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둠이 쌓인 계곡의 숲속은 한치 앞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손으로 어둠을 헤치고, 나뭇가지를 잡아젖히면서 발을 더듬거리고 있었지만 어느 쪽으로도 봉우는 길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한낮에 산발치의 능선이 부드럽고 유순하게 보이던 것과는 달라도 영판 다른 산 속의 지형이었다.

빽빽하게 우거져 들어찬 수목은 몇 길 위로 올라가서 하늘을 차일처럼 뒤덮고 있었고, 골짜기는 교목과 잡관목들이 덩굴줄기에 절어 발을 비집고 들여놓을 수조차 없게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몸을 운신하기조차 곤란했다.

미치겠군.

정말 숨이 막히고 미칠 것만 같았다. 눈앞의 나무숲을 줄곧 헤치고 더듬었지만 거기가 거기였다. 기어오르고 기어올라도 비탈진 언덕과 나무숲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어느 쪽으로나 벼랑이고 험난한 골짜기, 바위너설과 뒤엉킨 가시나무숲이었다. 더듬거리며 내디디는 발은 수시로 몸을 허공으로 붕 띄워 올리며 썩은 낙엽더미 속으로 푹 빠지고, 그 다음엔 엎어지고 거꾸러지고...... 가파른 언덕의 바위옹두라지에 짓찧이고 찢기면서 봉우는 비탈을 뒹굴었다. 움푹한 데로 빠지고 굴러 떨어지면서 이마와 가슴을 짓찧고, 정강이와 무릎은 깨어지고, 나뭇가지가 사정없이 얼굴을 후려갈겼다. 묵은 가시철조망이 걸리면서 사뭇 생살을 찢었다. 몸은 벌써 녹초가 되어 있었다.

후우~」

지친 한숨을 내쉬며 봉우는 사위를 둘러보았다. 어디가 어디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옹위하듯 에워싸며 위압적으로 덮어 누르고 있는 까만 어둠뿐이었고 어둠은 너무 농밀해서, 마치 진하디 진한 먹물 속에 깊이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빛의 근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죽음의 구렁텅이로군.

그는 널브러졌다. 허우적거리면서 땀에 흠씬 젖었던 몸이 차가워진 밤공기에 식어 내리고 있었다. 선득선득 한기가 들었다. 입에선 메마른 침이 끈적거리고 쓰디쓴 단내를 풍겼다.

몸은 곳곳이 쓰라렸다. 철모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뒹굴며 어떤 골짜기로 처박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총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만저만한 실수가 아니었다. 본대로 돌아가면 영창 감이었다. 정신이 아뜩하게 머리를 바윗돌에 짓찧고 녹슨 철조망자락에 생살을 찢기면서까지 죽도록 움켜쥐고 끌어안고 하였건만, 한번 느닷없이 비탈 아래구덩이로 곤두박이를 치면서 무의식적으로 소총을 내던진 모양인데, 아무리 허둥대며 더듬고 찾아보아도 손에 잡히는 것은 썩은 삭정이도막 뿐이었다. 가장 난감하고 엄청난 일이었지만 그런 생명 같은 소총마저도 그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암담했다. 희미하게 별빛의 여명이라도 번져 있는 하늘 한 조각이라도 보았으면 살 것 같았다. 도대체 빛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까만 장막의 어둠 속 곳곳에는 음험한 야차가 도사리고 있고 그 날카롭고 앙상한 뼈마디의 갈퀴손이 금방이라도 덜미를 나꿔채어 끌어당길 것만 같았다. 적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면 곧 칼을 들이대며 덤벼들어 심장을 찔러 댈 것만 같았다. 오싹거리는 긴장이 꼼짝할 수 없도록 자꾸만 몸을 얼어붙게 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딜까?

하늘 한 조각이라도 볼 수 있는 데로 올라가야만 했다. 불가능했다. 빼곡한 수목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몸을 돌렸다. 발을 더듬어 내딛었다. 아까는 푹 빠지더니 이번엔 쑥 위로 올라온 둔덕이었다. 다시금 빠져나가려고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헤쳤다. 몸을 들이밀자, 덩굴줄기가 목에 걸리며 휘감았다.

몸을 돌렸다. 아름목이 머리에 받치고 튀어나온 뿌다구니가 이마를 찔렀다. 옹이에 눈을 찔리고 관자놀이를 할퀴었다. 이런 때는 성대(聲帶)로 초음파를 발사하여 그것의 반사를 귀로 듣고 물체를 식별하는 박쥐였으면 하고 그는 간절히 생각했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그는 잠시 숨을 돌렸다. 이마로 미지근하게 흘러내리는 게 있었다. 끈적끈적했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대단치는 않았다.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 그는 허리의 수통을 뽑아 들었다. 거의 비어 있고, 바닥으로 남은 물이 가벼운 소리로 찰랑거렸다. 간신히 목을 축이고 나서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옹골차게 먹었다.

무서울 거 없어.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용기를 북돋우고 일어났다.

앞은 보이지 않았다. 산 속의 어둠이 이렇게 끝을 알 수 없이 깊고 무시무시한 것일 줄은 미처 몰랐다. 계속 머리끝이 곤두섰다.

정신을 차려야 해,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침착하려고 애썼다. 돌덩이 하나가 위에서 굴러 내리면서 몹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등골이 오싹하면서 몸이 쪽 얼어들어왔다. 조그만 산짐승이 지나간 모양이었다. 이내 잠잠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을, 하고 그는 생각하면서 움푹한 곳의 둥그스름한 바위에 몸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푹신거리며 두툼하게 깔린 낙엽이 부드럽고 제법 안온한 감을 주었다. 몸을 도사리고 들어앉았다.

푹신거리는 낙엽이 주는 보드라움과 은신처같이 움푹한 곳의 아늑함이 주는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신경은 더욱 날카롭게 되어 어둠 속의 무시무시한 공포가 엄습했다. 어쩔 수 없이 두려움 때문에 선택한 방법은 오히려 올가미가 되고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이 되어 움쭉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새까만 사위의 어둠 속에서 소리없이 두억시니의 갈퀴손이 내미는 것 같은 느낌이 척추를 따라 몇 번이고 훑어 내렸다. 부주의로 건드리는 나뭇잎의 부스럭거림에도 머리끝이 쭈뼛 솟아올라 그는 송골송골 온몸을 적시며 배어난 식은땀이 흘러내리곤 했다. 무엇 하나 위안을 주며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이곳엔 들어오질 말았어야 했어......

그는 후회했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던 행위였으며 이런 상황이 닥쳐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다시는 부대를 이탈하지 말아야지.

아군지역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들었다. 한데 몸은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오슬오슬 추운 것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짓눌리면서 도망칠 수 없다는 공포의 무력감 속으로만 자꾸 빠져들고 있었다.

완전히 도살장이로군.

하고 그는 속으로 뇌었다. 도살장은 그래도 질서가 정연했다. 단칼에 죽이고 피를 뽑고 내장을 꺼내고...... 이건 사람을 공포의 고문으로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피를 졸이며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맥박이 뛰는 몸뚱이는 산산조각이 나고...... 널브러진 채 그는 생각했다.

전방 우리 소대까지 전입 온 것을 우선 환영한다.

내무반장 오 하사는 반합 뚜껑에 막걸리를 따랐다.

군대생활을 할 바엔 후방에서 흐느적거리는 것보다 놈들의 쌍판때기라도 볼 수 있는 데가 낫지요.

푸마는 차라리 좋다는 듯 걸쩍거리며 시원스럽게 잔을 비웠다. 몇 년째 대학입시 재수를 하며 건들거리다가 입대한 친구였다.

나는 일찍 간첩이나 한 놈 잡아가지고 포상휴가나 갔으면 좋겠습니다.

푸마는 패기만만했다.

이 자아식아, 간첩이 어디 눈에다 명태껍질 붙이고 넘어오는 줄 알아?

이 병장의 해부치는 소리에 전입된 신병들은 키들거리고 웃었다. 오 하사는 전방의 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놈들의 도발로 비무장지대는 이제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중무장지대라고 해도 좋아.

오 하사는 상등병 때 장기복무를 지원한 말뚝이었다. 그는 군인으로서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전방에서의 모든 것이 하나의 인상화 된 거의 낭만적인 색채까지 띠고 있었다.

반합 뚜껑에 막걸리로 환영을 받던 신병으로서의 전입, 풋과일처럼 아직 풋풋한 냄새가 풍기던 사관학교 출신의 신임 소위와 월남전 참전 이래 전방의 지역장비처람 인수인계되면서 남아 있는 빈대마스크 선임하사......

봉우는 힘 하나 없이 전율하던 공포가 차츰 환상적인 것들로 바뀌었다.

숙영지의 벌판으로 미끄러지며 보랏빛으로 물들던 황혼. 지빠귀 한 마리가 어느 숲속에서 울던 초저녁, 가만가만 나부끼던 갈대의 서걱거리던 속삭임과 별들의 소리없는 음악같은 속삭임, 젖어들던 푸른 달빛의 우수. 차라리 이런 생각들이야말로 전율하는 공포를 한결 죽이면서 마음을 차분한 진정으로 이끌어주었다. 평화롭던 아침나절의 정경들이 계속해서 떠올라왔다.

어떤가, 철책선 너머 확 트인 비무장지대와 북녘땅이?

숙영지 막사를 출발하여 땀이 밴 몸으로 철책선 능선 위에 올라섰을 때, 세상은 온통 평화였다. 선임하사는 이어서 말했다.

세계의 온 평화가 다 여기에 있지.

장엄한 산세로 녹음이 덮여 수려한 봉우리와 봉우리들, 그 사이로 떨어지는 계곡과 계곡, 푸른 녹색의 나무숲들이 우아한 능선은 저마다 부드럽고 유순한데, 아직 골짜기로 걷히지 않은 안개를 바라보며 그는 모든 군사지식과 사상적 편견 따위는 마치 그 동안 걸치고 있던 남루한 누더기처럼 벗어던지고 싶었다.

능선과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작전도로와 녹음이 헐벗겨진 고지는 움직이는 병사 하나 없이 비어 있고, 적정은 더욱이 고요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단꿈을 꾸듯 깊은 늦잠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마치도 광녀의 악다구니처럼 수다스럽게 지껄이며 떠들어대던 고성능 확성기의 소음 속에서 타는 눈으로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운 긴장의 한밤을 보내고 난 뒤, 이제 초병들은 녹초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없이 잠든 평화, 살육을 꿈꾸는 음흉한 평화였다.

적 지피는 군사분계선이 가로지르고 있는 계곡의 저편 우뚝한 고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초소는 마치 야전의 유개호(有蓋壕)처럼 고지의 후사면으로 낮은 평면 지붕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옆으로 이만큼 튀어나와 있는 사각의 대남선전 확성기탑은 무슨 비밀이라도 간직되어 있는 상자처럼 유령 같은 침묵이 드리워져 있었다.

붉은 황토 빛으로 허물어진 초소 주위 언덕의 입간판과 커다란 흰 글발들이 육안으로 들어왔다.

 

<주체조선. 조국은 하나다. 김일성 원수 만세.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 월북환영.>

 

지피 저 뒤편 듬직한 산발로 드리워진 푸른 능선을 따라 고지와 고지가 솟아오르고 산줄기가 혈맥처럼 줄기차게 뻗어 있었다. 푸른 능선과 고지를 돌아가며 띠를 두르듯 이어진 길이 비무장지대 북쪽의 북방한계선이었다. 그 능선의 외가닥 길이 이어져나가면서 고지와 고지 위를 감돌아 넘어가는 길엔 적막이 쌓인 채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질 않고 있었다.

짙은 녹음만이 가득 채워진 이 아래고 산허리와 벌판을 가르면서 이어져나가는 길이 남북 간의 중앙 군사분계선이었다. 거기에서 북쪽에 솟아오른 고지에 철책이 둘려 있는 아군의 지피는 초소 꼭대기로 유엔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가느다란 깃대로 솟아 맑게 퍼진 햇발 속에 펄럭이며 깃폭이 날고 있었다.

북방한계선 저 너머로 자리를 잡고 있는 북녘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지, 사람의 움직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래전에 비어버린 마을처럼 회색빛을 띠고 쓸쓸한 고적감이 감돌고 있었다.

평화였다. 마냥 평화였다. 어디에도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살벌한 적의와 음험한 야욕은 깃들어 있지 아니했다.

그게 아니었다. 겉보기와는 달랐다. 땅 속으로 도사리고 있는 것이었다. 땅 속으로 파고들어간 엄폐호와 철근콘크리트 벙커 속에 의혹에 찬 적의가 숨쉬고, 잔인한 음모가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서서히 마법으로 되살아나듯이, 녹초가 되어 늦잠에 빠져있던 병정들이 깨어나면 잠적하던 고지와 능선은 그때부터 번거로워지는 것이었다.

쓸쓸하게 차분히 가라앉았던 능선의 질펀한 작전도로는 보급차량의 엔진이 터지며 뽀얀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능 마당에선 벙커 밖으로 나온 병사들의 체력을 다지며 강인함을 기르는 함성이 울려 퍼지고, 그들의 손에선 밤새 이슬에 젖은 총기가 철커덕거리고 작동이 잘 되도록 윤활유가 번들거리며 햇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날 것이다. 밤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다시 한밤은 눈 끝에 적의가 타는 전선이요, 숨 막히게 철책선 너머를 바라보며 긴장하는 하나의 새장이 되는 것이다.

뻐꾹 뻐 벅꾹......

나무 숲속에선 뻐꾸기가 울고 있었다. 유난히 처량했다. 뻐꾸기의 울음소리에서 봉우는 고향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하늘 아래로 쪽빛 산줄기가 아득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뻐꾹 뻐꾹 뻐 벅꾹......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외롭고 애달팠다. 뻐꾸기 울음소리의 진원지는 저편 북쪽의 고요하게 햇빛이 반짝이는 녹음 속이었다. 봉우는 문득 고향마을 앞으로 하얀 고갯길이 나 있는 말무덤고개의 마령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말무덤고개는 삼국시대에 백제와 산라가 국경을 두고 치열하게 격전을 벌이며 싸우던 곳이었다. 그런 싸움 속에 수도 없는 말들이 죽어서 묻힌 고개가 되었다는 전설로서 지금도 궂은 날이면 말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곤 한다는 고개였다.

벌써 햇빛은 나른하게 퍼지고 능선과 골짜기, 개활지의 숲들은 접적지역의 긴장감이 주는 적막 속에 한층 나른해 보였다. 아니, 더욱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싱그럽게 숨쉬고, 새들이 날고 있었다. 자 로운 생명의 신비가 주는 자연의 환희였다. 새들의 자유를......

저 아래 갈대밭 사이로 빤하게 나 있는 길이 월정리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철길노반이야.

병력을 인솔하고 능선으로 올라온 선임하사가 말했다. 신병들이 선임하사 주위로 몰려들었다.

지금쯤 전철이 달린다면 아주 멋있을 텐데......

철책선 능선 후방의 산자락 발치로 자리잡고 있는 막사 앞의 벌판으로 잡초와 갈대가 조금 헤쳐진 곳은 역사(驛舍)가 있던 그 빈터였다. 거기에는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가 보였고, 잘려나간 철길노반이 길게 남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성한 갈대밭을 끼고 흐르는 시내의 산모퉁이 암반 계곡은 벌겋게 녹이 슬었지만 철교가 여전히 성성한 제 모습으로 가로 얹혀져 있었다.

저 철길의 다음 역은 평강이지. 바로 놈들의 북방한계선 너머 골짜기라구.

선임하사의 거먕빛 넓적한 얼굴에는 고참 군인의 어떤 회한 같은 것이 잔잔한 파문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신병들은 땀이 가신 얼굴로 앞 뒤 산하를 두루 굽어보아가며 접적지역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철책선은 두루마리 원형 가시철조망을 높직이 머리에 얹은 채 고지를 두르며 능선을 따라 기어 올라가고, 골짜기로 빠졌다가 다시 벌판을 건너서 붉게 헐벗겨진 산허리의 능선을 따라 끝도 없이 굽이치고 있었다. 벌판은 수로(水路)와 콘크리트 장벽이었다.

비무장지대는 북쪽의 가로질러 나가는 북방한계선까지 직선거리가 얼마나 될까 하고 봉우는 생각해보았다. 판문점 휴전협정 당시의 문서에 첨부된 지도에 의거, 남북 쌍방이 각각 2킬로미터씩 물러나 비무장지대는 직경 4킬로미터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편으로 휘움하게 들어간 골짜기의 가파른 능선에선 그보다 훨씬 거 먼 거리일 것 같았다. 전방 비무장지대 복판으로 나아간 아군 지피에서는 불과 5,6백 미터? 소총사거리, 충분한 기관총의 유효사거리였다. 크게 소리 질러 말하면 얼마든지 대화도 가능할 법했다.

봉우는 군대에 와서 모든 것이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행동하고 나무랄 데 없는 부동자세 하나가 전부인 것처럼 수동적이고 피상적이었지만 비무장지대에서만은 모든 것이 직접적이었다. 낱낱이 눈을 의심케 하고, 피부를 자극했으며, 귓속으로 매끄럽고 날카롭게 꽂혀들고 가슴에 전류처럼 흐르면서 전이되는 무엇인가 절실한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것들이라기보다 이마 오래 전부터 호흡 속에, 순환하는 피 속에 있었던 것 들이었다.

민족의 비애가 다 여기에 있지.

소대장은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면서 철책선 출입문 앞으로 바투 다가섰다. 철책선 관할부대의 안내자가 소대장 앞으로 나서면서 출입문의 빗장에 쇠불알같이 매달린 육중한 자물통을 거머쥐고 들어올렸다. 신병들은 벌써부터 입을 다물고 숨을 죽였다.

철커덕 하는 소리가 서늘하게 주위를 제압했다. 철책선 경계부대에서 나온 안내자는 열린 출입문 안으로 길을 따라 들어가 가설된 조명지뢰와 세열수류탄 부비트렙의 머리카락같이 가느다란 연계철선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들어갈 작업병력의 진입로를 열어주었다.

이제부터 허락없이 불필요한 개인행동은 일체 삼가라.

철책선 안으로 들어선 소대장은 돌아서서 엄명을 하달하였다. 뒤를 받아 선임하사는 재차 신병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모든 것은 지시대로 이행하고 대열을 이탈하지 마라.

신병들은 갑자기 숨소리를 죽이고 굳어오는 얼굴이 노래졌다. 지뢰 탐지조를 선두로 해서 소대장이 앞장을 섰다. 소대장 뒤로는 무전병이 붙었다. 오 하사와 무 병장이 들어서고, 단독군장에 작업도구로 도끼와 1,2인용 톱을 멘 작업병력의 본대가 차례를 지어 종대로 따라 들어섰다. 서너 마리의 뻐꾸기 울음소리가 비무장지대를 채우고 있었다.

비무장지대로 들어서서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작업지역은 산세가 웅장했다. 갈라지고 겹치는 능선과 계곡으로 천연림을 이루어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뻗어 내려간 군사분계선께의 능선 발치는 개활지를 깔면서 자름 자름한 봉우리들을 여러 개 거느리고 있었다.

동쪽과 서북쪽으로 나무숲이 들어찬 산발들이 가로질러 교차하면서 계곡과 계곡으로 떨어지듯 깊이 빠져들어가고, 본줄기들은 남북으로 각각 치솟아 올라가고 있었다. 굽어보는 고지들은 저마다 의젓하고 위엄차 보였다.

잡목들이 좀 성기게 들어찬 능선을 따라 들어서던 작업병력은 진로를 새롭게 만들어나갔다. 아군의 지피가 우전방 동쪽으로 비스듬히 비끼고 있었다. 거기에서 다시 동북쪽으로 북한의 천연적인 요새를 이루고 있는 장엄한 고지가 보였다. 그리고 남북으로 연한 벌판이 아득했다.

들어찬 교목들이 차츰 굵어지기 시작하고 활엽수들이 머리 위로 올라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산짐승의 길목같이 보이는 데는 녹이 슨 수류탄이 부비트렙으로 나무에 걸려 있었다. 언제 설치한지 모를 것들이었다. 대인지뢰도 속에 장약이 없는 빈껍데기만 땅 위로 튀어나와 뒹굴고 있었다. 산불이 나기도 했던지, 가지는 타고 없는 줄기와 등걸이 거무스레하게 땅에서 내미는 손처럼 보이도록 서 있었다. 병력은 일렬로 늘어서서 천천히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지뢰탐지조가 자주 병력의 전진을 지연시키면서 머뭇거렸다. 멈춰서 있던 대열에서 누군가가 선임하사에게 물었다.

저런 건 무슨 구덩이죠?

사람이 파놓은 듯이 움푹움푹 패여 들어간 구덩이들이 메기는 더욱이나 이상스러운 모양이었다.

예전에 전투하던 기관총진지다. 탄피가 가마니로 나왔지.

선임하사는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잘 봐. 지형이 어떤 덴가.

민틋하게 올라온 둔덕으로 움푹하게 들어간 구덩이에는 묵은 낙엽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알량한 옛날 지휘관님네들이 파먹었지. 부하들을 혹사시키면서. 소위 후생사업이라고 불리는 착복으로 숯까지 구워먹던 시절에 말이야.

말을 하고나서 선임하사는 잇새로 침을 찍 내갈겼다.

여기에서만 육이오 전쟁 3년 동안 2년을 싸웠어. 그러니 기관총진지라면 탄피가 가마니로 안 나오겠나. 휴전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는 동안 피아간 24번씩이나 뺏고 빼앗기는 혈전을 치른 백마고지,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면 알 만할 것 아닌가.

선임하사는 내친 김에 말을 계속 이었다.

너무도 상상할 수 없이 많은 피를 뿌렸지. 그게 남북이 치른 육이오 동족상쟁이었어.

병력은 전진하면서 능선을 내려서고 있었다. 해묵은 낙엽들이 드텁게 쌓여 있었다. 굵어지는 소나무와 낙엽송, 이깔나무, 굴참나무, 쥐엄나무, 전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매끈매끈한 오리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북에서 뿌려진 전단들이 사방으로 희끗희끗 널려 있고, 오래 된 것들은 낙엽더미 속에서 싯누렇게 바래며 썩어가고 있었다. 병력은 쉽사리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자주 지칫거렸다.

지뢰탐지조가 멈칫거렸다. 이 병장은 지뢰탐지기를 한쪽으로 살그머니 젖혀놓고 쌓인 낙엽더미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소대장과 오 하사는 곁에서 짜증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눈엔 긴장이 어려 있었다. 낙엽더미를 헤쳐 들어가던 이 병장은 잠시 만에 썩은 부토 속에서 시꺼멓게 부식된 파편 쪼가리 하나를 손끝으로 집어들었다.

역시 그렇군.

소대장은 긴장을 풀며 화가 나는 소리를 했다.

지뢰탐지기 치워!

맞아요. 지뢰탐지기 따위는 아무 쓸모없겠습니다.

오 하사가 곁에서 말했다. 온통 자잘하게 깔린 파편 쪼가리와 탄피들이었다. 두텁게 쌓인 해묵은 낙엽 때문에 지뢰탐지기도 말을 듣지 않았다.

저리 비켜!

소대장은 냉큼 이 병장의 지뢰탐지기를 집어 치워버리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쌓인 낙엽들이 푸석푸석 밟히고 있었다.

안 됩니다, 소대장님!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하나가 기겁을 하고 소리쳤다.

지뢰탐지기를 믿다간 작업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못하겠다.

조심스럽게 몇 발짝을 내디디며 걸어 들어가다가 소대장은 저만치에서 숫제 뭐든 밟혀 터지려면 터지라는 듯이 배짱 좋게 나무숲 속을 휘젓고 다녔다. 조마조마했다.

아무 일이 없었다. 지켜보던 오 하사와 선임하사가 대범하게 뒤를 따라 나갔다. 아슬아슬하게 지켜보고 있던 병력들이 마침내 마음을 놓고 줄지어 서 있던 대열을 이탈하면서 앞으로 다투어 나아갔다.

봉우는 혼자 우려하고 있었다. 만약 운수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불행을 지니고 있기라도 하다면 몇 십 년 전의 꼭두각시놀음에 빠져서 육신이 포화에 절단이 나고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가 살점이 흩어져 죽은 원혼의 악령들이 되살아나듯 땅에서 유령처럼 돋아난 지뢰의 뾰족한 뇌관을 밟아 그 순간 건강한 혈관에서 강하게 맥박치고 있는 단 하나의 생명은 영원히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그는 기슭도리는 향해 내려섰다. 굵은 아름목들이 빼곡히 들어차고 나무숲 속엔 자우룩이 어둠이 고여 있었다. 미추룸하게 매끄러운 목피로 뻗어 올라간 아름목들은 하늘을 찌르고, 폭신거리며 밑에서부터 썩어 올라오는 낙엽더미 속으로 발목이 푹푹 빠져 들어갔다. 그러나 발바닥으로 지뢰의 뇌관이 밟히며 독 폭발해버릴 것만 같은 예감이 간을 바짝바짝 오그라들게 하였다.

완만한 구릉지로 내려갈수록 나무들은 더 아름목이 되고 사이사이에 섞인 이깔나무와 참나무들이 우람찼다. 밋밋하다 싶은 골짜기의 구릉지 쪽으로 갈대와 억새풀 같은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지고, 거기엔 또 넓적넓적한 돌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매초롬한 윤기로 잎이 피고 가지가 뻗은 오리나무와 참나무가 서있는 사이로 뜻밖에도 밀생하듯 섞여 있는 감나무도 둥그렇게 퍼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문득 봉우는 예전에 마을이 있었던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억새풀과 잡초가 무성한 곳으로 그는 다가갔다. 집터의 윤곽들이 두드러져 있었다.

괜한 호기심으로 그는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며 둘러보았다. 깨진 무쇠화로가 흙 속에 파묻혀 있었다. 벌겋게 녹이 슨 인두자루도 부러져 그 앞에 있었다. 썩어가는 여자의 검은 고무신 한 짝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저만치 우부룩한 맨드라미 숲가엔 빈 포탄 깍지가 뒹굴고 있었다. 포진지가 되기도 했던 것 같았다. 개울 쪽의 높직하게 위로 올라간 호도나무 가지에선 산비둘기가 날았다.

한쪽에선 널린 전단을 주워들고 둘러서 있는 친구들이 그걸 펴보면서 재미스럽게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도 널려 있는 전단 한 장을 집어들었다.

< 미제 침략자놈들을 처죽이자! >

용감한 인민군의 총검에 무참히 가슴이 꿰뚫리는 양키의 가슴에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양키는 혀가 쑥 빠지면서 동그랗게 혼이 나가 두 눈이 까뒤집혀 모자가 위로 붕 떠오르고 있었다.

< 양키는 물러가라! >

비닐봉지에 잘 넣어진 소책자들은 주체사상 학습서들이었다. 한 권의 표지엔 포플린 천 같은 화사한 색상의 한복차림에 양산을 받쳐 든 여인과 남색제복을 흰 셔츠로 받쳐 입고 까만 단발머리에 붉은 진달래꽃을 비껴 꽂은 예쁘장한 소녀애가 가운데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한 가족이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반소매 횐 남방으로 노동모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다정하고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보도블록이 잘 깔린 공원을 걷고 있었다. 깨끗하고 조용한 거리였다. 그들이 거니는 앞으로 수양버들이 싱그럽게 휘늘어져 있고, 그들 뒤로는 김일성 동상이 우뚝 솟아 있었다. 대동강 변 모란공원 일각이었다. 밑에는 <공원을 산책하는 인민가족>이라는 사진 설명이 있었다. 다른 또 한 권에는 협동농장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멀리 배경에는 산뜻한 푸른색 지붕의 공동주택이 보였고, 경지정리가 잘 된 들판에는 트랙터와 짐바리가 긴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촌스럽다.

말상이 인민가족을 보고 말했다.

순수하지, 무얼 그래.

조영재가 대꾸했다.

남한의 육십 연대쯤 같아요.

신병이 하나 끼어들었다.

까불지 마, 자식아. 몰라서 그렇지 북한은 네가 말하는 육십 연대 초반에 평양 시내에다 지하로 백 미터를 넘게 내려가는 전철을 놓았다는 사실을 알아야지. 트랙터도 사실이야. 북한은 처음부터 줄곧 중농정책을 쓰고 있단 말이야.

말상은 뭘 아는 것처럼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일지 모르겠네. 북한은 산지가 많고 평야가 적잖아. 식량을 자급하려면 어쩔 수 없는 정책이겠지.

허우대는 이해가 간다는 듯이 덧붙였다.

식량이 부족한 건 여전하지. 김일성은 이팝에 고깃숙 소리를 물개똥 설사처럼 되풀이해서 지껄여대고 인민들은 지금도 한 줌 강냉이죽으로 연명한단 말이야.

선임하사가 뒤에서 말했다.

우리가 세련됐다고 생각한 건 미제 껌을 얻어 씹으면서부터였지. 그렇잖아?

하고 조영재는 메기와 허우대를 보았다. 그때였다.

전투개시다!

느닷없이 선임하사가 외쳤다. 이제부터 작업을 시작하라는 소리였다. 선임하사는 모든 일을 전투와 결부시켰다. 그게 군인이라는 것이었다.

경계조를 편성한다. 조교요원이었던 멤버는 신병들 작업을 지휘하고 파견된 기성병력과 신병들 중에서 눈알이 똑바로 박힌 놈들을 차출한다.

작업지역에서 전방에 추진 배치될 경계조는 3명씩 2개조로 편성되었다. 고참병 둘에 신병이 한 명씩이었다. 작업현장 경계는 작업이 곤란한 환자들로 별도 편성해서 배치했다.

작업병력은 아름목들이 들어찬 산판의 하단 기슭도리를 감싸고 돌았다. 분대단위로 해서 벌목잡업은 21조가 되었다.

신병들은 행동이 자유스럽게 풀리면서 갑자기 철부지 애들이 된 것처럼 들뜬 기분으로 방만해지고 있었다. 소대장은 고참병들을 불러 모아놓고 신병들을 철저히 감독하면서 작업에 임하도록 각별히 지시를 내렸다. 작업이 개시된 곳곳에서는 아름목을 쿵쿵 도끼로 찍어대는 소리와 슬근거리는 톱질소리가 산 속을 울리고 있었다.

벌목작업은 힘들여 아름목의 밑둥을 찍어 넘어뜨릴 필요가 없었다. 재목으로 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목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렇게나 찍어 베어넘겼다가 오뉴월의 쏟아지는 햇볕에 시들부들 말랐을 때 불을 질러 태워버리면 그만인, 한낱 시계청소에 불과한 작업이었다. 그러므로 적당히 편한 대로 서서 나무는 중도막 쯤을 찍거나 베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봉우는 말상과 한조가 되어 아름목을 가운데 두고 도끼질을 했다.

이봐, 잘 좀 찍으란 말야.

말상이 핀잔했다. 정작 도끼질을 제대로 해야 할 쪽은 제 놈이라고 봉우는 생각하고 있었다.

뭘 좀 알고 하는 소리야?

도끼질은 이를테면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행랑채 머슴 놈의 허드렛일에 속하는 것이었다. 봉우는 어릴 적에 아버지가 머슴살이를 하던 과수원 주인집의 장작을 패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자기는 아버지가 패놓은 과수목 장작을 주인집의 나뭇광으로 날라다 차곡차곡 쌓아놓는 일을 했었다.

말상은 한번 신경질적인 핀잔을 하고나서 힘든 도끼질로 비질비질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무딘 도끼날은 먹히질 않고 나무의 탄력으로 퉁퉁 튕겨져 올라왔다. 그의 기름한 얼굴에는 벌겋게 핏기가 올라와 있었다.

잘 봐..

봉우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무딘 도끼날이 생나무 속껍질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아귀에 자루를 단단히 거머쥐었다. 그리고 손목에 힘을 넣었다. 이번엔 부드럽게 허리를 돌리면서 냅다 도끼를 비스듬히 위로 올려 찍었다. 도끼가 먹히는 순간 손아귀의 힘을 풀어 반동의 충격을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세찬 반동으로 손아귀가 터지고, 손목의 뼈가 부서지고, 전신의 뼈마디가 어긋나는 고통을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금세 손바닥은 부풀어 올라 물집이 생기고 쓰라리게 터져서 사뭇 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말상이 이번엔 도끼를 휘둘러 위에서 내리찍었다. 밑에서 깊이 먹힌 터라 도끼밥은 아주 가볍게 튀어 오르면서 멀리까지 흩어져 날았다.

도끼질은 점차 요령이 붙고 세련되어져 갔다. 여기저기서 장단을 맞추며 나무를 베고 찍는 구호 소리가 올라왔다.

초전!

!

박살!

!

아름목이 몸서리를 쳤다. 살진 허연 육질을 난자당하면서 신음을 하고 있었다. 아마 소리칠 수 있는 생명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울부짖을 것이었다. 이 잔인무도한 백정들아!

초전!

!

박살!

!

조영재 쪽으로 푸마가 끼어들었다.

, 나무를 찍는 게 뭐 그따위야!

푸마는 얼굴이 험악해지더니 양볼이 씰룩거렸다. 그는 조영재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아 들었다. 그는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내리찍으면서 시범을 보였다. 맞은편에 서 있던 메기와 허우대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푸마의 도끼질은 유능한 조교의 솜씨에 못지않았다.

초전!

큰 소리로 외치면서 푸마는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내리찍는 시범을 보였다.

봤나? 도끼질은 이렇게 하는 거다.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사격술을 익힐 때 소총의 방아쇠를 부드럽게, 애인의 유방을 만지듯이 쏘라고 했지만 이건 벼락 치듯 내리찍어야 해.

푸마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제자리로 돌아섰다. 작업은 계속되었다.

나발!

!

말상은 푸마가 간섭하던 조영재 쪽에서 눈길을 거두고 도끼를 세차게 휘둘러 나무를 찍었다.

부네!

봉우는 말상이 외치는 소리 쪽으로 장단을 맞추었다.

!

하고 먹혀들어가는 도끼날 끝으로 !’하고 금속이 걸렸다.

뭐야, 이건?

봉우는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보나마나 파편이지.

하면서 말상은 위에서 나무를 내리찍었다. 도끼밥이 튀어나가면서 나무의 뿌연 육질 속으로 변하지도 않은 샛노란 총알이 박혀 있었다. 총알엔 도끼날 자국이 나 있었다.

이래서 전방 나무는 아무리 아름목으로 미끈해도 쓸모없는 화목이야.

실속없이 뿌연 속살로 피둥피둥 살만 쪄 있는 거지.

수많은 주검들의 피와 살을 거름으로 먹고 자랐으니 봉우는 나무들이 얼마나 기름진 자양분으로 기세 좋게 잘 자랐으랴 싶었다. 말상은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다음 나무로 돌아섰다.

나무는 절반쯤씩만 찍어놓고 베어놓으면 되는 것이었다. 톱질패들과 함께 그렇게 베고 도끼로 찍어놓으면서 위로 올라가 나중에 산판 날망에서 큰 아름목 하나를 베어 넘어뜨리면 뻗은 아퀴가지로 뒤엉키어 있는 나무들이 아래로 덮치면서 그 가중되는 힘을 받아 연쇄적으로 휩쓸려 쓸어 넘어지는, 그야말로 장관을 보이게 되는 것이었다.

아름목을 쿵쿵 찍어대는 도끼질 소리도 그렇지만 사방에서 슬근거리는 톱질 소리가 또한 산 속을 장황하게 울리고 있었다. 마치 산 전체가 거대한 공룡의 몸으로 뒤틀며 우웅우웅 괴로운 신열로 달아올라 신음하고 있는 것처럼 울고 있었다. 싱그럽고 부드럽게 숨 쉬며 순수한 생명으로 설레는 것 같던 나무들이 난도질당하는 죽음 앞에 떨며 울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산 저 골짜기로 쩌렁쩌렁 울리며 비명으로 울부짖듯이, 하소연 하듯이, 울려 퍼지는 메아리를 동반하여 산울음을 짓고 있었다.

만약 산신령이 노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봉우는 별 부질없는 생각을 다 했다. 말상은 마치 자라나는 구슬 같이 굵은 땀방울을 이마에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도막을 내라.

오하사의 거쿨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우대 쪽이었다. 맞은편의 안경잡이는 한숨으로 몸의 힘을 빼면서 죽었구나 싶은 얼굴을 하고 오 하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 하사가 말했다.

여덟 자로 잘라도 좋겠다. 너희 분대는 오전에 그놈 하나면 되겠어.

오하사는 낯짝에 조그맣게 붙은 개코를 쓱 문질렀다. 그는 나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는 중도막이 미끈하니 여덟 자가 실해 보였다. 안경잡이와 맞붙어 있던 허우대는 맥이 탁 풀리는 몰골로 목줄기의 땀을 훔치며 쉬고 보자는 듯이 그만 털썩 주저앉았다.

목도운반을 해야 할 판이었다. 여덟 자짜리 아름목을 메고 고지를 향해 비탈진 능선 산판을 기어오르자면 비지똥을 싸야 할 일이었다. 퍼더버리고 주저앉아서 오 하사를 올려다보는 허우대의 땀이 밴 얼굴은 평소 고참병들 앞에 기죽은 일등병의 표정이 아니었다. 감정이 폭발할 것처럼 양볼이 부풀어 오르고 눈은 써늘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모든 것을 체념하듯 얼굴에 힘이 없어졌다.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그의 턱에서 낙수처럼 지고 있었다.

복없는 가시내는 봉놋방에 가 누워도 고자 곁에 눕는다더니, 정말 더럽게 걸렸지.

군대에서 상하는 무조건 복명관계다. 좆으로 밤송일 까라면 까는거야.

말상이 허우대 쪽으로 말했다.

밑구멍으로 침상의 못을 빼라면 빼는 거지.

비위가 터지는 소리로 허우대는 응수했다. 그 말을 듣더니 말상은 뭐가 생각나는 게 있는지, 씨익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너희들 버틀쇼라는 말 들어봤어? 여자가 밑구멍으로 병마개를 따는 거 말야.

짜샤, 병마개 따는 버틀쇼 쯤은 기본이야. 바나나쇼, 뱀쇼, 홀딱쇼, 그 정도라면 침상의 못을 못 뺄 것도 없지.

한술 더 떠서 허우대는 까놓고 떠들어댔다.

거기에 물리면 좆이 남아나질 않겠네.

조금 입이 벌어져 귀가 솔깃하게 듣고 있던 신병 하나가 거들었다.

잘근잘근 씹어 먹겠지.

말상은 웃지도 않고 말했다.

개침 흘리게 하지 마라.

밑에서 올려다보던 메기가 말했다.

명령을 개소리로 들었나? 어차피 돗내기(도급제).

조영재는 톱을 집어들고 일어났다. 산판으로 나무들이 쓰러져 깔리기 전에 우선 나무도막을 윗능선으로 목도운반을 해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분대로 편성된 친구들 중에 두엇은 준비해온 목돗줄을 들고 왔다. 한편에선 목돗줄을 꿰어 뒷덜미로 멜 나무를 골라잡고 잔가지를 다듬었다. 그 사이에 톱질로 나무 중도막을 잘라낸 안경잡이와 허우대는 함께 운반목을 목돗줄로 얽었다. 말상은 신병들을 섞어 편성된 분대를 지휘했다.

다들 붙어라.

불그죽죽하게 땀으로 젖은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모두는 낡은 전토복의 잔등과 겨드랑이 밑으로 땀이 배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말상은 앞에서 목도를 잡고 들어섰다.

단단히 잡고 메어라.

말상은 목도를 잡고 들어서는 분대원에게 말했다. 자칫 목도를 멘 분대원 중의 한 사람이라도 휘청대며 가파른 비탈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날에는 뒷사람까지 걸고 넘어져서 운반목은 중심이 흔들리며 뒹굴고, 그 덮치는 아름드리 운반목에 몸뚱이가 깔려 으깨지거나 사지가 꺾이고 목이 부러지고 허리가 부러지고 하면서 참혹하게 죽을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군대에 와서 개죽음 같은 끝장이 나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 일어난다.

말상이 선두에서 신호했다. 목도를 뒷덜미에 붙이며 들어앉았던 몸들을 펴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름드리 육중한 운반목은 팽팽한 목돗줄로 굉장한 무게를 잡았다. 분대원 모두 펴고 일어나는 관절과 뼈마디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영차!

선두 두 명이 한 걸음을 내놓으며 선창했다.

어영차!

뒤에서 발을 따라 옮기면서 받아 복창했다.

이봐, 똑바로 길을 잡지 못해!

키 큰 덩치로 힘깨나 쓴다고 뒤로 붙었던 허우대와 메기가 힘에 부치는 소리를 질렀다.

뒤에서 밀어줘야지, 새꺄!

앞에서 열이 차는 소리를 외쳤다. 개미 역사하듯, 아름드리 운반목은 조금씩 움직이며 올라갔다.

더위에 지친 개들처럼 혀를 빼물고 헉헉대며 모두는 가쁜 숨을 헐떡거렸다.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땀은 비오 듯이 쏟아져 내렸다. 체구가 작은 조영재는 얼굴까지 창백해지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조용한 교수의 강의만 듣고 도서관에서 책만 대하다 온 친구이고 보면 무리도 아니었지만, 잠을 자던 취침중에 어디론지 알 수 없는 데로 슬그머니 불려가서 한번 흐물흐물해져 돌아온 뒤로는 사람이 어리뜩하게 허약해진 친구였다.

발을 잘 잡아 박아디디고 무릎관절에 힘을 넣어라.

말상이 소리쳤다. 가파른 비탈이라서 쉴 수가 없었다. 생각처럼 발을 잘 잡아 디딜 수도 없었다. 앞에서 발을 내디디고 운반목이 흔들리는 반동대로 뒤에서도 발을 따라 옮겨가며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무겁기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무거운 중심은 뒤로 쏠려 있었다. 봉우는 발뒤꿈치와 종아리의 힘줄이 결리더니 허벅지에 쥐가 올라왔다. 허리의 뼈마디는 어긋나는 것 같고 어깨는 숨도 못 쉬게 짜부라 들고 있었다.

, 말상. 굴려버리고 말자!

두 명이 함께 비명을 질렀다.

아구통 닥치고 정신들 차려!

말상은 고함을 쳤다.

새끼야, 굴려버려! 마이가리 일등병 계급장을 달더니 간뎅이 부었냐?

뒤쪽에선 맞고함을 쳤다.

마이가리 계급장은 나만 달았어? 여기로 작업 파견된 놈들 모두 달았지.

메기가 부어오른 소리를 했다.

교육대 신병들 덕분인 줄 알아라.

모두가 교육대 신병들을 효과적으로 부려먹자는 속셈이었지.

이죽거리고 툴툴대면서 힘써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다 올라왔다. 마지막 힘을 뽑아라.

어영차!

나무들 사이로 트인 능선 날망이 보였다. 모두들 어금니를 앙다물고 이악스런 기운을 썼다.

어영차!

마지막 기운을 쓰면서 분대는 능선 날망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조심을 하면서 운반목 놓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굽히면서 운반목을 내려놓았다. 모두는 짓눌리던 뒷덜미의 목도를 벗어버리면서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하나같이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하고 비척거리다가 그 자리에 힘없이 풀썩풀썩 주저앉고, 뒤로 벌렁벌렁 누워버렸다. 누구도 이런 노동에 익숙한 친구는 없었다. 죽지 못해 해야 하는 노예의 일이었다. 말상은 벌겋게 허물이 벗겨진 어깨를 쓰라린 듯이 가만가만 매만져가며 밀린 허물을 뜯어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기운들을 내라. 군인은 모든게 전투와 직결된다는 걸 모르나? 이런 특수훈련 과정을 통하여 너희들은 강인한 인내력과 백절불굴의 전투력을 배양하고 어떠한 악조건 상황 하에서라도 반드시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한 사람의 쓸만한 용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지척엔 호시탐탐 적화야욕을 노리는 북괴 김일성 집단이 있다는 걸 모르나?

말상은 빈대마스크 선임하사가 자주 쓰는 말을 흉내 내었다. 그의 흉내 내는 말소리는 지칠 대로 지쳐서 널브러져 있는 친구들의 쓴웃음을 자아내었다. 허우대는 누운 채로 입을 떼었다.

이거야 애벌이지. 이따 저녁 무렵 철수할 때 녹초가 된 몸으로 철책선 밖에까지 메고 나가자면 그때야말로 피똥을 싸게 될걸.

사실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는 아무도 대꾸하는 말이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만 있었다.

아래의 산판에서는 절반쯤씩만 베고 찍어놓고 지나쳐온 나무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목들의 줄기가 빠개지면서 쓸어 넘어지는 소리와 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산메아리를 치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둘기와 산새들이 일시에 날아오르고, 총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울어 젖히던 장끼들까지도 곳곳에서 청청한 울음소리를 그치고 솟구쳐 날아올랐다. 그런가 하면 놀란 산짐승들이 얼핏얼핏 등을 보이며 골짜기의 숲과 산등성이로 뛰고 있었다.

내려들 가자. 중식시간일 거다.

말상은 상체를 일으켰다. 너무도 지친 나머지 배고픈 것도 잊고 널브러져 있다가 중식이란 말을 듣고 모두들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나 능선을 터덜터덜 내려갔다.

나무숲 속으로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대원들은 벌써 반합에 싸온 중식을 끝내고 있었다. 느긋하게 감배를 피워 물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뒤늦게 서둘러 덤비며 한 군데 모아두었던 중식 반함을 찾아들고 모두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앞서 중식을 끝낸 친구들이 게걸스럽게 입에 밥을 퍼넣는 모습을 쳐다보며 수통의 마개까지 틀어서 물을 건네주곤 했다.

햇빛은 뜨거웠지만 나무숲 속의 그늘은 서늘했고, 땀이 차츰 마르면서 좀 차가운 느낌도 없이 않았다.

이거야말로 쓸데없는 짓이지.

중식을 끝내고 무심히 담배를 빨며 앉아 있던 친구가 말했다.

군대는 모든 것이 그렇다. 땅을 파고 메우고 이동하고, 파괴와 살육을 딸꾹질처럼 거듭하면서 세계의 모든 나라 군인들은 존재하고 있는 거다.

말상이 비운 반합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좋은 아름목들을 마구잡이로 태워버린다는 건 너무 아까워.

조영재가 말했다.

모르는 소리 작작해. 전방 나무는 총알이 박히고 파편이 박혀 톱날이 나간다고 제재소에서 받지도 않는다는 걸 알아야지.

문 병장이 옆에서 말했다.

천상 화목이지.

아무 가치없는 화목이라고 해도 봉우는 아름드리로 쭉쭉 뻗으며 산판에 들어찬 나무들이 너무도 아까웠다. 이토록 아깝다는 생각을 가져본 것은 난생 처음일 것 같았다.

시계청소라고 하지만 굳이 힘들게 도끼로 찍고 베어 넘겨서 태워버릴 건 또 뭐 있습니까?

봉우는 조용한 말소리로 반박했다.

네놈은 귓구멍에 쇠말뚝이 박혔냐? 해마다 녹음기가 되면 놈들이 기승을 부리고 넘어와 아군을 교란하고 후방으로 무장침투를 해서 무고한 민간인까지 살육만행을 저지른다는 대간첩교육을 받지도 못했어?

문 병장과 나란히 앉아 있던 오 하사가 쏘아붙였다.

제가 비무장지대로 들어와서 본 건 짐승의 자취와 배설물뿐이던데요?

하고 조영재는 인지로 안경을 밀어올렸다.

간첩들이 똥 싸고 흔적을 남기면서 다니는 줄 알아? 네가 전방사정에 대해서 뭘 아는 게 있다고 오줌 맞은 개구리처럼 폴짝대고 주둥아릴 함부로 까.

오 하사가 해부쳤다.

어차피 쓸데없는 나무를 베고 불질러 없애는 시계청소를 해서 적의 은밀한 침투를 막고 짐승들을 서식 못하도록 하면 밤에 우선 철책선 근무를 하기가 편하잖아.

문 병장은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모두가 오두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거 아니에요? 과민반응 같은 거 말입니다.

조영재가 다시 나섰다.

정말 그렇다면 어리석은 거죠. 뭐 그럴 필요 있어요. 대범해보자구요.

잘난 아가리 닥쳐! 여긴 주둥아릴 나불대구 까는 곳이 아니야. 총검을 가다듬어야 하는 전방이야.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어.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적이 지척에 있다는 것뿐이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두요.

조영재는 덧붙였다.

나도 오 하사의 말에 동의한다.

장 소위는 사병들의 대화 속으로 끼어들었다.

후방 일각에서 하는 솔들은 대부분이 지극히 피상적이고 감상적인 것들이지. 후방에서는 감상주의·혈육주의가 만연한다고 해도 우린 눈앞에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해. 다른 건 없다. 그것이 현명하고 이성적이며 냉철한 판단이야.

그래서였던가? 봉우는 불현 듯 몇 개월 저의 일을 한번 돌이켜 상기했다.

긴장감이 돌던 밤늦게 마침내 비상이 걸렸다. 새어나가는 불빛 한 줄기 엇이 잘 차광된 막사의 내무반에서는 자목 어수선하게, 그러나 은밀하고 또 신속한 동작으로 소대는 출동군장을 꾸리고 있었다.

난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은데. 이것으로 내 인생이 꼭 끝장나는 것 같단 말이야.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는 문 병장은 충분히 그럴 소리를 할 만 했다.

새끼가 왜 기분 잡치게 앞짧은 소리를 까구 지랄이야.

침상 구석에서 포 방렬 겨늠대를 들고 나오면서 오 하사는 되알지게 쏘다붙였다.

빈대마스크 선임하사는 한마디 군소리가 없었다. 선임하사의 긴장된 모습을 보면서 병사들은 차츰 말소리가 줄어들고 긴장이 더해갔다.

날씨가 춥다고 행동이 부자유스럽도록 옷을 너무 껴입어서는 안된다.

선임하사가 채근하고 있는 가운데 군장을 꾸린 소대원들은 내무반을 빠져나갔다. 봉우는 가늠자통 하나를 더 집어들었다.

그는 막사의 출입문을 열고 나섰다. 어둠 속에서 몰아치는 찬바람이 달려들면서 서릿발 같은 눈발이 얼굴로 늘어붙었다.

어두운 연병장으로 플래시의 불빛들이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강추위였다. 연병장 가로는 오래 전에 밀어붙여놓은 눈더미가 녹지 않고 그대로 허옇게 얼어붙어 있었다. 한번씩 어두운 하늘로 내뻗치는 플래시의 불빛 속에 희끗희끗 눈발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흩날렸다.

그 어두운 연병장으로 뒤룩거리는 겨울쥐들처럼 병력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수송부 쪽에선 시동이 걸린 차량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남 하사가 인솔하고 올라간 병력들은 벌써 트럭에 탄약을 만재하고 내려왔다. 포가 탑재된 차량을 끌고 나오는 것으로 준비가 간편한 106밀리 소대는 출동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

육중한 4.2인치 박격포를 실은 소형 포차가 기어들어왔다. 병력들은 박격포를 싣고 나온 포차로 붙으면서 저마다 배낭을 비끄러매었다.

모두 승차하라.

소대장은 명령했다. 병력들은 차로 올라앉았다. 모든 병력들이 승차하는 것을 확인하고난 선임하사는 소대장 앞으로 다가왔다.

이상없습니다.

선임하사는 보고하고 후미 차량으로 돌아갔다. 모든 건 신속했다. 소대장은 자세를 바로잡고 뒤로 돌아섰다.

다 됐나?

지켜보고 있던 중대장이 물었다. 의례적인 절차와 보고를 생략시켰다.

출발하라.

몸을 돌리고 중대장은 지휘차로 올라탔다. 106밀리 소대가 앞으로 출발했다. 소대장은 박격포 선두차량으로 탑승했다. 차량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106밀리 포차 뒤로 붙었다. 차량들은 전조등을 죽이고 스몰라이트로 기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을 기어가는 검은 거미 같고 괴물 같았다. 차량이 부대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승차하고 있는 병력들은 말이 없어졌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운전병은 소대장에게 물었다.

앞차만 따라가라.

경직된 목소리에, 운전병은 더 묻지 않았다. 불시의 긴박하고 은밀한 출동에 더욱 궁금한 것은 병사들이었다.

다른 부대는 비상이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말상은 낮에 부대들이 있던 골짜기 쪽을 더듬었다.

이번엔 딴 때 같잖구 뭔 긴급비상 같은디 벌써 출동혔겄지.

멍청도가 말했다. 그는 이어서 한마디 더 했다.

가다 보믄 걸어가는 병력들이 보이잖겄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말상은 고참병들을 향해 물었다.

......

대답해주는 고참병이 없었다. 그들도 모르고 있었다.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포차만 굴러가고 있었다. 신병으로 전입되어 몇 차례 전포훈련을 받다가 봉우는 소대장의 눈에 들어 사격지휘반의 계산병으로 처음 비상출동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궁금하고 두렵기도 한 건 말상이나 허우대도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어느 때부터 몹시 추운 건지 두려운 건지 고개를 깊이 박고 움츠린 어깨 사이로 얼굴을 묻고 있었다.

모름지기 우리는 명령과 지시대로 행동만 하면 된다. 신병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이 병장이 한마디 했다. 신병들은 대부분이 분대의 탄약수에 불과했다.

차량은 부대 앞의 부락을 지나고 있었다. 군인들이 비상에 걸리면 함께 피난 짐을 싸곤 한다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마을의 집들은 그믐밤의 어둠 속으로 묻혀 있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마을은 너무도 순박하고 천진스럽고 평화스럽다는 생각이 봉우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소리를 죽이며 기어가는 출동차량의 행렬은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다.

선두 차량은 전방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쌓여 있어도 하늘에 떠 있는 희미한 여명 빛으로 먼 산들의 윤곽이 잡히며 어느 정도 지형을 가늠해 볼 수가 있었다. 분명히 철책선 전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바람은 세차지 않았다. 가느다란 눈발이 얼굴로 달라붙었다. 그러나 드러난 얼굴의 피부는 얼어서 달라붙는 눈발이 차갑다기보다 간지럽게 느껴졌다.

민통선 초소로군.

고참병 중의 누군가가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봉우는 길가로 세워진 움막 같은 초소를 볼 수가 있었다. 전방 어딘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봉우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생각했다. 중대장의 지휘차가 좀 빠르게 저만큼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전진하고 있는 도로는 산을 끼고 있었다. 한쪽으로 희읍스름하게 잔설이 덮여 얼어붙은 개천이 보이고, 황량감이 느껴졌다. 멀리서 몰아치고 있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벌판이었다. 봉우는 차량의 전진방향을 가늠하면서 한낮엔 멀리 북녘 땅까지 바라보이던 벌판을 생각했다. 고참병들은 그 벌판을 민들레 벌판이라고 불렀다. 벌판의 가운덴 집이 몇 채 안 되는 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벌판 전체가 까만 어둠에 싸여서 민통선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선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출동차량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어디까지 들어갈 셈이지?

이 병장이 고개를 들고 중얼거렸다.

비상이 걸리면 우리가 점령하던 진지를 벌써 지났단 말이야.

문 병장은 겁을 먹고 있었다.

더 들어가면 남방한계선이야. 아군 방책선이라구.

이병장은 출동차량이 전진하고 있는 지형을 알고 있었다. 네댓 명의 일등병들은 고참들의 주고받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건 뭔가 다른 작전상황인데......

이 병장은 목소리가 무거웠다.

나도 그래. 이런 일은 처음이라구.

문병장은 차량이 전진해 들어가는 어둠 속의 지형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중화기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데까지는 다 들어왔단 말이야. 더는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그러나 차량은 계속 전진했다. 덜커덕거리면서 얼음이 얼어붙은 개울바닥을 건너가고 있었다.

개울의 언덕을 기어오르면서부터 차는 엔진의 소음을 죽이며 슬금슬금 기어가고 있었다. 북쪽의 대남방송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포탄을 6백 발씩이나 싣고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이 병장은 고개를 들고 눈을 치켜든 채 두리번거렸다.

아군 방책선이잖아!

그래. 아군 방책선이 눈앞에 있어.

이거 어디까지 들어가겠다는 거지?

이 병장은 문 병장과 거듭 놀라는 소리로 주고받았다.

설마 이북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문 병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야 물론이지.

이병장은 줄곧 출동차량이 전진하는 전방을 살펴보았다. 차가 전진하는 도로의 양편으로 해묵은 갈대가 그대로 수북하게 헝클어져 덮여 있었다. 메마른 갈대는 서걱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잔설로 얼어붙어 있었다. 어둠 속의 벌판 저만치 철책선이 가로질러 나가고 있었다. 절로 긴장이 느껴졌다.

선두 차량은 철책선 앞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중대장의 지휘차가 어둠 속의 철책선 앞에 잠깐 멈춰 서는가 싶더니 그냥 출입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이미 요소마다 긴급작전 지시가 떨어진 듯싶었다. 선두에선 106밀리 포차가 진입하고 있었다. 소대장은 긴장된 숨을 내쉬었다.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키던 운전병이 물었다.

그렇지.:

하고 소대장은 대꾸했다.

무슨 작전인지는 몰라도 전엔 없던 일인데요?

운전병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럴 테지.

이북으로 넘어가자는 건 아닐 테지요?

물론이지.

차량이 비무장지대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주위의 벌판은 고요해지고 긴장이 감돌았다. 차량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기어 다니고 있었다. 마치 어둠 속의 대지가 숨을 멈추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뒤바뀐 세상에서 살게 되는 거 아니야?

이병장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당찮은 소리 말아.

문병장은 질책했다.

예전엔 영관급 장교 하나가 이렇게 유유히 넘어갔다더라.

이 병장은 불안한 심정을 드러내었다.

나도 들은 얘기지만 그 사람은 여자관계로 사생활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던데. 만약에 수틀리면 나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거지 뭐.

문병장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막말을 했다.

한창 전방 철책선 벙커작업을 할 때 인접 사단에서 있었다는 얘기 못 들어봤어? 중대장이 휴가를 간 사이에 직무대리를 하던 소대장이 작업을 한다면서 병력을 비무장지대로 이끌구 들어갔다가 월북을 기도한 거 말야. 이끌려가던 분대장이 죽기는 이판사판이다 싶어 몸을 돌리고 반기를 드는 바람에 결국 제놈 혼자만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넘어갔다지만.

그 새낀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하사관생활을 했대더라. 미군 장교들 생활하는 게 부러워서 장교로 임관을 했는데 전방으로 부임을 하고보니 이건 미군들 같지 않았지. 한마디로 그 중위가 평소에 자주 터뜨렸다는 불만을 빌리면 이건 밤낮을 모르는 노가다 십장이었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작자였다구.

숨죽이며 말하던 이 병장의 목소리가 어느 결에 커졌다.

차량은 해묵은 갈대가 뒤덮인 벌판의 도로에서 산이 드리워진 골짜기 작전도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말들이 없었다. 산에 막혀 북쪽의 대남방송이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길이 좋지 않은데요. 탄약차량이 제대로 올라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운전병은 포차를 몰고 기어오르면서 뒤의 탄약차량을 걱정했다. 소대장은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골짜기의 구릉지 쪽을 눈여겨 더듬었다. 포진지까지 다 들어온 것이었다. 어둠이 먹빛으로 짙었다.

차를 왼쪽으로 돌려라.

소대장은 지시했다.

다 온 겁니까?

그렇다. 조심스럽게 들어서라.

운전병은 핸들을 꺾었다. 덜컹, 하고 차량이 패인 골로 내려앉았다. 소대장은 차에서 내렸다. 앞에서 차량을 유도했다.

들어서라.

유도하는 대로 차량이 들어섰다. 소대장은 포진지를 더듬었다. 구릉지는 생각보다 제법 넓게 퍼져 있었다. 뒤차에 탑승하고 따라오던 선임하사가 차를 진입시키고 난 뒤 뛰어내리면서 어둠을 헤치고 다가왔다.

포진지는 여기요.

소대장은 포진지를 잡고 말했다. 진지를 알고 난 선임하사는 곧 포차를 향해 돌아섰다.

전원 하차.

야간방렬이 시작되었다. 선임하사는 직접 방향틀을 찾아들고 앞으로 어둠을 헤쳐 나갔다. 포차에서 박격포를 끌어내리고 난 병사들은 잘 훈련된 각자의 임무대로 행동이 신속했다. 포판을 들어 나르고, 포신을 맞들어 오고, 겨늠대로 잡고 뛰었다.

땅이 너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포탄 한 발만 집어넣으면 포가 완전히 박살나버리겠는데요.

문 병장은 엄살 같은 소리를 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괴목을 잘 받쳐라.

선임하사는 목소릴 죽여서 외쳤다. 골짜기로 들어앉은 사격지 휘반에선 판초우의를 둘러치고 지도를 펼치며 제원산출에 들어갔다. 소대장은 펼쳐진 지도 위에 목표지점의 핀을 꽂았다.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듯 봉우는 한 번 더 핀이 꽂힌 목표지점을 확인했다. 군사분계선 너머 이북이었다. 고개를 들고 소대장을 쳐다보았다.

나를 볼 것 없다. 놈들의 지피야.

소대장은 강렬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봉우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손끝이 떨려왔다.

뭘 해? 어서 제원을 뽑으란 말야.

오하사는 재촉했다. 봉우는 지도 정치를 하고 나서 분도기를 잡았다. 한편에선 선임하사 이하 분대장과 전포대원들이 진지로 박격포를 거치하면서 제원방렬을 서둘렀다. 불빛은 씨도 보이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병력들은 각자의 임무에 따라 동작이 민첩했다. 선임하사는 방향틀을 꺼내들고 뛰었고 분대장들은 포판을 놓아가며 포신을 세우는 가운데 가늠대가 앞으로 나갔다. 포구는 북쪽이었다. 제원은 사거리 2천 킬로미터 남짓, 목표는 적의 지피였다. 박격포 2문에 목표는 둘, 탄종은 고폭탄 각각 300발씩 600발이었다.

포탄상자를 풀었다. 깍지의 밴드를 뜯어 포탄을 꺼내고 장약을 맞추었다. 전쟁이구나!

봉우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소하게 오발의 성격을 띤 몇 발쯤의 포격전이 아니라 최소한의 국지전, 나아가 전면전의 개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고참병들도 누구 한 사람 말이 없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추위는 매섭게 살을 에었다.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시간은 흘러갔다. 사격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끝내 그랬다. 아직은 살아 있는 것이었다. 죽음과 공포의 비무장지대!

어느 틈에 소대장 곁으로 다가와 앉은 선임하사가 허옇게 껍질을 벗긴 더덕을 씹고 있었다. 소대장의 손에도 굵직한 더덕뿌리가 들려 있었다. 얘기는 끝나지를 않고 있었다.

어떻게든지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은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말상은 반박조로 소대장에게 말했다.

이 나라에 남북통일을 반대하는 놈도 있던가?

소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말이야 다들 잘 하죠. 문제는 진정한 속뜻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겁니다.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보수집단과 특혜와 투기를 일삼아온 재벌들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통일을 저해하는 세력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조영재가 말을 받았다.

제도권에 분단된 조국통일을 기대하긴 요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쌍방이 완강한 고집으로 이데올로기 체제를 유지하면서 안보를 빌미삼아 전투력만을 날로 증강하고 있는 현실이니까요. 어느 한쪽도 양보의 기미를 보이지 않구,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질 않거든요. 서러가 비난하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군사적, 경제적으로 뽐내고 위협하면서 힘으로만 굴복시키려고만 들고 있어요.

조영재는 찬찬히 말을 잘 하고 있었다. 그 동안 주눅으로 짓눌려왔던 기가 이제야 다소 풀리는 것 같았다.

홍익인간 이념은 어떨까요? 국민들이 널리 유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말이죠? 민중이 주체가 되는 차원에서 전통적인 삶의 유대와 정서를 기반으로 격의없는 대화만이 분단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공산주의 기본 혁명 전략이 뭔 줄이나 아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거야, 알겠어? 우리는 그들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하지 않는 속내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또 정확히 알아야 돼. 그들이 실체는 거기에 다 있거든. 그건 바로 붉은 야욕이라는 거야. 이리의 속마음 같지.

우리쪽 남방한계선의 철책이 왜 그렇게 높이 가시철조망이 뒤감겨 견고한 장벽이 된 줄 아나?

하고 이번에는 선임하사가 나섰다.

남방한계선의 정확한 2킬로미터 지점을 연해 나무울타리 목책선을 쳐놓고 있을 때였지. 놈들은 걸핏하면 취약지로 침투를 해 와서 아군초소를 기습해대곤 했어. 그래서 철책선으로 바꿀 때 그 취약지의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면서 나아가고 올라선 거야. 놈들도 마찬가지였지.

선임하사는 침을 삼켰다.

처음 그렇게 단순한 철책선을 쳐놓았을 때였지. 놈들은 심지어 반전차 수류탄을 가지고 기어와서 철책선 강도 시험을 해대지 않겠나. 무섭고 끈질긴 놈들이었지. 그 뒤로 잠잠하게 지켜본다 싶더니 한번은 난데없이 아군 철책선 후방으로 무장간첩이 출현한 거야. 어떻게 넘어온 줄 아나?

선임하사는 사병들 쪽을 쳐다보았다.

철책선 밑을 파고 넘어온 거야. 그래서 다시 부랴부랴 철주를 박아 보강을 했지. 한데 또 넘어온 데를 종잡을 수 없이 후방으로 무장간첩이 출몰한 거야. 생포한 놈을 자백 받아 침투해 들어온 데로 끌고 갔었지. , ......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이 선임하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놈은 끌고 간 철책선 앞에 서더니 멀쩡한 철책을 발로 툭 차는 거야. 새끼가 웃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지. 멀쩡한 철책이 툭 나가떨어지지를 않겠나. 놈들은 철책의 지주가 있는 델 절단기루 자른 거야. 그리고 넘어온 뒤 감쪽같이 그 자리에 되붙여 놓았던 거지. 이쪽에선 보이지를 않거든. 목책선일 적엔 차라리 나무를 부러뜨리는 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철책의 철선은 헝겊을 감아 절단기로 자르면 소리가 죽게 되어 있질 않으냔 말이야. 그래서 아침마다 철책선 확인 순찰을 할 땐 철책선을 흔들어보고 다닌다 그 말이야. 그러니까 철책선 장벽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저놈들이 만들었다는 걸 알아야 해.

모두 눈만 끄먹거리며 사병들은 빈대마스크 선임하사를 바라보았다.

그런 일만이 아니지. 지피에 거치된 화기를 손질하려고 하다가 어떻게 실수로 켈리버50 기관총 한 발이라도 만약 오발해 보라지. 놈들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120밀리 박격포탄을 빗발같이 퍼부어댄다 이거야. 우린 속수무책이지. 미군 측에 작전권이 있지 않은가 말이야. 보복사격을 허락할 턱도 없지만 보고를 해서 그런 명령을 받아낸다고 해도 보고하고 난리를 치는 사이에 상황은 이미 씻은 듯이 끝나버리거든. 하도 당하기만 하는 게 억울하고 분해서 울화가 치밀던 지휘관님네가 배짱좋게 몇 발 반격을 시도해본 일도 없지 않지. 그때마다 판문점 정전위원회 책상에서 파괴된 스피커 조각과 포탄 파편을 올려놓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입씨름만 반복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거야. , 거짓말 같은가? 그래서 놈들과 상황이 붙으면 스피커부터 쏴대거든. 아마 이런 사실들은 까맣게 몰랐을 테지. 이것이 후방에서 떠드는 소리와 다른 전방 사정이라 그런 말이야. 이렇게 민감한 비무장지대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북한의 도발만 이야기하면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안보논리니 뭐니 하고 입버릇처럼 떠든단 말이야. 그렇다고 내가 전쟁위기를 강조하는 건 아니야. 다만 북한의 무력도발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 그거지. 놈들이 기습적으로 보전포(步戰砲) 합동 공격을 감행하게 되면 한 시간 내에 아군 진전에 도달하게 되지. 아무리 우리가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고 현지 방어를 하면서 비상출동을 한다고 해도 작전 병력이 전지투입을 완료하려면 두 시간이 걸리게 되지. 그래서 불가피하게 개활지에 수로(水路)를 파놓기도 하고 축차적인 대전차방어선 콘크리트 장벽까지 설치했다 그 말이야.

문득 봉우는 궁금한 게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이 넘어와 사살당한 공비들의 시체는 어떻게 다 처릴 했나요?

갑자기 뚱딴지같은 것을 다 묻네.

하고 오 하사는 나서서 대꾸했다.

따로 매장하는 데가 있어.

아무렇게나 그냥 화장해서 날려버리는 게 아니구요?

말상이 재차 물었다.

한번은 연대의 심부름으로 사단에서 보급품을 수령해가지고 돌아올 때였지. 아마 그게 추석 무렵이었을 거야.

오 하사의 말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차를 몰고 작전도로를 타고 질러 넘어오는데, 웬 병력들이 그 산골짜기를 내려오면서 차를 세우더라구. 그 가운데 선임자 같은 중사 하나가 부식이 있으면 좀 달라는 거야. 부대훈련도 아닌 것 같은데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내가 물었지. 그랬더니 묘지를 지키고 있다는 거야. 난 그때 군인이 산골짜기에서 묘지를 지키고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지. 이상하고 궁금한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다시 물어보았더니 그 중사 하는 말이 죽은 공비들의 공동묘지라는 거야. 나는 더욱 놀랐지.

개코를 두어 번 훌쩍거리고 나서 오 하사는 담배를 뽑아 문 뒤 지퍼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알고 보니, 달포 가까이나 소대병력이 텐트를 치고 매복을 하는 거야.

매복을 해요?

조급증이 나서 허우대가 물었다.

능선 중앙의 평탄하다 싶은 분지로 조그만큼씩하게 애장 같은 무덤 수십 기()가 질서없이 모아져 있는데, 해마다 추석 때가 되면 저놈들이 넘어와서 곱게 벌초를 해놓고 간다는 거야.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졌다.

반드시 저쪽에서 넘어와 가지고 그런다고는 볼 수 없잖아요?

턱을 듣고 귀담아듣던 조영재가 물었다.

그야 그렇겠지. 아무튼 자기들이 생각해도 귀신같다는 거야. 지난해는 3개월을 매복했는데 잡을 수가 없었다더군. 그런데 병력이 철수를 했다가 다시 와 보면 영락없이 곱게 벌초를 해놓았다는 거야. 정말 귀신 곡하겠더라드만.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이 병장도 입을 벌리고 듣다가 혀를 찼다.

그래서 나도 죽은 공비들의 묘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지.

놈들은 제물을 차려놓고 쪽지까지 써놓고 간 적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 남조선 동무들 잘 자시오, 하고 말이야.

그거 거짓말 아닙니까?

따로 혼자 앉았던 푸마가 불쑥 쐐기를 쳤다.

내가 언제 너희들 데리고 거짓말하는 것 봤어?

오 하사의 표정은 지어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과연 벌초를 누가 했느냐가 궁금한데요?

매복하는 걸 알고 기회를 엿보아가며 벌초를 할 정도라면 북에서 넘어온 놈들이 아니라 우리 민간인 쪽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놀고 있네. 그럼, 전방 민간인들이 빨갱이란 말이야?

푸마는 거칠게 쏴댔다.

난 민간인들이 빨갱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게 그 소리지 뭐야?

넌 말끝마다 왜 그렇게 단세포처럼 극단적이야?

말상이 다잡았다.

순수하게 생각해보잔 말이야. 분단 이전에 함께 살던 세대는 전통적 관습과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상징적 배려는 충분히 할 수도 있지 않느냐 그거야.

허우대의 말은 별안간 슬픔을 자아내게 했다. 흥미롭던 얘기는 홀연히 끝나버렸다. 아까 얘기를 하는 동안에 슬그머니 지정된 휴식장소를 이탈하여 나무숲 속으로 들어갔던 친구들이 더덕을 몇 뿌리씩 캐다가 동료들에게 돌리며 씹었다. 한 친구는 꺼멓게 녹이 슬어 썩은 깡통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썩은 채 무수하게 쌓인 레이션 깡통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깡통은 얄팍했고 따지지 않은 것이었다. 손끝만 살며시 대어도 미어질 것 같았다. 아니, 미어졌다.

이건 뭐야?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미어진 깡통에선 노란 액체가 비어져 올라왔다. 잼이었다. 다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몰려들었다. 썩은코가 빼앗아 들고 가만히 혀끝을 대고 맛을 보더니 그냥 핥아먹었다.

맛이 괜찮은데......

바로 그때,

적이다!

다급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선임하사였다. 주위가 쫙 얼어붙는 외침소리와 동시에 휴식장소의 병력들은 엄폐·은폐·차폐물을 찾으면서 숲속으로 처박히고 뒹굴고, 다급한 나머지 낙엽을 뒤집어쓰며 머리를 처박고, 둔덕진 데로 넘어져 뒹굴고, 곤두박질을 치고 하면서 삽시간에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고요 속으로 가냘픈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따라서 북쪽의 대남방송이 다시 시작되고......

새끼들아, 일어나! 어서, 일어나!

선임하사와 오 하사가, 바위 뒤로 가서 찰싹 달라붙어 고개를 처박고, 다급한 나머지 낙엽을 뒤집어쓰고 있는 병사들의 엉덩이를 차대며 다녔다. 아직도 신병들은 얼굴이 누렇게 뜨고, 창백하게 질리고, 겁에 차고, 제정신을 못 차린 채 떨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같이 총들은 다부지게 거머쥐고 장구들도 빠짐없이 꿰차고 있었다. 소대장이 말했다.

무당벌레, 풍뎅이나 적이 나타나면 죽는 시늉을 하는 거다. 그리고 방금 너희들이 취한 행동이 눈앞에 적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면서 행동으로 보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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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은 일제히 함성으로 복창했다. 한차례 혼겁을 치르고 난 병사들은 허탈해서 맥 빠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오후작업에 들어간다.

소대장이 자리를 비키면서 선임하사가 앞으로 나섰다.

각 소대는 할당된 작업지역으로 돌아가기 전에 교대할 경계병력을 내보낸다. 작업이 곤란한 환자가 있으면 함께 남아라.

병력은 장비를 챙기면서 작업위치로 돌아갔다. 봉우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오전에 분대의 앞번 친구가 경계를 나갔으므로 자동적으로 차례가 된 것이었다.

선임하사는 경계조를 편성했다. 전방으로 나갈 경계조는 기성병력으로 편성했다. 신병들은 환자들과 섞여 작업현장의 사주를 경계하도록 배치되었다. 선임하사는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를 개방했다.

여기는 까치. 각 때까치는 감잡고 나오라, 이상.

경계근무를 나간 쪽에서 <때까치는 굶주리고 있다>는 응답을 보내왔다.

잘 알았다, 때까치. 곧 돌아가 교대시켜주겠다, 이상.

선임하사는 무전기의 전파 잡음을 죽였다.

썩은코와 허 일병은 함께 때까치 하나로 들어가 교대한다.

전방으로 추진되어나가는 경계조는 적어도 분대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작업병력의 부족을 내세워 선임하사는 최소한의 경보전달 병력만을 경계근무조로 내보내고 있었다. 문 병장은 꾸물거리며 지체할 것 없다는 듯이 어깨를 툭 쳤다.

처음 작업을 시작하던 곳에서 골짜기로 내려가면 바위가 나온다. 맞은편으로 건너가 위로 올려다보면 노가주나무가 보일 것이다. 바로 거기다.

선임하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소리를 대충 들으면서 문 병장은 앞으로 걸어나갔다. 봉우는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내려서는 골짜기에서부터 나무숲 속은 짙은 그늘이 고여 아주 침침했다. 앞서 나가면서 문 병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더덕을 찾고 있었다. 더덕은 한방에서도 사삼(沙蔘)으로 불리는 것이었다. 어린잎도 식용으로 하지만 뿌리는 하얀 속살이 달곰쌉쌀하니 퍽이나 향기로운 맛을 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부정한 사람의 눈에는 산삼처럼 쉽게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실지로 여러 다년생 잡초와 덩굴식물들 속에서 이파리가 그게 그것같기 때문에 타원형의 자그마한 잎을 찾아내자면 자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잎만 발견하면 근방은 군락을 이룬 더덕밭이었다. 햇것은 아직 뿌리가 실할 리 없고 죄다 묵은 뿌리들이었지만 잔대와 함께 유일한 별식이요, 출출하고 심심한 때의 간식거리였다.

허리를 굽히고 대검으로 땅을 파헤치는가 싶던 문 병장은 굵직한 더덕 네댓 뿌리를 캐러들고 허리까지 올라온 나무숲속을 헤쳐 나왔다. 그는 희색만면했다.

이런 것을 운수대통이라고 하지.

골짜기의 구릉지대로 접어들수록 교목들이 들어차고 있었다. 잡관목 활엽수들은 머루덩굴과 칡덩굴 같은 갖은 덩굴줄기에 휘감기며 빼곡한 천연밀림을 이루고 있고, 산새들이 넘나들며 우짖고 있었다. 자그마한 멧새들이 때를 이루어 포르륵 포르륵 쉬임없이 자리를 옮겨가며 날았고, 산비둘기가 푸드드득 날곤 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봉우는 갈증을 느끼고 그쪽으로 찾아들어갔다.

바위와 비탈에는 푸른 이끼들이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덮여 있었다. 포개진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이 오목한 옹달샘을 이루어 퍼렇게 고여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다가 손으로 물을 움키어 마셨다. 이가 시렸다. 수통에 물을 채웠다.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일어나자, 경계위치로 올라간 문 병장이 교대를 해주었는지 앞의 경계조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았다. 얼마나 은근히 무섭고 따분하기도 한지 어디 있어 보라는 듯 히죽이 웃음을 띠어 보이고 빠르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골짜기의 비탈을 기어 올라갔다. 봉우는 그들이 내려오던 길을 잡고 올라갔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혼자 그렇게 꾸물거리나.

문 병장은 껍질을 벗겨 먹던 더덕 한 뿌리를 앞으로 내밀어 건네주었다.

먹어봐. 군대에 와서 몸보신할 것이라곤 더덕뿌리밖에 없어.

다보록한 노가주나무 밑의 움푹한 데로 들어앉았던 문 병장은 느긋이 등을 기대며 제대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놈들은 함부로 우리를 넘보지 않아. 우리가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거지. 물론 건드리면 사정은 다르지만.

제대를 앞두고 있는 고참다운 여유를 보이며 문 병장은 태연스럽게 말했다.

설령 몇 놈 나타난다고 해도 까닭없이 수가 많은 아군 작업병력을 기습하겠나. 기껏해야 놈들은 정찰대 몇 명에 불과할 텐데.

맞붙는 게 아니라 비겁하게 기습사격을 가하고 달아난다니까 문제지요.

그놈들이 머리가 돌아버린 저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무고한 인명을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살육을 자행하겠나.

듣고 보니 봉우는 그게 그럴 법도 했다. 잠시 입이 다물어졌다.

만약 한 놈이라도 나타나는 게 눈에 띄면 먼저 이쪽에서 경고사격을 해버려. 그놈을 도망치게 하는 거야.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식이군요.

그런 셈이지. 상대가 누구든 사람을 죽이는 게 뭐 그리 좋고 잘난 양철쪼가리(훈장) 받을 짓이라구. 적이기 이전에 따지고 보면 같은 한 동포에다 서로 또래가 되는 친구일 수도 있는데, 무슨 절천지 원수나 되는 것처럼 맞붙어 싸우며 죽고 죽이는데 말이야.

제대 무렵이 다가오고 보니 문 병장은 생각이 많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그는 더 말이 없었다.

봉우는 말없이 혼자 지키고 있다는 게 싫고 무료했다. 다보록한 노가주나무와 땅으로 깔린 떡갈나무 사이로 총을 밀어넣어 거총을 취해 놓고 시야가 트인 저만큼까지 전방의 음침스런 나무숲 속과 골짜기를 각개 전투에서 배운 거리관측 요령에 따라 더듬어보았다.

의심이 나는 곳은 반복해보았다. 골짜기와 숲속은 침침한 어둠이 고인 채 고요했다. 숲 위를 더듬었다. 자만치 푸른 나무숲 위에 솟아 있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거뭇하게 칙칙한 잿빛으로 퇴색한 군사분계선 푯말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크기로는 사과궤짝 넓이만 했다. 70여 미터쯤 될까? 서쪽 기슭 관목숲 위로 또 하나가 솟아 있는 푯말은 나무숲에 가리어 절반쯤만 보였다. 그 너머로는 이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실감나지 않으면서도 갑자기 저린 오금으로 가슴이 서늘해졌다. 봉우는 숨 막히던 긴장 속에 매서운 추위로 떨던 그날 밤이 다시금 생각났다.

비무장지대 깊숙한 곳이었다. 고지의 중간쯤 골짜기를 끼고 있는 구릉지였다. 허옇게 얼음이 얼어붙은 골짜기로 관목류의 나무들이 메마른 덩굴줄기에 절어 있고 잔설이 깔린 좁다란 구릉지 밖의 비탈과 능선에는 자잘한 소나무와 다복솔이 성기게 서 있었다. 적에게 모종의 타격을 가할 준비가 완벽했다. 그리고 적에게 완전히 개방된 상태였다.

공포가 엄습했다. 동포요, 친구라는 생각은 머릿속에 없었다. 생각은 텅 비어 버리고 오로지 몸은 죄어오는 무시무시한 공포와 숨이 막히는 긴장감뿐이었다. 긴장은 곧 적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로부터 이탈하려고 극도로 흥분한 상태요, 생에 대한 욕구와 죽음에 대한 공포가 팽팽하게 켕긴 상태, 살고 싶다는 갈구로 정신을 바짝 차린 상태였다.

사격 명령이 떨어진다면 우린 살아 돌아가기 틀렸지. 화장할 것도 없어 벼락치는 불구덩이 속에서 녹아버리고 말 거야.

말상이 얼어붙은 입으로 턱을 떨며 말했다.

겁내지 말아. 사격은 하지 않을 거야.

알 수 없지. 때로는 역사가 미치기도 하니까 말이야.

적 지피 한두 개를 때려서 장차 작전에 무슨 도움이 있을까?

밤은 어둡고 무시무시하기만 했다. 적이 어느 구석에서 귀신같이 기어들어와 목에 칼을 박고 진지를 기습하여 타격할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뇌리를 스쳤다. 추위에 몸은 얼어 들어오고 턱은 떨리며 이가 딱딱 맞닥뜨렸다.

가벼운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면서 어둠 속을 두리번거렸다. 허우대였다. 처음 비상이 걸려 막사를 출발할 때부터 입을 오므리고 거의 말하는 걸 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무서운 전쟁을 생각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가 다시 입을 틀어막고 뱉어내는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약하게 불고 있는 바람이건만 뼈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추위가 밀어 올리는 헛기침을 봉우는 몇 번이나 혀를 깨물며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적진이나 다름없는 비무장지대! 잘못 소리를 내고 움직이면 아군 인접 전우의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대적경계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졸고 있거나, 너무 무서움에 긴장한 나머지 인기척을 내명 경계병이 소스라치게 놀라 저도 모르게 실탄이 장전된 총의 방아쇠를 당겨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전선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랬다. 전선이었다. 공격준비 사격을 앞두고 일각일각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진중이었다. 최초의 포탄이 섬광을 달고 포구를 떠나는 순간부터 인생은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말 것이었다. 스물 몇 살씩의 나이로 순간의 우연 속에 사는 지극히 단순한 인생...... 능선 너머 저편에서 천둥같은 소리로 포탄이 작렬하면서 일순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황폐한 땅으로 뒤집히는 흙과 함께 나무그루는 춤추며 산산이 부서져 날아갈 것이며, 일순간도 우물거릴 여유가 없이 광란하는 어둠은 미쳐 날뛸 것이었다. 포탄이 찌를 듯 내뿜는 불꽃이 분수처럼 튀어 달아나고, 화염은 고지 위에서 충천하며 펄럭거릴 것이었다.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갈기갈기 찢겨져나갈 것이었다. 두개골이 파열되고, 금방 맥박 치던 가슴은 터지고 갈가리 찢겨지고 절단된 팔다리가 초토 위에 나뒹굴고, 동강난 시체들이 부연 흙먼지를 둘러쓰고 흩어져 쌓일 것이었다. 그 불소나기 같은 우박! 갈가리 찢어지는 땅, 부옇게 흙먼지를 둘러쓰고 흙더미에 묻힌 주검, 더러운 개같은 주검...... 사격! 몸서리치는 세계의 모든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절박감이 들었다. 얼어붙은 어둠 속에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고요한 정적은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슬픔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말상은 가까이 있었지만 어두워서 어디에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입을 틀어막고 헛기침을 하던 허우대는, 차량이 들어오던 위쪽으로 박격포가 거치된 2분대에 편성되어 있었다. 봉우는 갑자기 그들과 형제 같은 우애가 가슴속 깊이 느껴졌다. 그들도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로 전쟁과 죽음을 생각하고 있으리라. 몸이 허약한 데다 시력이 부실해서 작전에 들어오지 못한 안경잡이 조영재는 퍽 다행이었다. 정의를 사랑하는 친구들이었다. 가까워지려고 해도 가까워지지 않고 있는 것은 푸마 하나뿐이었다. 그는 언제나 겉돌면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내밀을 알 수 없는 친구였다. 그의 모든 것은 무엇에라도 반항하겠다는 듯이, 수시로 변덕스럽게 광적인 흥분과 난폭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누구나 지금은 모두 창백한 얼굴로 전쟁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터이었다. 절망적인 체념으로 다시 볼 수 없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애인을 생각하고, 쓰러지지 말자고 쓰러지지 말고 가자고, 함께 힘 있게 스크럼을 짜고 매운 최루탄 속으로 전진하며 분노의 함성을 외치고 눈물로 부르짖던 일들을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피부 아래서 흐르는 피는 공포와 불안을 생각 속에 불러 일으켜주고, 모든 생각은 약해져서 부들부들 떨며 따뜻한 온기와 생명을 갈망하고 있을 것이었다. 누구 하나라도 살아 돌아가면 죽은 친구의 어머니는 흐느껴 울면서 손을 붙들고 흔들어가며 소리 칠 것이었다.

그래, 내 자식만 죽고 너는 이렇게 살아 돌아왔구나. 느이 놈들만......

친구들은 군대에 오기 전 후방의 고향에서 어머니·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있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사랑하는 여자와 만나고, 최루탄의 매운 연기 속에서 부르짖던 일들까지 비로소 그것이 평화인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누구인지 추위가 밀어 올리는 헛기침을 뱉어냈다. 가까이서 울리는 것으로 보아 메기 같았다. 헛기침 소리로써 그가 곁에 있다는 생각은 무시무시하게 고립된 전쟁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그의 헛기침 소리는 모정보다도 강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강하게 감싸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헛기침 속에 마냥 얼굴을 파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도 똑같이 무서운 공포와, 똑같이 몸이 얼어붙는 추위로 떨고 있을 것이었다.

이상없나?

포탄상자집 속에서 소대장이 경계근무상태를 확인했다.

. 이상없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봉우는 대답했다. 소대장은 그런 한마디 확인뿐이었다. 간헐적으로 그렇게 선임하사와 번갈아 확인하는 소리가 은밀스럽게 옆으로 전달되고 나면 이내 다시 주위는 공포의 정적에 싸이었다. 긴장과 공포의 정적은 마치 예고된 폭풍의 전야와도 같이, 어느 순간엔가 터져버릴 것 같은 현악기의 팽팽한 현()처럼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추위는 계속 엄습했다.

봉우는 다시 몸을 바로잡고 돌아앉았다. 문 병장에게 무슨 말이든지 걸어야만 했다. 마침 궁금한 게 있었다. 전입된 신병들 간에 몇 마디 오고가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침에 본인으로부터 직접 그 <썩은 코>라고 불리게 된 별명의 전말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문 병장님, 썩은코라고 불리게 된 사연이나 한번 들어봅시다.

문병장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보다도 난 네 얘기가 더 듣고 싶은데? 부대전입을 받고 애인이 면회를 왔었잖아. 혹시 첫날밤을 앞당겨 치른 것 아냐?

첫날밤일 턱이야 없지요.

아무리 완강하게 지켜온 여자들도 전방으로 애인을 찾아 면회를 오게 되면 별 수 없지. 첫눈에 모든 마음이 달라지니까. 산골짜기에 들어와 차림새며 형편없이 촌스럽게 달라진 몰골을 보면 사랑하면서 그립던 마음에 눈물이 괴어오를 정도로 동정이 가득해지지. 변변하게 하룻밤 잘 만한 여인숙 하나 없구. 보이는 것은 똑같은 푸른 제복들과 산뿐이구, 치마만 둘러놔도 양귀비로 보일 만큼 젊은 가슴에 불붙어 일어나는 사내의 본능적인 욕구를 냉큼 잡도리하기란 참으로 어렵지.

, 얘기를 딴 데로 돌리며 엉뚱한 소립니까?

봉우는 채근했다.

그럼 심심풀이로 얘기나 해볼까.

그는 담배부터 한 대 피우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고 있지를 않았다. 청정한 산 속 공기 속에서 몇 십 미터 밖에까지 냄새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 위치를 노출시킨다는 사실로 해서 라이터와 함께 담배를 선임하사에게 압수를 당하고 꽁초 한 도막도 가지고 들어오지를 못한 것이었다. 씁쓸한 건입을 다시고 나서 문 병장은 얘기를 시작했다.

군인극장에선 자주 인근부대와 민간인 부락을 트럭으로 돌며 관람객들을 실어 나르지. 그때 극장엘 가는 부락 사람은 대부분 몇 안 되는 처녀·총각들이지. 그런데 그 중에 거의 빠짐없이 길목을 지켜 섰다가 구경을 가는 처녀가 하나 있었어. 아주 잘생긴 미인이었지. 마치 동양화폭에 담긴 여인처럼 얼굴이 동글갸름하면서도 오동통한 데다 콧날까지 오똑해서 여간 군침이 넘어가게 잘난 미인이 아니었지.

뇌리 속에 그 여자가 떠오르는 듯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푹 빠졌었겠군요.

그랬지. 모두들 아랫도리가 축축하도록 개침을 질질 흘렸다. 그 여자를 본 뒤로부터 나는 부대에서 별의별 핑계를 다 대가면서 극장 트럭이 오기만 하면 빠짐없이 탔지.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어.

이상하다니요?

봉우는 호기심이 동했다.

부스럼이라도 나서 하얀 반창고를 코허리에 붙이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처음에 보았던 그 반창고 딱지가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와도 그 자리에 변함없이 붙어 있는 거야.

그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 날이었지. 그댄 빈대마스크가 막 전입을 와서 처음 극장 트럭을 탔을 때였지. 영화 프로가 뭐였던가, 아주 좋았거든. 돌아오는 길엔 다른 일을 보러 나갔던 사람들까지 트럭을 타서 트럭의 짐바리가 미어터졌다. 그런 짬을 이용해서 재미를 보는 녀석들이 있었지. 여자들을 찾아서 옆으로 붙어 가지곤 비비대며 마구 주물러댄단 말이야. 녀석들은 극장 영화보다 그런 재미를 보려구 극장 트럭을 타지만 말이야. 어둡게 지붕 호로가 씌워진 트럭으로 만원을 이룬 속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터지고 야단이지. 그런 난리를 차르고 돌아오면서 트럭이 부대 앞의 부락에 멎었을 때였어. 느닷없이 먼저 빈대마스크가 사람들을 헤치고 트럭에서 뛰어내리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이 새끼들아, 어떤 새끼야? 이리 나와! 하는 고함으로 발작적인 난리를 치는 거야. 모두가 어리둥절한 데도 킥킥대고 웃는 놈들이 있었지. 알고 보니 빈대마스크 선임하사의 근육이 두둑한 앞가슴을, 녀석들이 여자의 유방으로 알고 사정없이 주물러댄 거야.

문 병장은 입귀를 씰룩거리며 웃음을 빼어 물었다. 봉우도 따라 웃었다.

그런 난리통에 다른 여자들인들 여북했겠나. 나는 그 여자의 곁에 붙어서 지키겠다고 한껏 보호하던 판국인데 역부족이었지. 트럭에서 내려가지고 언뜻 그 여자를 보니 코허리에 붙어 있던 반창고 딱지가 없는 거야. 한데 말이야 그게......

문 병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들 놀랐지. 알고보니 그 여자의 코허리가 움푹 썩어 있었던 거야. 배삼룡의 코미디에 나오듯이 운수 더러운 놈은 뒤로 넘어져도 앞 이빨이 우수수 쏟아진다더니만, 허구한 날을 마음 쓰고 쫓아다니다가 더럽게 되었지.

문병장은 눈을 위로 들고 몇 번 껌벅거렸다.

심정 참 팍팍하더라. 결국 그런 사연 속에서 제대 날을 맞게 되었지.

은근히 두렵고 무료한 시간을 죽이려고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막상 모든 전말을 듣고 나니 봉우는 웃을 수만도 없는 사연이었다. 문 병장은 뒤로 비스듬히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회상에 잠기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고 있었다. 봉우는 다시금 전방으로 거총자세를 취하고 돌아앉았다. 전방은 아무런 움직임을 느낄 수가 없었다. 가까운 맞은편 골짜기 언덕으로 서있는 이깔나무 가지를 타고 다람쥐 한 마리가 날렵하게 기어오르더니 바윗등 위로 사뿐히 뛰어내렸다. 그 위의 나뭇가지에선 노란 꾀꼬리가 앉았다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갈증을 느끼며 봉우는 허리의 수통을 잡았다. 한나절 도끼질을 하고나서 목도운반까지 비지땀을 흘리며 하고 난 뒤라 계속해서 갈증이 오고 있었다. 수통의 미지근해진 물을 마시다가 그는 아까 골짜기의 차가운 옹달샘물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 골짜기까지 내려가기는 다소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눈앞의 골짜기 숲속으로도 시원한 물은 있을 터였다.

봉우는 소총을 거치해둔 채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났다. 경계진지를 벗어나, 거의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나무숲을 헤치고 아래 기슭으로 골짜기를 찾아 내려왔다. 전나무와 낙엽송같은 교목들이 울창하게 들어차 있고, 덩굴줄기에 절은 관목 활엽수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가로걸리는 나뭇가지를 젖히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낯선 소리를 알아차리기라도 하듯이 새들이 자리를 옮기며 포르륵 날았다.

조금을 더 숲을 헤치고 더듬어 내려갔다. 그러자 나지막이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골짜기였다. 나무숲이 우거져서 동굴처럼 음습했다. 쌓인 바위들도 축축하게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물이 제법 흐르고 있었다. 골짜기는 멀리까지 볼 수 없었다. 음모가 무성한 여자의 사타구니같이 깊숙하게 교목과 관목들로 우거져 음침스러운 저 위쪽으로부터 또 한 줄기가 내려와 합쳐지고 있었다.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시원스러웠다. 우선 물을 손으로 움키어 마셨다. 이가 몹시 시렸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물을 움키어 올려서는 얼굴로 끼얹어 세수를 했다. 비스듬히 산기슭으로 붙은 바위를 돌아가며 물이 졸졸졸 흐르는 개울 아래쪽 저만치의 숲속에 길쭉하게 물이 고인 웅덩이가 있었다. 물푸레나무와 오리나무, 떡갈나무의 가지들이 늘어져 웅덩이 수면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반가움이 지금까지 머릿속에 맴돌던 모든 기억들을 까맣게 단절시켜버렸다.

웅덩이는 퍼런 물빛이 맑고 투명해서 모래바닥과 바윗덩이가 잠긴 물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바윗덩이 밑에서 버들치인지 열목어인지 잘 알 수 없는 피라미 같은 것들이 떼지어 헤엄쳐 다니면서 이따금 번적하고 한줄기 비쳐드는 햇빛을 받아 안으며 꼬리를 쳤다.

물속으로 뛰어든다면 너무 추워서 사추리가 탱자처럼 오그라들고 입술은 무르익은 오디 빛으로 새파래질 것 같았다. 헤엄쳐 다니는 고기떼를 줄곧 구경하면서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는 이끼에 감겨 뒹굴고 있는 박격포탄을 발견했다. 81밀리 불발탄이었다. 그 불발탄 곁에 깔려 있는 검게 썩은 낙엽이 슬금슬금 움직였다. 점점 낙엽이 위로 떠오르면서 그 밑에서 굵직한 집게발이 앞으로 내밀렸다. 커다란 가재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놈을 납고 싶었지만 불발탄이 기분에 거슬렸다. 그 대신 앞에 있는 넓적한 돌덩이 하나를 가만히 들어 올려보았다. 쳐들린 돌덩이 밑에는 큰 어미가재 한 마리가 물 속 깊이 달아나버리고 자잘한 새끼들만이 오물오물 깔려 있었다.

머리 위의 오리나무 가지에서는 겁을 모르고 꾀꼬리가 삣-삐요코-삐요-, 울어 젖히고 있었다. 놈의 울음소리를 닫고 앉아 있다가 그는 통일화를 벗고 천천히 물속으로 발을 담그면서 돌덩이를 들고 가재를 한 마리 잡아올렸다. 놈은 집게발을 이리저리 내돌리며 걸리는 대로 물었다. 물릴 때마다 손의 살점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팠다.

이놈......

하고 그가 가재의 물어뜯는 집게발을 피해 몸을 바로잡는 순간 놈은 세차게 꼬리를 치며 손가락 사이를 쑥 빠져나가버렸다. 가재를 놓치고 나서 봉우는 걸터앉아 있던 넙적 바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아퀴가지 우듬지와 나뭇잎들 사이로 조각조각 헤쳐진 하늘이 파랗게 올려다보였다.]

하늘엔 흰 뭉게구름이 떠 있었다. 고향의 뒷산 송진 냄새 풍기는 솔밭가운데 잔디 고운 묘지 가에 누워 흰 구름이 흘러가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일이 아련히 떠올라왔다. 지금처럼 한적하게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장끼의 울음소리도 들려왔었다. 흰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있는 하늘 아래 어머니의 정수리 가리마같이 하얗게 나 있던 말무덤 고갯길이 눈에 선했다. 무엇보다 주인집 경옥이와 비밀스런 만남들이 감미롭게 떠올라왔다.

아주머니 댁의 벽이 허물어지고 기우듬해진 행랑채에서였다. 안채와는 멀찍이 떨어져서 밤새껏 누가 부시럭거리고 있어도 모르게 외져있는 곳이었다. 대문도 측백나무 울타리 저쪽으로 새로 나 있어서 특히나 밤엔 근접하는 발걸음이 거의 없는 데였다. 그래서 남의 눈이 두려운 처지로 만나기에는 적격이었다. 빈집만이 지니고 있는 싸늘한 어둠이 깃들어 있어도 둘이는 무서운 생각같은 걸 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비밀스런 만남을 보호해주는 것들이었다. 추운 겨울밤, 처음 그녀의 체온을 느낄 때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경옥은 밑으로 내려가는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떨리는 몸으로 뜨겁고 격렬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나절 벌복 작업과 힘겨운 목도운반으로 고단했던 몸이 중식을 하고 난 식곤증과 함께 아주 나른하게 풀리면서 서서히 감미로운 환영의 꿈결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경옥이의 뜨거운 볼과 떨리는 숨결을 느끼면서 꽉 잡혀 있는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다시 밑으로 가져갔다.

이러면 정말 안돼.

경옥은 다시 치마 속의 손을 움켜쥐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사뭇 두근거리는 가슴 위로 한 손을 가져다대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손은 미끄러져 내겨갔다. 두둑한 언덕에서 까실까실한 감촉이 느껴졌다. 허벅지에서 깊이 떨어진 곳으로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경옥은 몸을 한번 경련했다. 두 다리가 오므라들면서 부드럽고 따뜻한 체온 속으로 들어간 손가락이 조여들었다. 그는 볼을 문지르고 입술을 비볐다.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경옥이를 쓰러뜨리면서 그는 한 손으로 치마를 걷어 올렸다. 오래 비었던 행랑채의 헛간 구석에서는 쥐들이 뛰어다니면서 찌익-찌익, 소리를 내었다. 경옥이는 두 눈을 감은 채 가슴이 떨리는 숨만 뜨겁게 내쉬었다. 그는 아래의 손을 빼내면서 위로 몸을 포개었다.

난 몰라.

경옥은 팔을 돌려 자기 위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는 마침내 따뜻한 배와 허벅지의 부드러움과 아랫도리가 살 속에서 미끄럽게 젖고 있는 것을 느꼈다. 격렬한 소용돌이는 거기에서 끝났다. 아직도 볼과 입술을 잉걸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사랑해. 경옥이......

그는 계속 감미로운 꿈결 속에 흠씬 취해 있었다.

 

......우리 북반부 조선 인민공화국은 전쟁을 바라지 않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동족상쟁의 비극을 피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할 것을 염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과 남이 서로 총을 겨누고 맞서 동족상잔의 위험이 떠도는 가운데서는 북과 남 사이의 그 어떤 접촉과 대화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가 없으며 민족의 진정한 단합과 통일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북남 전체 조선민족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하루 속히 몰아내고......

 

이상하게 귓전으로 왕왕거리는 확성기 소리에 잠을 깨면서 봉우는 불길한 예감으로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먹물이 풀린 듯한 까만 칠흑의 어둠이 골짜기를 뒤덮고 있었다. 당장 한치 앞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대남, 대북 방송의 확성기 소리만이 귓전을 따갑게 때리고 있었다. 당황하면서 본대를 생각했다. 빈대마스크 선임하사가 떠오르고 소대장의 얼굴이 눈앞으로 떠올랐다. 소대원들과 고참병들과 교육대의 조교들이, 신병들이 모두 떠올라왔다.

본대를 찾아 돌아가야만 했다. 정신없이 앞을 더듬어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더 깊은 골짜기의 숲속으로,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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