불똥을 튀면서 곡괭이 날이 한 치도 먹히지를 않았다.

이왕이면 포진지에 불을 피워라.

오하사는 곡괭이를 내던졌다. 한쪽에서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물을 먹고 싶어하던 병사들은 수통 꼭지를 빨다가 모닥불 위로 녹였다. 수통의 물은 돌덩이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죽어버린 목숨이라고 생각했다구. 심장이 수통처럼 얼어붙지 않구 지금까지 뛰고 있다는 건 기적적인 일이야.

문 병장이 퍼렇게 언 얼굴을 녹이며 무거운 입으로 말했다.

물건을 꺼내고 오줌을 누니까 고드름이 돼버리던데. 이리저리 흔들어가면서 누다가 나중엔 손으로 부러뜨려가면서 눴지.

이 병장이 언 얼굴을 비비면서 말했다.

사격을 하다 예광탄으로 산불이 났을 땐 멧돼지, 노루 불고기를 주우러 가자구 하더니 똑같은 소리를 하네.

오하사가 웃었다.

난 휴전선이 터지는 줄 알고 십 년 감수했어.

문병장이 말했다. 봉우는 말상을 쳐다보았다. 몰골이 퍼렇고 까칠했다. 할 말도 없고 몸이 무거워서 말을 할 수도 없는지, 눈도 끔적거리지 않으면서 창백하게 표정없이 굳은 석상(石像)처럼 서 있었다. 봉우는 2분대 쪽으로 허우대를 바라보았다. 그도 바라보고 있었다. 무사하게 하룻밤을 지냈다는, 위안의 눈길로 서로 바라보고 난 뒤 봉우는 모닥불로 손을 내밀었다.

새끼들아, 몸을 웬만큼 녹였으면 모닥불을 잠깐 저쪽으로 옮겨.

오 하사는 야전삽으로 한창 잘 타는 모닥불을 밀었다.

심술 난 시어미처럼 왜 이러십니까?

진지를 파야 하는 거 몰라?

오하사는 모닥불이 타던 자리를 야전삽으로 긁었다. 언 땅은 습기만 번져 있을 뿐, 흙은 한주먹도 긁어지지를 않았다.

미치겠군.

모닥불을 제자리로 옮겼다.

할 수 없지. 혀로 핥구 손톱으로 긁어서라도 진지를 파라. 군대는 명령이라는 걸 알지?

오 하사는 소대장 쪽으로 다가갔다. 양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하던 문 병장은 알불이 많이 쌓이도록 곁에 남은 마들가리를 한꺼번에 모닥불 위에 올려놓았다.

움직일 만하거든 가서 나무들을 더 해와.

환자의 숨소리처럼 씨근거리며 진지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해가 떠올랐다. 쌓아놓은 포탄엔 성에가 허옇게 붙어 있었다. 눈이 부셨다. 메마른 나무덩굴 속엔 녹슨 철조망이 감겨 있었다. 햇살이 골짜기 언덕으로 비치고 있어서, 철조망들의 가시가 더 날카로워 보였다.

하루 종일 긁어내도 포판자리도 못 잡겠군.

모닥불을 피우며 흙을 계속 긁어내도 땅은 돌덩이처럼 얼어 있었다.

다른 생각 할 것 없지. 군인은 모름지기 명령을 실천하는 거다.

이 병장은 대검을 뽑아들었다. 그는 돌을 집어 들고 대검을 언 땅으로 두드려 박았다. 그리고 야전곡괭이 끝을 밀어 넣고 한 조각씩 떼어냈다. 한 사람은 대검으로 언 땅을 조각내는 일을, 또 한 명은 야전곡괭이로 흙덩이를 떼어내는 일을, 그리고 한 명은 지켜섰다가 야전삽으로 부서진 흙덩이들을 긁어내었다. 작업은 진전되었다.

지금까지 파낸 진지에다 그대로 포판을 고정시켜라!

느닷없이 선임하사가 외치면서 방향틀 위치로 뛰어갔다. 박격포 주간 재방렬인 것을 알고 탄약수 하나가 전방의 겨늠대로 쫓아나가면서 거리를 잡았다. 포판 위로 포신이 세워지고 다리가 받쳐지고, 가늠자가 꽂히면서 순식간에 거치가 완료되었다.

하나 포, 방위각…….

받아 복창하는 사수·부사수의 소리와 함께 포구는 적진의 목표로 돌아갔다. 민첩하고 신속했다.

둘 포, 방위각 넷둘…….

박격포는 차례로 방렬되어갔다. 밤새껏 지피에 위치하고 있던 중대장이 내려왔다. 2분대 포의 준비 끝이란 소리로 2문의 박격포는 적진의 목표를 향해 완전한 제원방렬이 끝났다. 사격명령은 없었다.

제원 정확한가?

거치된 박격포 뒤에 서 있던 장 소위는 오 하사 쪽으로 물었다. 오 하사는 제원을 묻는 소대장이 이상한 듯이 바라보았다.

제원 정확해?

장 소위는 재차 확인했다.

제 계산으론 정확합니다.

봉우는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장 소위는 적진의 목표를 향한 포구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햇빛이 빈약하게 비쳐들고 있었다. 허옇게 도색이 날아간 포구의 부분이 햇빛을 받아가면서 차갑게 반짝거렸다.

허 일병, 이리 와.

오하사는 포구 방향을 가늠하면서 서 있었다. 아까 소대장이 목표를 향해 거치된 포구 방향을 미심쩍게 가늠해보면서 제원을 묻던 것이 사격지휘반의 반장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보기에 목표로 향하고 있는 포구 방향이 약간 기운 감이 들어서였다.

, 제원이 확실해?

확실합니다.

새끼야, 목표는 아군 지피 왼쪽 방향으로 넘어가는데, 포구가 형편없이 기울었잖아?

저는 제원산출을 정확히 했습니다.

어떠한 결과 앞에 서게 되더라도 좋다는 듯이, 봉우는 신병답잖은 어조로 완강하게 말했다.

이 새끼야, 난 박격포가 군생활 전부야!

오하사는 얼굴이 험악해지면서 양볼을 씰룩거렸다.

넌 적 지피가 어디 있는 줄이나 알아?

소대장님이 도상 목표로 좌표와 함께 핀을 꽂아주셨습니다.

그럼, 너 이 새끼 제원을 확인해서 오차가 지나치면 뼈다귀도 못 추릴 줄 알아.

오 하사는 입매를 두드러지게 물었다. 신병을 거칠게 다루는 모습을 쳐다보던 이 병장이 다가오고, 봉우와 같은 신병인 말상과 허우대도 눈을 끄먹이면서 다가왔다.

따라와!

오하사는 오만상을 찌푸르며 고함을 질렀다.

그 무렵이었다. 언제 들어 온지 모르게 지프차 한 대가 진지로 들이닥치고, 연대장이 지휘봉을 들고 내렸다.

수고들 한다.

연대장은 앞에 서 있는 사병들에게 치하를 했다. 그리고 중대장 ·소대장과 마주하고 설 때였다. 수색중대(민정경찰) 지프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붉은 별판이 떴다. 지휘관들이 맞이하려고 뛰어나갔다.

어떤가? 고행 많았지.

차에서 내린 사단장은 진지로 걸어 들어서면서 늘어서 있는 지휘관들을 치하했다. 사단장은 거치된 박격포를 향해 몸을 돌리고 섰다.

소대장, 자신 있나?

사단장이 물었다.

, 자신 있습니다.

좋아, 너를 믿는다.

사단장은 중대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애들 밥 따뜻하게 먹이시오.

알겠습니다. 지피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대장은 경직된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그럼, 수고들 하시오.

사단장은 돌아섰다. 연대장도 뒤따라 나갔다.

두 대의 지프는 사라졌다. 느닷없이 높은 지휘관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서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사라질 즈음 소대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철수!

 

 

판에는 먹물 같은 어둠만 쌓여 있었다. 장 소위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허 봉우 그 친구는 절대로 월북할 친구가 아닙니다. 저는 그 친구를 믿고 있어요.

네놈들은 이북을 우리와 다르게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오 하사는 마치 대공수사관처럼 말했다.

오 하사님. 말이 났으니 말이지, 우리같이 조국이 분단된 입장에서 그런 얘기처럼 필요하고 또 중요하게 입에 올려야 할 말이 어디 있던가요? 입에 맞는 음식이나 배불리 포식하며 섹스 비디오로 히히덕거리구 즐기면서 방귀나 뽕뽕 뀌는 것들로 재미를 삼아야 하는 겁니까?

메기는 쏘아대는 어투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순식간에 오 하사는 상판이 벌겋게 충혈되어 올라왔다.

이 새끼야, 그런 소린 너희 놈들이 주제넘게 씨월 댈 소리가 아니야! 이제 갓 군대에 들어온 쫄병이면 쫄병답게 굴어야지.

오 하사는 계급의 위세로 다잡고 들었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또 뭡니까?

우발적인 동기라는 것도 있다는 걸 모르나? 저놈들이 떠들어대는 대남방송을 들어보지 못했느냐 이 말야. 귀가 솔깃하게 떠들어대는 소리, 그 대남방송을 들어보면 순간적인 충동으로 월북을 기도한 가능성 또한 얼마든지 있다 이거야. 이건 과거의 전례가 증명하고 있는 일이야.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신병들에게 교육훈련을 시키면서 비무장지대 벌목작업에까지 동원하는 동안 여러 가지로 무리가 없지도 않았구.

오하사가 힘들여 구체적인 사실을 열거하지 않아도 신병들 쪽에선 그 동안의 온갖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체험들을 통하여 잘 알고 있었다. 교육훈련이 계속되는 동안에 몸의 기름기는 거의 다 빠져버렸고 겨우 보직부대에서 군대 짬밥살이 오를 차례인데 생각지도 않은 비무장지대 시계청소 벌목작업에 동원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언제 적 장비인지도 모르는 무디고 녹슨 톱과 도끼로 찍고 베어가면서 아름 목 하나를 쓸어 넘어뜨리자면 비지땀으로 모의 진액이 깡그리 빠지는 판국인데, 어느 알량한 상관의 뱃살에 기름 불리는 후생사업 명령인지 육중한 아름 목을 6목도, 8목도 해가면서 가파른 고지를 기어 어 내려야만 했다. 따라서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난폭한 구타의 욕설, 견딜 수 없는 특수훈련, 고달픈 사역, 마치 죄인들의 수용소군도처럼 입대하기 전의 사회는 아득하게 먼 옛날 일로 기억되곤 했던 것이다. 억제된 감정과 분노, 비감…… 모든 것은 인격을 포기하는 일로 실제화 되고 있었다. 무조건적인 복종과 순응, 벌목작업, 목도운반, 군대에 와서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들이었다.

놈들의 말을 빌리자면 남조선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지. 의거 월북하면 원하는 대로 김일성대학에서 배우게 해 주구 주체조선 김일성 어버이 수령의 따뜻한 품안에서 차별과 학대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안락한 생활을 누리며 살게 되구…… 놈들의 출력이 센 고성능 확성기는 모든 잡음을 누르고 유난히 고달픈 심신의 귓전에 파고들지. ‘친애하는 국군 여러분, 고달프디요. 누구를 위하여 기렇게 고생하십네까? 미제 침략자 놈들의 앞잡이 노무자로 고생하디 말고 안락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품으로 넘어오시라요. 우리는 어느 띠나 남조선 국군동무들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따뜻이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시요…….

오 하사는 북쪽의 대남방송 흉내까지 곁들여가면서 말했다.

그렇게까지 의식이 박약하진 않아요.

말상은 항의조로 말했다. 또한 신병들은 그런 상황이 새로울 것도 없었다. 비무장지대로 들어서면서 접적지역의 두려움보다도 먼저 왠지 모르게 야릇한 설렘으로 호기심이 앞섰고, 북쪽의 대남방송 소리를 들으면서 차츰 대수롭잖은 소리로 듣게 되었지만, 그 격정적인 억양으로 부드럽고 푸근하게 아나운서의 말이 넘어가는데, 그 방송 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으면 들을수록 정감 어린 분위기와 감미롭게 휘감기는 화술의 최면에 걸리게 된다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너무 걱정들을 하실 것 없습니다. 허봉우 그 친구는 북한 김일성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서 알 만큼은 비판적으로 알고 있는 친굽니다. 월북하진 않았어요. 제가 그건 보장합니다.

표정을 바로잡으면서 조영재는 말했다.

만약 일이 잘못되었으면 북쪽의 수색정찰대에게 납치된 것일 수는 있겠지요. 다행히 그게 아니라면 그 친구는 지금 비무장지대 안에서 마냥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메기가 덧붙여 말했다.

좀더 기다려 보자구. 정말 그 친구가 저쪽으로 넘어갔다면 놈들의 대남방송이 기고만장하게 터져 나올 것이 아닌가.

야전침대에 걸터앉았던 이 병장이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세우며 좌중으로 말했다.

밝은 낮에 넘어갔다면 지금쯤은 놈들의 확성기에서 신명나게 터져 나오고도 남았어. 그러니까 녀석은 아직 넘어가지 않은 거야.

선임하사는 입을 다물었다. 소대장은 자주 바깥으로 눈길을 주곤했다. 혹시 뒤늦게라고 낙오자가 비무장지대를 헤쳐 나와 철책선을 넘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선임하사도 몇 번이나 전화기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지만 전화기는 잠잠하기만 했다. 아군의 지피 확성기에서 울리는 노랫소리가 철책선 능선을 넘어 벌판으로 낭랑하게 깔리고 있었다.

그 새낀 반역이야.

하고 느닷없이 푸마는 목소리를 높였다.

반역이라고? 그 친구가 어째서 반역이야?

말상이 민감하게 눈을 위로 치뜨며 힘주어 그를 응시했다.

그럼 월북이 정당하다는 거야, 뭐야?

확 붉어지는 낯빛으로 푸마는 잡도리하듯 덤벼들었다.

난 정당하다고 하지 않았어. 아량을 가지고 너그럽게 생각한다면 그 친구는 제 고향땅에 간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거지.

누군 그걸 모르는 줄 알아?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중요해.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지.

푸마는 포악을 떨 듯이 덤비다가 숨을 죽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오 하사는 연신 양볼을 씰룩거리고 있었다.

새끼야, 전방은 후방에서 떠드는 소리완 달라. 우리 눈앞에 있는 건 예쁘장하게 모양내구 가야금 뜯는 기생 년들이 아니다 그런 말이야. 중무장한 적들이야. 최신 무기가 언제든지 불을 뿜을 명령을 대기하고 있어. 밤마다 땅구덩이 속에 들어가 찬이슬을 맞아가며 눈을 부릅뜨고 적진을 응시해야만 한다 그거야. 알겠어? 한눈을 팔면 귀신처럼 덤벼들어서 숨통을 따버린다는 걸 명심해.

오 하사는 줄통을 뽑았다. 뒤를 받쳐 선임하사가 다물고 있던 입을 떼었다.

우리의 현실은 눈앞에 적이 있다는 사실이야. 여기는 최전방 전선이라구. 우리는 군인이고, 군인은 다른 데로 눈 돌릴 거 없이 언제든지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만반의 준비태세만 갖추고 있으면 되는 거야. 오로지 그게 전부라구.

선임하사는 진중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바른말을 제법 잘 하고 독선적인 데가 있지만, 너희들도 지금 우리 눈앞에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 적이 아니라고는 말을 못할 테지?

오 하사는 신병들을 몰아세웠다.

민족과 동포니 하는 말은 나도 알아.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어. 허지만 우리의 지척에 있는 건 엄연히 적이야. 그들도 똑같이 총을 겨누고 있구, 대적자세를 취하고 있어. 이 엄연한 현실 부분을 누구도 부정할 순 없다, 그 말이야.

오 하사는 발작적으로 열을 올렸다. 선임하사가 신병들에게 말했다.

군인은 단순해야 돼. 물론 우리는 이민족을 적으로 하고 있는 입장과는 다르지. 형제요, 친구일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감상적일 수 있어. 그러나 만약 적진에서 북한의 어린 소년병이 총으로 심장을 겨누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앳된 소년을 보고 연민의 정이 넘쳐 많은 생각을 하게 될 테지만 그 소년병은 아무런 생각없이 우릴 단순한 적으로 보고 총을 쏴버리도록 훈련되고 정신무장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해.

군인이기에 그런 모든 말을 할 수 있으리라고 신병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언제든지 총만 내던지면 서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이지. 엉엉 소리를 내어 통곡으로 울부짖게 될 거야. 그건 나도 알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숙연한 분위기가 되면서 침묵이 흘렀다. 호롱불이 희미하게 바닥으로 둥그런 원을 그리며 깔리고 있었다. 막사 안은 더욱이 고요하고 적연했다. 밖으로 어둠 속의 정적을 방해하는 것이라곤 없었다. 갈대의 숨소리와도 같은 바람 소리만이 가만가만 들려오고 있었다. 초여름이라고는 하나 밤공기는 제법 서늘하고……. 장 소위의 크고 검실검실한 눈에는 이미 정열과 패기는 떠나고 고뇌에 찬 절망과 불안한 두려움만이 가득 실려 있었다.

북쪽 대남방송을 견제하기 위한 아군의 방해방송이 이미자(李美子)의 애달픈 가락으로 밤의 고요를 더욱 차분하게 가다듬고 있었다.

너무 걱정할 거 없어. 그 친구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구.

선임하사는 침착한 목소리로 모두를 안심시켰다.

설령 월북을 기도했다고 해도 성공하고 넘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비무장지대의 우거진 나무숲 속은 겉보기와 완전히 달라. 녹음이 우거진 산은 겉으론 유순해 보이지만 계곡에 빠지면 산세가 이만저만 험악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돼. 여기는 가뜩이나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광주산맥 줄기야. 내가 두려운 건 놈의 월북이 아니라 섣불리 산 속을 헤치고 다니다가 깔린 부비트렙에 걸릴까봐 그게 걱정이지. 예전에도 한 놈이 월북을 기도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놈이 이북 초소인 줄 알고 어두운 새벽에 기어 올라온 곳은 아군 초소였지.

등산용어에도 링반데룽이라는 게 있지요.

허우대가 멀쑥한 몰골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산악의 어두운 밤이나 짙은 안개, 눈보라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자신은 줄곧 직진하며 제대로 길을 찾아간다고 생각을 하고 헤쳐 나가지만 같은 지역을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는 그런 현상 말입니다. 허봉우가 월북을 기도했다고는 절대로 믿진 않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앞서 선임하사님의 말씀마따나 월북 기도 자가 밤새껏 헤매다가 새벽에 아군 초소로 되돌아왔던 것처럼 허봉우 그 친구도 링반데룽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지요.

제발 당황하지 말고 그 자리에나 꼼짝없이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시간이 흐를수록 선임하사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생각해도 그 친구가 월북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개를 가슴에 푹 묻고 있던 문 병장이 정신을 가다듬고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좋은 친구였어요. 분별을 모르구 함부로 행동할 친구가 아니라는 것만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죽일 새끼, 싸질러놓고 비윗살 좋게도 까네.

시커먼 윗눈썹을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오 하사는 험악한 인상으로 문 병장을 노려보았다. 말을 꺼내려던 문 병장은 다시금 고개를 가슴팍으로 꺾으며 움츠러들었다.

어떡했으면 좋겠소?

장 소위는 선임하사를 향해 물었다.

본대로 지휘보고를 해서 사건을 만들 거 뭐 있습니까? 어차피 늦었구, 벌어진 사건이라면 결과는 매한가진데요. 내일 작업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요.

들어가서 수색을 해보나 마납니다. 새낀 넘어갔어요.

오하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건입을 씹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잖은가. 남은 희망은 그것밖에…….

선임하사는 한숨을 쉬었다. 장 소위도 그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막사 안에는 불안하고 절망적인 침묵이 더 무겁게 드리워졌다. 바깥의 황량한 어둠 속으론 북에서 시작된 대남 방송이 철책선 능선을 넘어오면서 깔리고 있었다.

 

……숭고한 혁명적 정신을 발휘하면서 조국 남반부를 강점하고 있는 미제국주의자 놈들을 몰아내고 우리는 민족통일의 염원을 하루 속히 달성하여 온 민족이 하나가 되는 주체조선으로 세계 여러 사회주의 나라들과 련대 강화하여…….

 

남쪽 아군의 확성기에서는 가수 조용필의 호소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며 잡았었는데 돌아서던 그 사람은 무정했던 당신이지요.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잊을 수는 없다 했는데 지금의 내 마음은 차라리……

 

노랫소리는 가슴 속을 아리게 파고들었다. 서글픈 마음으로 고향을 생각나게 하고 가슴 속을 눈물로 적시며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지던 날 밤을 떠오르게 했다. 정적에 싸인 깊은 밤의 어둡고 푸른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던 사람의 뒷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고, 두고 온 모든 것들이 한없이 그리워지게 하는 분위기의 밤으로 노랫소리는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어쩌다가 그런 새끼가 우리들 속에 섞여가지구 이런 말썽인지, …….

하고 푸마는 투덜거렸다.

가만히들 있어준다면 아무런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말야.

선임하사는 심란기가 더하는 표정이었다.

말들이 없이 밤은 깊어갔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불안에 휘감기듯 얼굴빛들이 누렇게 떠 있었다. 서로들 막연히 건너다보곤 하면서 막사 밖으로 귀를 기울인 채 까맣게 물든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하였다.

벌판으로는 푸근하면서도 서늘하게 느껴지는 밤기운이 푹 가라앉아 있었다. 까맣고 황막한 어둠 속, 어둠의 미립자들이 차갑게 경련하고 있는 듯한 정적, 그 미망(迷妄)의 은은한 정적 속에서 갈대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가만 비밀스럽게 속삭이듯이 들려오고 있었다. 서걱거리는 갈대 소리는 고요한 어둠의 정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깊고 은밀하게 하고 있었다. 고요한 어둠속의 그런 정적은 마치 힘을 얻어 위로 높이 솟았다가 주위를 감싸면서 서서히 내려앉고 있는 것 같았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한밤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이야기, 밤의 이야기였다.

북쪽의 대남방송에 대응하여 아군의 방송은 코메디언이 북의 빈곤과 남한의 넘치는 풍요로움을 비교하여 재담으로 익살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곧 북쪽의 확성기가 터져 나오면서 더는 알아들을 수 없이 널리 퍼져 왕왕거리는 소리로만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장 소위는 메마른 입술에 까실까실 보풀이 일고 두 눈은 우묵해져 있었다. 그는 마치 공기 부족을 느끼는 사람처럼 곤혹스러운 모습으로 한숨을 깊고 길게 몰아쉬었다. 그나마 방송이라고 들려주던 아군의 흘러간 가요가 끊기고 나자, 북의 대남방송 확성기 소리만이 악머구리 끓듯 소란스럽게 한밤의 고요를 누비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쭉 뻗는 화염이 밤하늘로 비치면서 어느 쪽에선가 굉장한 폭음이 연발했다. 때를 같이하여 콩 볶듯이 요란하게 질타하는 총성이 갈라지면서 칠흙의 정적으로 얼어붙었던 밤을 흔들었다. 순간, 소대장과 선임하사는 몸을 움찔하며 자리를 차고 일어나 창으로 붙었다.

뭡니까, 소대장님?

메기와 말상은 소대장 뒤로 붙으면서 물었다.

상황이 붙은 거다.

선임하사가 대답했다. 모두가 창문으로 붙어 전방의 철책선 능선 쪽을 더듬었다. 철책선이 가로지른 우묵한 능선 너머로는 충천하는 화염이 쭉쭉 뻗고 있었다. 기관총이 드르륵거리고 수류탄이 꽝꽝 작렬하면서 섬광이 번쩍거렸다. 유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폭발한 화염이 미친 듯이 펄럭거렸다. 어둠 속에 하늘 향해 벌거벗고 누운 대지의 사타구니처럼 검은 곡선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능선 너머로는 마지막 해가 기울면서 붉은 놀이 이글이글 탈 때처럼 벌건 화광이 타고 있었다.

상공으로 조명탄이 떠올랐다. 경쾌한 소리로 작렬하는 조명탄은 밤하늘을 내려오면서 대낮같이 하얗게, 창백하게 비추었다. 그 조명탄 불빛은 이쪽까지 비치면서 모든 것의 윤곽을 똑똑히 볼 수 있게 하고, 산의 그림자를 벌판 위에 드리웠다.

무더기로 작렬하는 폭음과 화염과 요란하게 볶아대는 총소리에도 불구하고 다른 철책선 능선 위는 죽은 듯이 고요하고 팽팽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빈틈없이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서 침투하는 적들의 양동작전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렬하던 폭음과 질타하던 총소리가 차츰 뜸해지면서 단발의 총성이 유난히 길게, 그리고 멀리 찢어지는 메아리를 일으키면서 골짜기고 사라지고, 밤하늘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사위어들던 조명탄이 마지막으로 꺼졌다.

별안간 밤보다 더 새까만 어둠이 밀려들면서 산발의 고지와 능선, 골짜기와 벌판을 칠흑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갑자기 고요해진 어둠 속의 긴장된 정적이라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본대와 인접부대로 전화를 걸면서 상황을 알아보던 이 병장이 막 전화기 앞에서 상체를 세웠다.

아군 사격이랍니다.

이 병장은 창에서 돌아서는 소대장을 향해 말했다.

그래?

고개를 갸웃뚱거리고 난 장소위는 한 번 더 확인했다.

정확한가?

, 전방 대대 상황실에도 알아봤습니다.

이 병장은 나무랄 데 없이 명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덜 떨어진 놈이 졸다가 헛것을 봤군.

선임하사가 창가에서 말했다.

인접부대 상황은?

장 소위는 이 병장에게 다시 물었다.

아무 일도 없구요.

이 병장의 대답을 듣고 나서 장 소위는 어떤 안도감에 젖으며 담배를 뽑아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다소 긴장이 풀리는 한숨으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철책선 전방 지근거리로 접근하면서 어리대던 짐승이나 기껏 한 마리 잡았을 테지.

선임하사가 말했다.

예전에 한번은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화력을 퍼부어댔는데, 나중에 보니 설치된 크레모아 안으로 들어와 있던 간첩 한 놈이 그만 그 후폭풍에 그을려 절반쯤 죽어 있었지.

그 소리에 모두들 웃음기를 머금었다.

그거야말로 접싯물에 코 박고라도 죽을 놈이었지.

선임하사는 넋두리같이 말했다.

뚫린 철책선을 긴급 보수하느라고 한창 진땀을 뺄 거야. 그렇게 퍼부어댔으니 온전히 남아 있을 리 없지.

할 수 없죠. 어두운 새벽녘이라도 놈들이 넘어올지 모르니까.

사실 그러했다.

혹시 비무장지대로 들어간 매복조의 접전상황인지도 모르잖아요?

뒤늦게 의아스러운지 오 하사가 말했다. 그 말에 뭔가 신경이거슬리는지 선임하사는 괴로운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문제는 처음부터 햇병아리 신병들을 비무장지대 작업에 투입한데 있어.

선임하사는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말이 안 되는 처사였지. 최전방 편성부대 병력이야 뺄 수 없다 치더라도 어떻게 교육훈련이 채 끝나지도 않은 교육대 신병들에다 조교와 불과 몇 명 차출된 기성병력을 붙여서 비무장지대 작업을 시키나? 인솔하고 들어와 지휘하는 우리들도 임시 인접부대에서 파견된 교관요원, 조교들이 아닌가 말이야.

붉게 핏줄이 올라오는 얼굴로 선임하사는 거침없이 해대었다.]

말이 소대지, 중대병력이 아니냐구. 실제 작업감독 지휘관으로 나왔던 대대 부관은 그날로 숙영지에서 본대로 들어가 버렸구.

그거야 나도 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안전사고 하나 없이 잘해왔잖소.

장 소위는 듣기가 거북한 모습으로 등을 돌리며 말끝을 흐렸다.

만약 매복조 상황이라면 일이 곤란한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 하사는 소대장을 쳐다보았다. 실종된 허봉우 일등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장 소위는 담배만 빨아대었다.

일이 그렇게 되지 않기는 빌어야지. 여기에서 바라보이기는 분명히 철책선 상황이었는데 말이야.

장 소위는 속이 타는지 압술만 빨았다. 선임하사도 제풀에 꺾이듯 어깨가 처지고 있었다. 기나긴 밤은 무섭고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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